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이용해야지

2009/05/28 00:41 under 기록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도 며칠이 지났다. 애초부터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말은 노무현을 우상으로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엄숙주의’로 명명할 수 있는 그 정서가 노무현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정서는 망자에 대한 예의 앞에서, 그의 수단화를 경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것은 현실을 가린다. 노무현 죽음을 고귀하게 포장할수록 멀어지는 것은 현실이다. 서울시장이 ‘노무현의 고귀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며 추모소를 철거할 때, 그는 정말 ‘고귀’한 죽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노무현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그를 그저 좋은 인물로 묘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무현 죽음의 성격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고 그 현실 속에서 저항하겠다는 의미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공권이 사권이 된 현실을 반영한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나 30원에 자살하는 노동자가 이와 무관할까. 때론 경제력으로 때론 공권으로 약자들을 억압하는 정권의 폭력성이 과연 죽창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그 노무현을 이용할 수 있을지 점점 회의가 밀려온다. 노무현의 죽음은 장례식 푸닥거리가 끝나면 모두 망각되어지듯. 그 죽음의 성격은 망각될 것만 같다. 그런 절망은 노무현을 우상화하는 빠들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진영에서 느껴진다. 노무현의 죽음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를 이용해 깽판이라도 쳐야 할 집단인 민주노총이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해 파업을 미루기로 했단다. 그들의 투쟁방식이 그런 식이었나?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파업을 미루는 그러한 방식이었나?

노무현을 추모하는 이 사이에,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외롭게 투쟁하고, 한예종 학우들은 힘겹게 싸우고 있다. 이 ‘엄숙’이 나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