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까짓놈의 우둔한 대가리를 갖고서 말이지, ‘보이지도 않는 귀신 나부럭지니 우주 따위, 또는 그와 같은 기타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출발점으로서 너 자신을 재료로 택한 뒤, 너 자신 속에서 찾을 일이지, 네놈의 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그 자신의 것으로 하고 말하기를 나의 신,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영혼, 나의 몸이라는 그것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일인 것이다. 슬픔이, 사랑이, 증오가 비롯되는 근원을 알작시라. 뜻이 없는데도 사람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는가, 뜻이 없는데도 어떻게 쉬며, 자기의 뜻과도 상관없이 성내게 되는 일이나 애착하게 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알아야 되는 것이다. 만약에 네가 이러한 것들을 주의깊게 살핀다면, 너는 자신 속에서 그것들을 찾게 될 것이지.’ 나로서는 결코 너에게, 아집이나 오욕을 여의라거나, 해탈을 성취하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네의 문제란 말이지. 나로서는 차라리, 자네로 하여금, 어떤 교리 교의, 또는 어떤 자들이 먹다 남긴 사상의 찌꺼기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 여의기를, 아집이나 오욕 여의기를 치열히 하는 어떤 자들보다 더 치열히 하라고나 하고 싶은 게야. 글쎄 마음이 좁은 자는, 자기 곁을 스쳐나는 것을 언제나 자기와 다른 것으로 보며, 마음을 더욱더 오그려싸아, 더욱더 좁은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래서 그 사내가 죽었을 때, 이 사내가 대체 무엇을 그렇게 소중히 싸서 간직했는가. 그 속을 열어보면, 똥창자며, 썩어 문드러진 동정(童貞) 같은 것들이다. 허기는 오그려싸기를 극도로 성취해버리고 난 자의 뒷얘기는 달리 말해져도 좋을지 모르지. 어쨌든 마음이 넓은 자는, 말 타고 강산을 지나더라도, 그 스치는 모든 풍경이 자기의 밖의 다른 것이라고는 보지를 않는다. 그러고 보면, 오그려싸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넓은 마음이란, ‘한도 없는 것이고, 둥글거나 네모진 것도 아니며, 크거나 작은 것도, 푸르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흰 것도 아니고, 위가 있거나밑이 있는 것도 또 아니며, 긴 것도 짧은 것도, 성냄도 기쁨도, 옳음도 그름도, 선함도 악함도, 처음도 끝도 없는 것이다.’ 글쎄 그렇다고 보면, 저 큰마음이란, 팔만 색상에 채워진 공(空)이며, 공이지만 그저 헛간 같은 공은 아닌 것이다. 그것 속에는 만신(萬神)이 살며 전을 벌여도, 그것 자체에게 이단이라거나 개종의 이름은 붙일 수가 없는 것이지. 작은 마음을 크게 한다는 일이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저, 붙매이지 않고, 자꾸 변절하고, 자꾸 받아들이고, 자꾸 떠나는 일밖엔 없다구. 글쎄, 한 질료가 금이 되기까지는, 열두 번이나 일곱 번의 죽음, 뭉뚱그려 적어도 세 번의 죽음을 완전히 치르지 않고는 안 되거든. 변절 말이다. 개종(改宗) 말야. 헌데 내 눈에 보이는 자네라는 녀석은 …
_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26-27.
처음에 봤을 때는 이 썰 이후에 이어지는 체용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밟히더니. 다시 읽으니 이 구절이 눈에 밟힌다. 전에 포항 들렀을 때, 지 교수님과 술자리에서 기독교 역사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 역사 이야기가 나왔고, 또 어쩌다가 하이데거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교수님이 정말 장난 아니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내가 뭔가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다 말씀 드렸더니. 그저 선입견 없이 사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역사를 조감하면 어쩌면 이념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인간은 그렇게 이념에 자신을 철저히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것. 차라리 아주 실증주의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이 구절을 읽으니 그때 그 대화가 떠오른다. 욕망을 여의는 것 보다 오히려 교조와 교의를 여의는 것을 강조하는 죽기 전 스승의 가르침.
오그려싸음과 마음넓음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래도 오그려쌓는 인간종들이 종교인이나 염세주의자가 될 듯. 교조 교의에 얽매이지 않음은 나도 지향하는 바이지만, 그런 맥락에서 교조와 교의를 혐오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적인 것들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외적인 것들을 혐오할 수도 있는 것. 내가 그 짝인 듯. 결국 내가 넓은 마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혐오 그 자체를 없애거나, 내가 커져서 그것들을 포함하는 내가 되는 수가 있겠는데. 후자의 방법은 특히 자기애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진리의 자뻑적 성격, 나르시즘, 내면 세계로의 퇴각, 자폐. 점점 오그려쌓는 방향으로의 개념들의 정합이 일어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점점 오글거리는 인간이 될 텐데. 뭔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결국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 젠장 맞을 자멸적 인간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