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강독 종강

2007. 6. 13. 09:06

청강 끝나다.

1. 분노에 근거한 정의와 사랑에 근거한 정의가 있다면, 나는 분노에 근거한 정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내 속에 분노가 많음을 안다. 너무나도 숨기기 힘들고 견디기 힘든 이 압제 앞에서 나는 절규하는 수 밖에 없는 거다. 내속에 분노가 너무 많다. 때문에, 그렇게 이전투구 속에서도 “진리없는 정의는 폭력이다.”라는 말이 내 가슴을 울렸던 거다. 너무나도 찔렸던 거다.

2. 철학과 신학, 합리주의와 신비주의, 신비주의의 신비를 합리주의가 언어화 하듯이 신학의 영감을 철학이 정치하게 서술한다. 영감은 언어화 되고 명료하게 인식되어야 하는데, 세속화에 대한 신학의 서술에서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에 영감을 받아 신학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철학이 신학에 영감을 제공하였다. 어쨌든, 이 경우에는 어떤 영감제공으로써의 신학의 역할은 다 하지 못했다.

3. 종교가 현실문제의 해결을 위한 상징체계라는 정의를 받아들였을 때, 그러한 상징체계는 학문이 현실의 변화를 고려해 다시 다른 결론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반영하여 변화해야 한다. 선과 악의 대립, 사탄의 관념 속에는 사탄의 관념이 있기 그 이전에 사탄의 관념이 생겨나게 되는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대적해야할 그 무엇을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4. 종교를 인간이 만든것이라는 인식에는 신의 관념이 인간의 모습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식이 잇따른다. 전지전능한 신의 관념에서, 무능하고 겸손한 신의 관념에 이르기까지 결국 종교는 인간의 모습을 띄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종교가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니, 오히려 현실로 돌아오게 됨이 종교의 위대함?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종교는 저급하다는 응답??

2 Comments to “기독교 고전강독 종강”

  1. 님의 말:

    솔직해서 좋아.넌.
    나 역시 내 안에 분노가 너무나 많음을.
    별것도 아닌 일에 내 맘이 다쳐왔구나 하는 것을.
    졸업을 앞두고 돌아본다.
    자꾸 짜증만 나.

    그래도 솔직하다는 건, 인식한다는 건,
    변화할 여지가 높은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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