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 [[윤리학]] 토막

2009/06/27 01:08 under 기록

□ 지금은 그냥 대충 떠오르는 것들(그러니까 책과는 상관없는)만 토막으로 적어보자. 본격 내용정리는 조금 더 꼼꼼히 읽은 후에 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자신있게 요렇게 읽어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내 안에서 정리되지는 않은 이야기들이라는 뜻. 또 쓰다보면 대충 정리되는 듯도 하니까. 그냥 시도.

알랭 바디우의 윤리학이다. 프랑스에서 교수도 하고 그런 사람인 것 같다. 해제에도 나오는데 바디우가 직면하는 날것으로의 현실은 근래의 프랑스 정세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순서를 한번 살펴보자. 먼저 서문 I. 인간은 존재하는가? II. 타자는 존재하는가? III. 윤리, 허무주의의 형상 IV. 진리들의 윤리학 V. 악의 문제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져있다.

책에서 ‘윤리’ 라고 기재한 부분과 윤리 라고 기재한 부분은 다른 부분이다. 알랭 바디우는 기존의 ‘윤리’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측면──보통 ‘이데올로기’라는 기술은 허위의식, 거짓된 것을 지칭할 때 쓰는 기술이다.──을 지적하고, 자신의 윤리를 이야기 한다. 책에서 작은따옴표로 묶어져서 지칭되는 윤리는 기존의 허구적 윤리를 지칭하는 것이고, 작은따옴표로 묶여지지 않은 윤리는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윤리이다.

인간은 존재하는가? 라는 첫 번째 장은, 주체를 상정하는 근대적 윤리의 허구성에 대한 서술이다. 근대는 주체를 시작으로 사유를 전개하지만, 인간은 주체로 전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모든 인간이 주체성을 지닌 듯이 지칭되는 ‘주체’는 허구라는 것이다. 바디우가 주안점을 두는 것은 인간이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바디우는 인간이 주체적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에는 ‘사건’이 필요하고, 그 사건을 통해 스스로를 ‘피해자로 파악’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자만이 주체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원래 주체적인게 아니라, 사건이 인간에게 태도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체적 인간이 되라는 요구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들어 볼 수 있는데, 왜 주체적 인간은 적을까? 요런 질문 속에서 주체적 인간의 탄생 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타자는 존재하는가? 에서 바디우가 대립하고 있는 윤리관은 레비나스의 그것이다. 왜 하필이면 레비나스냐? 레비나스가 포스트모던 윤리학의 대표적 인물이니까 그렇겠지. ‘타자의 윤리학’으로 대변되는 레비나스는 근대의 폭력성을 ‘동일자에 대한 인식’이라고 비판한다. 바디우는 레비나스의 윤리학에 대한 강조점을 옮기는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바디우는 ‘타자에 대한 인정’ ‘차이의 윤리’ ‘다문화주의’ ‘관용’ 등의 말들이 “힘도 진리도 지니지 못한다.”고 말한다.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이 같은 정리들은, 레비나스의 진정한 생각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는데, 바디우는 레비나스 철학에서 ‘타자’ ‘차이’ ‘관용’과 같은 부분에 강조점을 찍을게 아니라, “본질적인 비동일성에 대한 경험”에 강조점을 찍는다. 그리고 ‘타자’에 방점 찍은 레비나스의 그것을 반박하며, 오히려 ‘동일자’가 철학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며, ‘동일자로 회귀’한다. 요부분은 꼼꼼히 읽어보면 뭐가 나올 것 같다.

오늘은 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