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09/27 수강신청과 소비 Q
  2. 2008/09/26 누가 역사학 이야기 하쟀냐? Q
  3. 2008/09/23 아 쒸벨 (5) Q
  4. 2008/09/19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닌거 같은데... (8) Q
  5. 2008/09/18 명준에게 여성의 의미? Q
  6. 2008/09/16 최인훈, [[광장]] Q
  7. 2008/09/10 다시 '내 사랑 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2) Q
  8. 2008/09/09 내 사랑 한동 Q
  9. 2008/09/04 치마 (2) Q
  10. 2008/09/01 유머와 진지함 Q

수강신청과 소비

http://deokkyu.net/192 by Q 2008/09/27 20:50 일상속의잡설 TAG 대학, 소비, 수강신청, 유영익, 자본주의, 학문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소비한다는 것은 그것을 유지하는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의를 갖는다. 가령, 값싼 대형슈퍼마켓 대신에 동네슈퍼를 이용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의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고, 헐리우드 영화 대신에 독립영화를 돈 주고 본다는 것은 독립영화가 존속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물질적 기여를 한다는 의미이다. 조중동 대신에 경향신문를 읽고 인터넷 신문을 후원하는 것 또한 단순한 선택의 의미를 넘어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이번 유영익 교수의 사태에 대해서, 순수학문과 학문의 자유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소비의 정치적 의의를 간과한다. 우리가 유영익 교수의 수업을 '수강신청'한다는 것은 어떤 정치적 의의를 갖는가? 대학이라는 곳은 '학문의 자유'를 방관하는 수동적 의미가 아니라, 이미 보장된 학문의 자유 속에서 어떤 독자적 이념적 학문을 조장하는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학문이 유지, 존속, 발전할 수 있는 인적-물적 토대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곳이 대학이다.

이러한 대학의 한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대학이 어떤 학문에 대해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지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은 대학 구성원으로써 지극히 당연한 주인의식의 발로이다. 우리중에 그 누구도 유영익 교수의 연구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공동체가 유영익 교수에게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할 뿐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우리의 권리이다.

1. 좀 쌩뚱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과학 이야기 좀 하자. 많은 분과학문들이 있겠지만, 그 많은 분과학문들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학문'으로 여겨지는 것이 '과학' 이니까. 그런데 그 '과학' 중에서도 '핵 기술'이라는 것 가지고 한번 이야기 해보자.

2. '핵 기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과학하시는 분들이 기술적 측면에서 더 잘 알테지만, 우리는 일단 북한이 '핵 개발'하고 '핵 실험' 한다고 하면,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입장중의 하나로 '반핵주의자'들도 있다. 따지고 보면, 그저 과학적 원리로 아주 큰 에너지를 내는 하나의 순수한 학문적 성과일 뿐인데, 온갖 정치색 입혀서 '핵 개발' 반대하고, 졸라 궁극적으로는 '핵 협상'까지 한다. 졸라 순수한 과학기술일 뿐인데, 왜 미국이 맨날 북한한테 쩔쩔 매면서 돈주고, 우리나라는 쌀퍼주고, 협박도 하고, 으르고, 그러는걸까?

내 생각에는, 유영익 교수가 '탈 정치적'이고, '정치적 논란'을 하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학문의 순수성 운운하시는 TA 분들은 아마도, 이런거 이해 못할거 같다. 그러니까 너무나도 순수하시게 유영익 교수 밑에서 배운 '순수한 역사학' 운운하고 조낸 아는척 하는거다.

그러니까, 아무리 순수한 학문적 성과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쓰이지 않을 때, 그 순수한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물어보아야 하며, 그 순수한 학문적 성과가 인간에 의해 '올바르지 않게' 계속 쓰이고 있다면, 그 순수한 학문적 성과는 폐기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순전히 사람을 죽이는 곳에만 쓰이고 인류를 자멸시킬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은 '핵 무기'처럼, 또는 아주 순수한 '핵 무기'를 '전쟁'과 같은 정치적인 행위에 사용하고 있는 위정자들에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핵'에 대해서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을 한번 상기시키자면, 학문은 그것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3. 학문과 정치? 그것의 관계에 대해서는 졸라 논의가 분분하니 이야기 좀 적당히 하자. 언제나 근본적인 질문은 대답하기 힘드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유영익 교수의 그 '순수한 학문적 성과'가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는지에 대해서도 좀 지적으로 성실하셨으면 한다. 적어도, 유영익 교수에게 '정치색'을 입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영익 교수의 '역사학'에 대해서는 조금 지적으로 불성실할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 시대에 대해서까지 지적으로 불성실하리라는 생각은 접어두시길 바란다. 물론 초주관적 견해이지만, 적어도 '유영익' 교수에 대해 정치적 논란을 하시는 분들의 고민의 무게는, 오피스에 처박혀 '한 사람'이 '주는' 논문만 쳐읽고 있는 니놈보다는 무거울거 같으니까.

4. 유영익 교수 스스로는 정치와 연관이 없고자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영익 교수의 학문이 이렇게 대중화(교과서화) 되는 것은 전혀 정치와 연관이 없을까? 우리는 현재 이미 기독교가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뉴라이트'라는 정치적 운동에 '한기총'은 절대적 지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또 다시 '장로' 대통령의 당선이라며 축하되어 지고 있다. 이쯤에서 이미 신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 또 어디에선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직 당선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소리가 마치 악령의 속삭임처럼, 또 다시 보는 하나의 악몽처럼, 스믈스믈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뉴라이트는 '좌빨'들의 '민족주의' 사관에 태클을 걸기 시작한다. 그런 맥락에서 '교과서 포럼'은 만들어졌고, 그들의 코드에 맞는 몇몇 역사학자들을 그들의 감수로 세웠다. 그 중 한명이 유영익 교수인 것이다. 특히나, 유영익 교수는 '장로 대통령' 중의 원빠따인 '국부'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학자 중의 한명이기도 하니,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학자'인가??

세태가 이렇다 보니, 바보같은 TA는 지금껏 논의된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못한 체, 마치 똥으로 글을 읽은 마냥, 이승만의 편지 한통을 운운한다. 또 어떤 학우는 이 편지를 보고, 이승만의 시대를 앞서간 이상에 대해 공감하고 감탄한다. 정말 학문이 '정치'와 관련없이 평가되어야 한다면, 또 신앙이 정치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면, 또 학문과 신앙이 관련이 없어야 한다면, 정치인 이승만에 대해서 그의 정치적 행위와 행적에 대해서만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촛점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기독교인' '장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평가되고 있다. 유영익 교수가 수업시간에 보여주었다는 '이승만의 편지'는 순전히 학문적이지도 않고, 순전히 신앙적이지도 않다. 이 자료는 유영익 교수가 기독교인이라는 개인적인 취향, 개인적인 코드에 맞는 자료이기 때문에 그에게 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5. 유영익 교수가 '순전히 학문적' 이기를 원하는가? 나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유영익 교수를 '정치적 논란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유영익 교수의 역사학에 반대하는 이들이 아니라, 유영익 교수의 역사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뉴라이트'세력이다. 우리는 '뉴라이트' 세력에 반대하기 위해서, 유영익 교수의 역사학 또한 함께 반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유영익 교수가 '순전히 학문적'인 인물로 남기를 바란다면, 유영익 교수의 역사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뉴라이트' 세력에 대해서도, 우리를 향한 공격과 똑같은 강도의 공격을 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는 과연 '탈 정치적'인가? 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되고는 할까? '역사'는 과연 정말로, 순수한 '학문'의 영역일까? 아니, 순수한 과학 마저도... 과연 그것이 순수한 것일까??

6. 평소에 잘 보지도 않는 신문을 검색해본다. 과연, 한 언론에서도 역사학의 논쟁을 '이념논쟁'이라고 명명하였다. 본질을 정확히 짚은 진단이다. 유영익 교수의 수업 자체를 듣기 이전에, 우리가 터잡고 있는 한국사회의 맥락이 무엇이며,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아는게 '지적 성실함'의 첫단계이다. 모든 학문은 그 '현재성' 이 상실되었을때 더이상의 의의는 없기 때문이다.

1. 어떤 교수는 강압적 방법으로 학생의 사과를 받아내기가 일쑤고 2. 학우들 사이에서는 '학생과'불려갈까 무서워 이야기 못하겠다는 소리가 농담처럼 튀어나오고 3. 어떤 쒸벨교수는 뉴라이트 역사학자 초빙해서 강의까지 열리게 만들고 4. 뉴라이트 역사학자의 강의에 우려를 표명한 신문사 기자는 여러 교수들에게 불려다녀야 했었고(다른 기사로... 피드백차 이야기가 오간것으로 확인됨.) 5. 뉴라이트 역사학자의 강의에 우려를 표명한 한 학회의 대자보는 뉴라이트 역사학자를 초빙한 그 교수에 의해 갈갈이 찢겨졌고 6. 뉴라이트 역사학자의 강의에 우려를 표명한 한 학회의 대자보는 뉴라이트 역사학자를 초빙한 그 교수를 추종하는 한 학우에 의해 또 한번 때어지고 7. 뉴라이트 역사학자의 강의에 우려를 표명한 총학생회의 사무실에 뉴라이트 역사학자를 초빙한 그 교수가 들이닥치고...

이상... 사실확인 되지는 않은 졸래 신뢰도 높은 이야기들... (휴... 별로 놀랍지도 않다 ㅡㅡ)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닌거 같은데...

http://deokkyu.net/189 by Q 2008/09/19 23:54 일상속의잡설 TAG 객관, 실증, 역사학, 이념, 주관

까놓고 말해 '편향'되지 않은게 어딨어. 모든 책이라는게 저자의 주관이 담긴 편향된 책이지. 그러면 모든 책들은 그 '편향성' 때문에 교재로 채택되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우리가 떠받드는 '고전'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구...

'실증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온갖 '주관적' 가치판단과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역사학'의 특성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은 차지로 하더라도, 지금 그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사관' 또한 '편향성'이 있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뉴라이트' 아저씨들이 그걸 문제시 하는 것이고...

솔직히 '뉴라이트'의 저작을 쓰는 수업을 내 또 하나 알고 있지, 그런데 그게 문제인가??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무슨 '금서'인들 못읽을게 뭐있어?? 그런 정신이 있으니까 우리내 국방부는 '읽어서는 안될 책' 따위를 선정하고 있는것은 아니냐는 말이지... 좌파는 좌파 책만 읽고, 우파는 우파 책만 읽으라는 법이 어딨어?? 그딴 옹졸함이 소통없는 폐쇄사회를 만드는 것이리라고...

좀 더 솔직해 지자구, 다 알잖아?? 이거 이념논쟁인거. 졸라 지리하고 지루한 이 논쟁에 뛰어드는 그대들에게 박수를...

근데 나는 총학이 진짜 열받는데... 쟤들 뭥미?? 밥상 차려놓으니 숫가락 놓는 격?? 아니면 언제나처럼 뒷북??

명준에게 여성의 의미?

http://deokkyu.net/188 by Q 2008/09/18 15:03 감상 TAG 광장, 명준, , 여성관, 여성주의, 페미니즘, 피해의식

또 다시 [[광장]]... [[광장]]을 이야기 할때, 명준의 여성관에 대해서 간혹 이야기가 나온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명준의 여성관은 남성적 시각이며 폭력적이라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이번에도 또 한 여학우의 질문. "명준에게 여성이 의미하는 것은? 구원자? 도피처? 도구?" 이 질문은 세가지 답을 예정해 놓고 그 중 딱 하나만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질문이다. 그리고는 말한다. "명준은 여성을 도구로 이용한 거에요." 그들이 말하는 '도구' 앞에는 '성적(性的)'이라는 말이 아주 미묘하게 감추어져 있다.

따지고 보면, 구원자-도피처-도구는 딱 하나로 나누어져서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자의 의미-도피처의 의미-도구의 의미는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나는 질문을 던진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럼 예수가 도구는 아닙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도구요!!!" 구원자-도피처-도구는 땔레야 땔 수 없다. 류 교수는 이를 삼위일체에 비유한다.

현재의 사회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미지로 형성되어 있다. 여성들은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페미니즘적 피해의식을 학습한다. 그리고 의식있는 여성이라면 당연 '페미니스트'적이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사랑의 상을 대어보라면 이야기 하지는 못한다.

피해의식만 이야기 하는 얼치기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사랑에서 '몸' 을 빼앗아 갔다. 여성들은 여성 스스로를 타자화 시켰다. 그들은 참으로 쿨하게 이렇게 말한다. "몸이 중요한가요?" '몸'이 중요하지 않다면, '몸'을 주건 안주건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들은 심층에 학습된 피해의식, 성에 대한 혐오로 철저하게 반(反)육체적이다.

"육체적'사랑'은 저급한거에요. 가능하기나 한건가요??" ... 아서라 아해야. 神마저도 육화되셨는데, 하물며 사랑이야...

나는 오늘도 페미니즘적 '순결주의', '처녀막 주의'를 발견한다.

최인훈, [[광장]]

http://deokkyu.net/187 by Q 2008/09/16 21:02 TAG 광장, 오만함, 죄악감

"더구나 이미 더 이어질 길이 막혀 버린 지난 일이고 보면, 피고가 유리한 쪽으로 풀이하는 것이 어느 편을 위해서나 좋을 일이다. 그녀와 만나고 헤어지면 으레 사로잡히게 되던, 죄지었다는 느낌. 어찌 보면 그것은 커다란 오만이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이긴 사람의 느낌이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 만큼이나 해칠 수 있을까. 남의 앞길을 끝판으로 망쳐 놓았다는 생각이 죄악감이라면, 그는 하느님의 자리를 도둑질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사람의 팔자를 망치지 못한다. 다만 자기의 앞길을 망칠 뿐이다. 어떤 뜻에서건 나와의 사귐은, 윤애에게 한 가지 겪음이었을 거다. 그 겪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얕보는 일이다." 최인훈, [[광장]]

다시 '내 사랑 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http://deokkyu.net/186 by Q 2008/09/10 04:15 의견이나주장 TAG i3, 내 사랑 한동, 다시, 역사, 전설, 한동

오랜만에 횡수에 들어왔더니 '내 사랑 한동'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었네요. 그래도 좋은 의견들을 펼쳐주시는 선배님들이 남아있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1. 논의 양상에 대해.

저도 사실은 '내 사랑 한동'을 다시 언급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와서 '내 사랑 한동'을 언급하는 것이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내 사랑 한동'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현실도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인간이 취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천국'만을 말하는 내세지향적 종교처럼 아주 먼 미래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경우고, 또 다른 반쪽은 아주 먼 과거의 것들(이상향이나 추억?)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방향은 다르지만 현실을 도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부정적인 면을 지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현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과거 선배들의 문건인 '내 사랑 한동'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 '불온문건'을 읽는다는 짜릿함과 이것을 언급함으로써 얻게 되는 어떤 '자아상'을 즐기는 측면으로 이용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입니다(정신적 자위행위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실로써 인트라넷에서 과거의 인물들이나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 했던 모든 논의들은 대게 "과거에 별스럽게 시끄러웠던 인물이 있었다."정도의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시끄러웠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었습니다. 더 나아가, 현재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할때 이 같은 '과거'에 대한 논의들의 한계는, '과거' 사실에서 의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한계로 보입니다.

이 같은 한계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내 사랑 한동'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내 사랑 한동'을 언급하시는 학우분께서는 그것이 다시 읽혀져야만 하는 의의를 다른 분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나 '내 사랑 한동'의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역사'의 지위를 얻지 못했습니다. 제가 볼때는 오히려 이들은 '역사'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전설'로 이야기 되어야 할것이며, 여기서 또 이들의 이야기가 '역사'로써의 지위를 얻지 못하게 된 외적인 힘들에 대해서도 고민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과거의 일이 현재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큰 개념으로 '역사'를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쉬워도, 과거의 특정 사건이 현재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유의미한 것이라는 주장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과거의 일들이 '역사'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려져 학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면, 이야말로 학습 근거에 대한 설명은 결여된체, 반계몽 적으로 주입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을 읽는 학우님들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염두하고 대하셨으면 합니다. 아마도, 최근에 이루어진 논의에서 불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과거의 한동은 과거의 한동이고 현재의 한동은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내 사랑 한동'은 다시 읽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내 사랑 한동'은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그 의의를 설명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2. '내 사랑 한동'에 대한 평

저는 결론적으로 '내 사랑 한동'이 현재에 있어서도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과 동일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주 유효한 문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거의 언급도 되지 않는 한동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것 외에도, 언급된 한동의 민주성, 교수임용, 신앙교육의 문제, 교육문제, 연구대학이나 교육형대학이냐의 문제, 등은 최근에도 문제시되는 사안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이 같은 문제들은 아직도 같은 내용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들이 우리보다 먼저 이 주제들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 사랑 한동'은 '홀리'하고 '착한' 학우들을 결국에는 이 땅의 부조리에 대해 입 밖으로 토로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당시 현실의 결과물입니다. 물론, 한동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시끄러웠던 학생'으로 밖에 평가되지 않는 '나단'도 있었지만, '내 사랑 한동'에서 특히나 주목해야 봐야 할 점은 그 문건을 작성한 학우들이 교내 '주류'문화의 대표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혹자는 이들이 결국에는 '사과'를 하고 끝나버렸다며, 이 문건의 의의에 대해서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앞서 말한 그들에게 압력을 가한 다른 외적인 요인을 무시한 평가입니다. 그들이 그 '압력'에 굴복했다고 해서, 그들 목소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굴복시킨 외적인 힘은 그들의 주장을 '실증'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인식을 가졌던 과거의 한동과 현재의 한동은 과연 다를까요? 지금 아주 가까운 실례로 '식대 인상'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들은 '식대 인상'에 대해서 아무런 투명한 자료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학생식당 운영을 통해 이윤을 남겼다는 발표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총학생회는 단지 한번의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교수의 역정내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네요. 이같은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도 포기해 버렸는지 이제는 입을 다물어 버렸네요. 한 학우는 인트라넷에 댓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학생과에 호출을 받았답니다. 어떤 한 학우는 호출될 것이 두려워 공개적으로는 말 하지 못하겠다며, 자신이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저에게 쪽지로 보내줍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슬프게도, 아직도 '내 사랑 한동'이 현재 지금의 한동에 유의미한 이유입니다.

내 사랑 한동

http://deokkyu.net/185 by Q 2008/09/09 03:11 의견이나주장 TAG 내 사랑 한동, 비겁함, 역사, 한동

또다시 [[내사랑 한동]]에 대한 언급이 인트라넷 횡수에 올라왔다. 내사랑 한동은, '홀리'하고 '착한' 학우들을 결국에는 이 땅의 부조리에 대해 입 밖으로 토로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현실의 결과물이다. 이 문건은, 사유에 능한 철학자가 쓴 문건도 아니오. 불평불만쟁이 학우가 배설용으로 쓴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주목해서 바라봐야 할 것은, 이 문건을 쓴 저자들이 교내 '주류'문화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과거의 것들만이 언급되는 것에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동'의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 한 체, 한국사회의 정치를 논하고, 저 먼 나라의 자연재해에 대해서 논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부정의, 불투명성, 비민주성을 지적하기는 쉬워 하면서 한동의 그것에 대해 입을 다무는 태도를 우리는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이같은 태도는 사람이 정작 눈앞에 있으면 아무말도 못하면서 뒤에서 호박씨 까는 비겁한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바 하나 없다.

내사랑 한동 읽기도 결국에는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들은 '현재'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들은 한때 교내에서 시끄러웠던 말썽쟁이 아이들로 치부될 뿐이다.

치마

http://deokkyu.net/184 by Q 2008/09/04 01:06 일상속의잡설 TAG 노친네, 진보, 치마

요즈음 나는, "점점 높아진 학교 도서관 만큼이나, 여학우들의 치마라인도 점점 높아지고있어!! 과연 세상은 진보한다!!"고 농담처럼 내뱉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신입생 시절 예비역 형님들은 별로 짧지도 않은 치마를 보며 치마가 짧아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 기준으로는 아무리 쳐다봐도 짧지가 않은 치마였는데, 어쨌든 '치마'를 주제로 '환장' 하는 예비역 형님들을 보면서, 나로써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짧은치마'를 '소환'해 내는 그들의 능력이 신기하기 까지 했다.

나도 나이가 들었고, 치마를 주제로 능글대며 농을 던질 줄도 아는 '까진' 남자가 되었다. 이즈음 되고 보면, "요즘 젊은 것들은 치마가 너무 짧아!"라고 큰소리 치며 '환장' 하시는 노친네들을 보면서, 그들의 '짧은치마' '소환'능력을 한번쯔음은 경탄의 눈으로 바라봐도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유머와 진지함

http://deokkyu.net/183 by Q 2008/09/01 23:55 일상속의잡설 TAG 계급성, 유머, 진보, 진지함, 폭력

언제부턴가, 삶의 고통에 찡그리거나 꾀죄죄한 모습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말이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요하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아마도, 유머라는 것이 진지하기만 했던 어떤 관성에 반항하는 '혁명'으로 보여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유머의 가치에 대해서 부정하고픈 마음은 없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인간이 유머있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여유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여유조차 없는 억눌린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살기위해 진지하게 절규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유머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진지함만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진지해야 하는 것에 유머로 화답하는 것 또한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 진지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문제마저, 유머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그들의 여유에서 나는 소비되는 '진보'의 계급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