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8. 15:26

‘판타지’ 속 김예슬과 ‘투명인간’ 노영수 .

3월 말쯤이었나. 인욱형과 경주에서 만날 일이 있어서, 농사짓던 이야기를 하면서 한때 인욱형이 경도하였던 ‘공동체 운동’ 과 관련지어서도 이야기 했었는데, 우리가 그리는 이상사회가 어떠한 형태이고 그것이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결국은 우리 ‘삶’으로 돌아온다고. 그때가 아마 김예슬 사건 직후였지 아마. 김예슬 이야기도 했던 것 같고, 인욱형은 또 기대된다고 했었고, 나는 기대 안된다고 했었고, 결국 그냥 ‘삶’으로 돌아온다고, ‘삶’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항상 대안을 요구한다고, 대학을 자퇴하는 것은 그저 부정일 뿐이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지는 대답되지 않은 거라고, 그냥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이번 승진심사 관련한 소회

2010. 3. 25. 16:35

인간이라는 것이 홀로 존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지라, 그쪽동네 소식이 들려옵니다. 거기다 해당 교수님들이 저에게 각별한 스승이신지라 더 수이 소식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떠난 자가 말이 많은 것이 추해보였고, 그것 또한 그쪽 동네의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유령의 목소리가 만연한 이 공간에, 기록되지는 아니하고 흘러가기만 하는 이 공간에, 여기 또 흘러가버릴 유령의 목소리 하나쯤 더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크게 달라지겠냐는 자기정당화에 체념을 더하며, 얄팍한 소회나 나눠봤으면 합니다.

김영길 총장이 말하는 위기, 그리고 그의 해법

여기에서 목소리를 내는 학우들의 우려와 김영길 총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많은 이들이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그 ‘위기’가 같은 위기는 아니겠지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위기’에 대처하는 김영길 총장의 결단은 문제제기하는 자들의 눈에는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꼴이니 말입니다.

김영길 총장이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의 정체는 한동대학교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거창한 위기가 아닙니다. “글로벌리더십전형을 신설하여 4년 전액 장학금을 제안했지만, 선정된 많은 학생이 결국 서울 소재 대학을 선택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 대학이 입학 정원을 채우기에 급급한 지방 사립대학으로 전락”한다면, “비전이 무슨 소용”이냐는 김영길 총장의 말은, 김영길 총장의 위기의식의 정체가 한동대학교가 한국의 세인들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는 외부적 기준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해결책은 우리의 ‘비전’이라는 서술이 잇따릅니다. 그렇다면 이 ‘비전’과 ‘정체성’의 정체는 뭘까요? 여기서 말하는 우리가 강화해야 할 정체성의 정체는 “한동에 소망을 품었던 학생들이 우리 대학으로 와야 할 이유”가 되는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항상 우리가 정말로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당위가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서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것에서의 패배, 그리고 정신승리, 그리고 또 그것의 객관화

한동대학교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타 학교와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재단이 없는 위기의 학교, 객관적 통계자료는 교수의 숫자도 적음을 보이고 있으며, 건물은 낡고, 지리상의 이점도 없는 학교가 자신을 교육서비스라는 시장에 학생들의 간택을 기다리는 재화로 내세웠을 때, 자신을 선택하도록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 될까요?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객관적인 물적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추상적 차원에서 차별화 전략을 시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한동대학교가 제시하는 학문-신앙-인성의 통합적 교육이라는 차원입니다. 거기에 실험적 영어강의 전산수업 실무교육 등을 차별적 전략으로 내세웠었지만, 이제 너도나도 따라하고 있는 실정에서는 학문-신앙-인성의 통합적 교육이라는 추상적 차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런 추상적 차원에서의 성과라는 것도 결국에는 한 측면은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통계자료를 통해 충분히 비교할 수 있는 교수들의 논문 개제 횟수나 학문적 성과는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서 경쟁력 없음이 입증되어 버립니다. 이 때문에 학교는 말합니다. “우리는 논문 수를 적게 요구한다.”라고 말입니다. 사실, ‘교육중심 대학’이라는 모토는 타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연구력을 감추기 위한 전략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측이 강조하는 것은 신앙교육과 인성교육이지, 학문교육은 아니게 됩니다. 거기에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말하지만 학교측이 말하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의 귀결은 언제나 학문 없는 신앙입니다.

이 인성교육과 신앙교육은 또한 객관화 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한동대학교는 교육시장에 내 놓아진 상품 중의 하나이니까요. 그러한 객관화를 위한 시도 중의 하나가 예전에 논란이 되었던 ‘교수의 채플 참석 강화’였습니다. — 좀 너무 오래 되었나요? —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총장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목자 교수님’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둘의 내용이 너무나도 동일하게 여겨지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아마 감봉이 문제가 되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요건이 승진요건이 되었네요. 이번 사건을 새로운 사건으로 여기는 학우들도 있긴 합니다만, 한동대학교의 표면적 신앙에 집착하는 강박증은 그 전통이 오래 된 것입니다.

자율전공 그 제도의 태생적 문제점

우리학교가 취하고 있는 자율전공이라는 제도는 그 유연함 만큼이나 예측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가령, 1학년 학우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한 학부로 편중되는 현상이 생기면 곤란한 부분이지요. 많은 학우들의 선택을 받은 학부 차원에서는 ‘교수 1인당 학생수’가 커지는 불리함이 있는가 하면, 학우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학부 차원에서는 몇 명의 학우를 위해 학부가 운영되는 재화의 불균형 현상이 초래됩니다. 물론, 자율전공이라는 제도가 학생 입장에서는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만큼 그 예측불가능성을 넘어서는 그만큼의 돈이 요구됨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거기에 외부적 브랜드인 ‘취업률’을 깎아먹는 학부라면, 학교측의 입장에서는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한국사회의 제도적 변화로 더 이상 시장성이 없는 학부의 경우에는 더더욱 골칫거리겠습니다. 이런 이유들과의 연관성 하에서 이미 사라진 교육과정이 있겠고, 앞으로 사라질 교육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정교수 승진이 불허된 교수님들이 해당하는 학부가 이에 해당한다는 생각을 저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자율전공의 취약성을 해결할 수 없는 한동대학교의 한계는 결국 해당 학부를 하나하나 없애는 방향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결국 자율전공이라는 우리 학교의 차별적 제도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영길 총장이라는 상징자본

김영길 총장이 장기 집권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이유도 결국은 김영길 총장이라는 상징이 가지는 자본적 성격입니다. 김영애 사모의 <<갈대상자>>와 함께 기능하는 김영길 총장의 ‘스승의 날’사건은 김영길 총장이 계속해서 교회에서 간증할 수 있게 하며, 이를 통해 ‘후원금’을 끌어 올 수 있게 합니다. 김영길 총장이 총장직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명예총장’같은 자리에서 계속해서 후원금을 끌어오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등의 대안적 모델이 제시되는 이유도 김영길이라는 상징자본을 한동대학교가 버릴 수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이는 재단이 없다는 한동대학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여겨져 왔었습니다. 이는 또 우리학교가 얼마나 후원자에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이번에 언급된 ‘후원자의 항의’가 총장의 판단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쳤는지는 우리학교가 그 후원자에게 얼마만큼이나 의존하고 있는가에 비례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학교에 후원할만한 후원집단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위기’를 말하며

저는 해당 교수님들이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일 쯤은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강직함과 어디 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분들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한동대학교라는 집단입니다. 지난학기에 있었다는 경경의 수업 문제와 이번학기에 있었다는 국제어문의 수업문제, 그리고 잇따른 이번 승진심사문제가 과연 한동대학교를 교수가 있고 싶어 하는 학교로 만들지, 있고 싶지 않은 학교로 만들지는 명확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우려하시는 분들의 ‘위기’는 김영길 총장이 말하는 ‘위기’와는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그저 교수임용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란 무릇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물음 또한 얽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위기’는 비단 한동대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저로서는 도저히 대답을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넋두리

2010. 3. 23. 19:19

인간이라는게 혼자 있어도 혼자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쌓은 구업이 한심하기도 하여서, 그냥 그것 대로 자유하기야 하겠지만 온전히 절연한 것도 아니어서, 그쪽 동네 소식은 아직도 들려오는데, 꽁꽁 고여있는 늙은이마냥 옛날생각을 하면서 요즘에야 하는 생각은, 그 동네 역사가 이제 10년을 갓 넘겼더라도, 얽히고 섥힌 그 누적된 힘의 깊이는 바다건너 침입해온 제국과도 비슷한 깊이의 내력을 갖는지라. 그 깊이는 과연 그대들이나 내가 절대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들고, 그저 파악이나 시도할 수 있을 뿐인데, 이제는 내가 그것 대로 자유한 탓으로, 그것의 파악을 시도한다기 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갖던 중에, 그 다른 것의 전체가 다가오기에 그 동네라는 부분이 다가오는 식으로 파악될 뿐이외다.


읽고 싶은 책들

2010. 3. 18. 11:21

현식형이 책을 새로 번역했다. 책을 작년 11월 말쯤에 보내줘서, 받자마자 일주일 정도만의 다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중국의 전국시대에 관련 사상가들이 궁금해졌다.

현식형이 이번에 번역한 책은 장자에 관한 전체 서적은 아니고, 장자 중에서 몇 구절을 뽑아 그것을 저자가 풀어 놓은 책이다. 현식형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이 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자를 직접 읽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 잠언록
황천춘 외 지음, 김현식 옮김/보누스

중국 전국시대 관련해서 책들을 찾아보다가 아직은 못 읽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 목록을 한번 뽑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시대 비판철학
이해영 지음/문사철
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
김영건 지음/라티오

여기에 사마천의 사기도 더했으면 좋겠다. 사서는 일독했으니, 3경도 한번 읽어야겠다.

역사철학 관련 서적들을 좀 읽었으면 한다. 한스 위르겐 괴르츠의 <<역사학이란 무엇인가>>는 절판되어 있으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으니 조만간에 도서관을 이용할 예정이다. 거기에 요기 이 책도 추가.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리햐르트 반 뒬멘 지음, 최용찬 옮김/푸른역사

독서취향?

2010. 3. 17. 16:43

http://book.idsolution.co.kr/

열대우림 외곽에 위치한 사바나 기후는 독특한 건기가 특징. 수개월간 비 한방울 없이 계속되는 건기 동안 사바나의 생물들은 고통스러운 생존의 분투를 거듭한다. 가뭄과 불에도 죽지 않는 강인한 초지를 기반으로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번성하는 ‘야생의 천국’인 동시에, 혹독한 적자생존의 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또한 고대 인류의 원시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건조한, 절제된, 강인한 생명력. 이는 당신의 책 취향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죽음의 건기를 대비하는:
    죽음의 건기를 대비하는 생물처럼, 치밀한 계획 하에 쓰여진 정교한 책을 선호. 책이란 무릇 간결하고 정확한 내용이어야 함.
  • 대초원 위의 야생동물 같은:
    사바나의 고양이과 육식 동물처럼 유유자적 고상한 취향. 과격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세속적이지도 않은 나름 고상한 선택 기준을 갖고 있음. 아마도 경험이나 교육에 의한 분별력으로 추정됨.
  • 절제된 현실주의:
    멍청한 감상주의, 값싼 온정주의, 상투적 가족주의, 이런 것들로 장사하려는 상업주의를 배격함. 문화적인 보수 성향이 있음. 지나치게 독창적인 책보다는, 절제력과 품격을 갖춘 것을 더 선호함.

당신은 출판시장에서 가장 보기 드문 취향 중 하나입니다. 분명한 취향 기준이 있음에도 워낙 점잖은 탓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당신의 취향은 다음과 같은 작가들에게 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움베르트 에코
로마의 원형 경기장 시절부터, 인류는 줄곧 잔인한 구경거리를 좋아했다. 이런 소름 끼치는 고문에 대한 최초의 묘사 중 하나는 오비디우스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그는 아폴론이 한 음악 경연에서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를 패배시킨 후 산 채로 그의 가죽을 벗겼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실러는 소름 끼치는 것에 대한 이 “자연적 성향”을 아주 잘 정의했다.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처형이 벌어질 때면, 사람들은 그 장면을 구경하려고 항상 흥분해서 달려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만약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만 영화관에서 유혈 낭자한 “스플래터” 영화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일 텐데, 그 영화가 허구로서 제시되는 이상 관객들의 양심이 흔들릴 일은 없는 것이다.
- 추의 역사 中

김승옥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 무진기행 中

J.D. 샐린저
“나는 특히 목사라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모두 목사가 잇었는데 모두들 설교를 할 때마다 억지로 꾸민 거룩한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이 역겨웠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내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 소리를 내는 것이 더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설교가 모두 거짓으로 들린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 호밀밭의 파수꾼 中


sound of silence

2009. 12. 13. 11:23


생각하는 내가 있다.

2009. 12. 04. 14:25

우선 우리는 여기서 직관(Intuition)을 살펴봐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 있어서의 「그러므로」(ergo)가 아마도 예상하고 있음직한 어떤 추론도 여기에는 없다. 이런 공식은 데까르트로부터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서설」의 라틴어번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번역판에는 물론, “Je pense, donc e suis”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약간 분명하지 못하게 이해한 것이다. 구상으로서는 「서설」보다 오래되고(1629년), 근원적인 사고의 과정을 정확하게 간직하고 있는 「성찰」의 제 1권에는 「그러므로」는 없고, 오히려 생각하는 것으로서의 회의의 한복판에 생각하는 그 어떤 것으로서의 <나>의 실재(존재)가 밝혀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들은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의 우리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이해는 「생각하는 내가 있다」(cogitans sum)로 되어야 할 것이다.

_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저, 강성위 역, <<서양 철학사 – 하권ㆍ근세와 현대>> (대구: 이문출판사, 2005), 127.


誠意

2009. 11. 11. 16:47

대학을 줄이자면 보통,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인데, 가치론이 시작되는 부분이 성의(誠意)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毋自欺也 자신을 속이지 아니하는것. 대학을 읽을 때마다 이부분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냥 발췌]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서울: 푸른역사, 2009)

2009. 10. 12. 14:19

짜임새 있는 글을 쓰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다. 일단 다 읽었는데, 몇 구절 뽑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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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종교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막연하고 결과론적인 대답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힘을 획득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한 힘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사회에 무관심한 사상-종교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무관심한 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힘을 획득한 사상만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에 집중하는 것에의 의의는 그만큼 한국 기독교가 정치권력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질 것이다. “종교의 진면목은 신화나 의례, 혹은 상징을 분석하기보다는 정치-경제-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관찰하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관점은 특정 “정치나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기독교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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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내용은 우리나라 개화기에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것에 대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태도를 분석한다. 서구문물을 정신문물과 물질문물로 구분한 뒤, 그에 대한 태도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경험이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고, 그 세계관이 서구 문물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지적을 몇 옮겨둔다.

척사론은, 비록 막연하기는 하지만, 서양 문물의 뒤에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경제 윤리, 그리고 제국주의적 힘과 동기 등에 대한 상당한 통찰력을 반영했다. …

황현黃玹이 지적한 바대로 개항과 국제 통상이 이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역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수입품은 대부분 저렴하고 불요불급한 공산품인데 그런 물품을 사들이기 위해서 조선이 내다 파는 물품은 쌀, 곡식, 피혁 등 일상의 필수품과 금, 은 등 귀중품이어서 조선 경제는 교역을 할수록 더욱 피폐하게 되었던 것이다. <<매천야록>>, 69~70. _ 26번 주석

… 개항기 보수적 유림이나 개화적 중신들에게 공통된 관심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며 살리는 것이었다. _ 책, 28.

중화주의와 서구주의는 당시 동아시아 세계관의 양극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 양극 사이 어느 점에 위치했느냐에 따라 서구 문명과 기독교를 보는 관점이 달랐다. 중화주의와 서구주의는 힘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세계관이었고, 논리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의 좌표가 서구주의쪽으로 옮아간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중화주의와 서구주의가 충돌했을 때 어느 쪽이 이기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_ 책, 53.

서세동점기의 조선에서는 서구적인 것이 진보적인 것으로 강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식 서구주의는 현실적 중화주의보다, 그리고 미국식 서구주의는 일본식 서구주의보다 더 진보적으로 보였다. 개신교를 받아들인 개화정치인과 민중은 더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제국주의와 뗄 수 없게 결합된 상황 속에서, 일본식이든 미국식이든 서구 문명의 근대성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를 받아들이는 셈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이나 서구를 흠모하는 것과 일본을 흠모하는 것의 뿌리는 같았다. 기독교 개화파들도 대부분 서구화된 일본을 흠모했으며, 일본식 서구주의를 받아들였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경우 일본의 조선 강점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_ 책, 55.

이러한 사실들은 척사파들이 폐쇄적이고 수구적이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현재 친미와 친일이 가지는 친화력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 하다.

3장의 내용은 얼마전에 교계에서 유행했던 again 1907이 대상하고 있는 대부흥 운동을 재검토 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통회자복 현상은 유교적 공동체 윤리가 기독교적 사적 윤리로 전환되는 모습이라는 차원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선교사들이 전한 사적인 차원의 종교는, 즉 신과의 개인적 관계에 의해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은 유교적 전통사회 속에서 낯선 개념이었다. 사적인 개인의 선택을 전제로 하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동아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다가 개항기에 서구로부터 도입된 근대적 서구의 인식체계다. 조선 후기의 유교는 개인적 차원의 종교가 아니라 국가와 문명 전체를 아우르는 이치[道]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사적인 개인이 신과 맺는 초이성적 관계가 중심이 되는 기독교와 달리 조선의 유교는 철저히 공적인 제도와 문물의 차원에서 그 정체성을 찾았던 것이다. 성리학의 공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 속에는 사적이고 초합리적 영역의 종교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 부흥운동에서 벌어진 통자회복 현상은 한국 교인들이 개인적이고 초이성적 차원의 기독교를 비로소 경험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점은 부흥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교인들이 일본인들을 증오한 죄까지 회개하고, 고종이 퇴위했을 때 극도로 고조되었던 반일감정을 길선주가 기독교적 원칙에 따라 진정시킨 현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분노까지 회개의 대상으로 삼거나 제어한 이런 장면은 공동체적 감정마저도 사적인 차원의 회개거리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어, 부흥운동 기간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경험했던 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대부흥운동의 결과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한국 교회의 비정치화도, 이와 같은 좀더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와 연결하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_ 책, 124.

7장은 한국 개신교가 베트남 참전에 관련하여 정부와 비슷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국가의 자주권과 관련하여 입장을 세우기 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실리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기독교는 베트남전에 반대한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여론과는 달리 미국 기독교 극우와 같은 입장을 나타내며 한국 정부를 지지했다.

따라서 NCC가 유독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보여준 경직된 견해는 한국 교회의 도덕적, 신학적 판단력이 6-25 전쟁의 경험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손상을 입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점은 종교가 신자에게 “진정으로 참된really real”것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심어준다고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같은 어떤 절실한 가치체계와의 관계에서도 종교적 가치관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냉전 시기 한국의 교회가 보여준 것은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상호관계는 냉전 시기 한반도의 남북 모두에서 드러났던 양자의 놀라운 친밀성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교회의 태도는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기독교라는 종교가 인간의 판단력과 가치체계에 미칠 수 있는 힘과 한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_ 책,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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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개항기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보았을때, 남한의 경우에 처음에는 중국에 이후에는 미국에 붙어먹는 느낌이 강했다. 남한의 전통을 사대의 전통이라 해도 무방할듯 하다. 북한의 현재 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김일성이라는 지도자가 상당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처음부터 표방했던 것도 아니었고,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건 상당해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알라딘]역사학이란 무엇인가

2009. 10. 08. 21:58

[알라딘]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절판도서, 구하기 힘들다. 울산 중부도서관에는 있다. 대여해서 읽자. 혹 접하게 되는 분들은 알려주셨으면 하고 바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