1. 이번 사태는 오히려 기독교와 선교라는 선입견을 제하고 보았을때, 더 잘 읽힌다고 생각합니다. 선교가 아니라, 그냥 여행자 집단이 길을 가다가 탈레반에게 피랍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피랍자들에게 적대적인 반응들이 나왔을까요??
2. 이번 사건에서 국가주의의 광기를 읽습니다. “세금이 아까우니까”구해주지 말라는 사람들과 “국가가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야지.”라는 반응들이 많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의 국가관이 의심스럽습니다. 적어도 떠받들어야 될 “국가”보다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좀 세련되고 현대적이지 않습니까? 나가서 나라 이름에 똥칠을 하든 말든, 그게 만약 법적으로 제재가 필요하다면,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 와는 별도로 논의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외국에서 피랍되었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국가라면… 도대체 국가가 우리한테 해주는게 뭐가 있습니까?
3. 분명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이 말해주기는 했지만, 금지된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여행객들은 출국수속을 밟았고 비자를 받았습니다. 물론 위험한 지역이긴 하지만, 가고 안가고 자신들이 결정내릴 자유정도는 있습니다. 아 물론, 금지 되면 못가게 되겠지만,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 가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믿음이 있으면 못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이 금지의 의미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곳에는 가지 않도록 하는 제도로써 의의가 있는 것이지, 국가 그 자체를 위한 금지가 아닙니다. 어쨌든, 그들은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출국했으므로 국가가 그들을 보호할 의무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4. 잘못은 탈레반에게 있습니다. 범죄가 일어나는 과정은 범행의 대상이 있고, 범죄자와 범행이 있을겁니다. 물론 개인의 주관적 영역에서는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범죄자의 범죄가 정당화 될 필요는 없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이지, 옳고 그럼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5. 잘못은 탈레반이 하였고, 국가는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작은 결론이 났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이정도 결론에서 그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 논의에 관심이 없거든요. 복음서진론이든 땅끝복음이든 관용해 줄 수 있습니다. 성경구절 들먹일 일도 없고 들먹여도 수준이 미비하지요. 적당히 무관심한 수준에서 그칠겁니다. 하지만 기독교 인이라면, 기독교의 선교관이나 기타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대다수의 여론이 비이성적인 측면이 많습니다만, 이러한 비이성적 반기독교적 감정이 형성되는 것에는 그간 기독교의 잘못도 많았음을 인정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반기독교정서는 아니니까 말입니다.
6. 결국 기독교인이라면, 믿음의 동지로서 함께 믿는 신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개인주의적 태도로 저들은 저들의 믿음이라고 방관하는 태도도, 반기독교정서의 형성에 한몫 한 것이지요.
7. 기독교인들은 죄 많은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고 진리를 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보고 예수를 봤으면 애초부터 기독교인 됐게요. 어차피 비신자들은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보고 판단합니다. 기독교가 욕먹는 이유가 예수적 행동을 해서 욕 먹는거 아닙니다. 현재의 반기독교정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정된 고난이나 억압으로써의 성격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로써 자신의 예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기독교인들의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상한 행위들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됩니다.
유흥성이 너무나 짙은 한국의 선교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복음서진론이라든가 땅끝복음에 관한 이야기들의 허구성을 낱낱히 밝히는게 기독교인으로써 올바른 기독교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8. 그러니까, ‘목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욕을 좀 먹어도 싸다는 겁니다. 물론 ‘만인제사장’설로 목회자의 말에 신성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이 개신교에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목자’들의 말에 신성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당위적 주장이지, 현실적으로 ‘목자’의 말에 신성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까? 왜 빽투더예루살렘이냐고 물어보세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믿음 좋으신 분들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국가라는 우상 이후에 또 다른 종류의 우상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우리들의 ‘목자’라는 우상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