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사태를 보는 세 가지 시선”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23> “그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0729203647
큰 논지에서는 결국 파병 원인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거 같다.(똑같지는 않더라도, 주장의 효과가 아무래도 비슷하다는…) 공적 인프라 언급이나, 아프간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이유업이 ‘그럼에도 분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서술되지 않은 다른 ‘직관’이 있을 거라고 짐작이나 해볼 수 밖에… ‘근본적인 정답’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반대가 정답일 거라는걸 논리적으로 보증할 수는 없다.
이 글의 효과를 조꼼 생각해 보자면…
1. 결국 “아프간 사회에 대한 이해”로 독자들의 의식을 돌리는 기능.
2. “피랍자”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이기 때문에, 우리 독자들이 예전의 영광(금모으기, 효선이 미선이,)운운하며 아무래도 피랍자들을 구해내라는 정부탄원 촛불집회를 종용하는듯한 기능??
아무래도 2번은 좀 불편하다. 아무래도 인터넷 댓글의 비난여론에 대한 역시류를 고려한 내용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해 보이고, 불편한 내용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프간 사회에 대한 이해”도 “시혜”적 우월감을 갖는다면 문제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제국주의의 침략은 미개국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많이 이루어져 왔다. 일본이 조선인들의 신사참배 거부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그들의 대동아공영 계획에 조선이라는 미개인들이 황국 시민으로 영광스럽게 인정 받는 것이라는 시혜적 인식이 바탕되기 때문이다. (사실 찾아보면, 일본인들이 정말 진정으로 조선을 생각해서 침략한 것이라는 서적들도 있다. 일시적 착취적 대상으로써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할 단일체로써…)
자국의 문제가 자국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그 문제로 인해 타국에 종속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많이 증명되어 왔던 것이고…
아무리 좋은것이라도 자기 싫다면 그만이다. 역사라는 것에 만약은 없는 것이지만, 일본의 대동아공영이 진정 합리적이고 영광스러운 계획이었다 하더라도 조선에 강압한 그들의 태도는 결코 정당하지 못하다. (합리성을 넘어서 존중으로…)
파병의 적실성 이야기, 제국주의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야기 나오고,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가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들의 정신이 동일성을 갖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