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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님 웨일즈. 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동녘 |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의 지식인의 삶. 동의할 수 없어서 기억에 남는 부분도 있고, 어떤 공명 때문에 기억에 깊이 남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김산의 성장 과정이 잘 드러나기에 너무나도 뿌듯한 기분으로 책을 덮는다. 자서전적 역사적 기록. 국제주의의 입장에서 중국 공산혁명에 몸을 던져 독립운동에 기여한 혁명가.
무엇보다, 김산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는 여러 노선들의 여러 인물들의 개성이 서술된다. 무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등… 각각의 캐릭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사실 이게 가장 현실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까. 사랑 – 가장 큰 욕구이자 욕망 아닌가? 삶의 투철함, 신념은 말과 앎으로만 해결될 부분이 아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신념화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신념을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것이 중요하다는건 알아요. 하지만, 내것을 포기하지는 못하겠어요.” 중요한 건 이 지점. 평범한 사람과 위대한 사람은 이곳에서 갈라진다.
25개의 장 중에서 3개의 장이 여자에 관한 이야기 인데(9장 결코 결혼하지 않으리라. 17장 위대한 첫사랑. 23장 두 여인) 김산은 “혁명생활 속에서는 절대로 가정생활이 불가능할 것이고 그러므로 내가 어떤 여성을 부지부지하게 사랑한다 할지라도 결혼한다는 것은 그녀에 대하여 공명정대치 못한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깔려 있었다.”(181)라고 말하는데, 윤리적인 태도이지 않나? 또 이를 통해서 김산이 자신의 감정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살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젠가 칼빈대에서 박사가 강연온 적이 있었는데, 그 외국인 박사는 성서에 예수의 부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자신에게 은혜라고 말한 바가 있었다(예수가 정말로 결혼을 했을까 하는 논쟁에서 벗어나서). 예수의 부인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면, 여성들은 예수의 부인을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다.
이 이야기를 여성주의에 조금은 편향된 것으로 판단되는 한 누나에게 말한적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라고 그랬다. 만약에 세상에 예수같은 남편만 있다면, 여자들이 얼마나 괴롭겠냐며 너스레를 떤다. 이야기가 나온 맥락은 굉장히 자신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해 주었었는데, 바깥에서 큰일 하는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내조하는 부인이 요구되는 가부장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어떤 맥이 닿아 있음을 느꼈다.
어쨌든, 자신이 가정마저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 뻔하다면, 결혼을 한다는 것이 여자에게 몹쓸 짓은 몹쓸 짓일 것이다.
어쨌든, 김산에게는 혁명사업과 여성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 아주 고전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결국 김산은 “나는 혁명사업을 하면서 살아가야지, 여자나 돌보며 살 수는 없다.”(184)며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을 결심한다.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이자 스승인 김충창의 연애를 통해서 김산은 또 어떤 연애관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김충창은 원래 중이었는데, 사랑에 어쩔 도리가 없었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김산은 이렇게 반박한다. “혁명가도 남자이고 인간이다. 어찌 되었든 이 연애는 진행될 것이다. 너희들에게 반하는 아가씨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너희들은 모두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213)
이어 “나는 속으로 김충창의 행복한 연애사업을 진심으로 부러워하였다. 내 결혼관은 눈에 띄게 변하였다. 아가씨만 이상적이라면 연애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214)
결국, 그도 총명하고 경험이 많이 보이는 특이한 매력의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혁명활동이 연애로 인해 방해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한 김산에게, 그녀는 동지애 그리고 사랑이 주는 용기 등등으로 설득을 했으며, “독립적이고, 육체적으로 튼튼하고 매력적이며, 지성이 있고, 마음씨가 따뜻하고, 용감하고, 솔직하고, 훌륭한 혁명가”(324)와 김산은 사랑에 빠진다.
뭐 어쨌든, 첫번째 사랑은 어떻게 가고. 너무나도 긴장된 삶의 연속인 김산에게 또다시 한 여인이 나타나게 된다. 김산의 방에 형사가 들이닥쳤고, 형사들은 김산을 찾아오는 사람을 잡기 위해 잠시간 방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그런데, 한 여성동지가 김산의 방을 찾게 되었고, 그녀는 잡힌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정부고관이었기에 쉽게 석방되게 되고, 김산도 어찌어찌 해서 나오게 된다. 그 후 여인은 김산에게 청혼하게 된다. 김산은 그녀의 무조건적인 태도에 감명하게 된다. 김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이 아가씨는 아주 어렸으므로 내 뜻대로 키울 수 있는 여성”(443) 이었고, 결국 그 둘은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사는 중에, 김충창이 찾아온다. 김산의 짝을 찾아왔다는 것. 김충창은 김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게는 자식이 셋이나 있네. 그리고 나는 가정의 행복에 빠져버린 구제될 수 없는 중년층의 전형일세. 그렇지만 자네는 아직 자유롭고 겨우 서른 살밖에 안 되지 않았나? 자네는 어떤 것에든 포부를 가질 수 있어. 그런데도 자네 마음은 슬프고도 쓸쓸해. 자네에게는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자네의 자아를 어루만져주는 어린애 같은 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려자가 필요하네.”(449)
결국 김산은 김충창이 말하는 반려자를 당내활동을 통해 마주치게 되었지만, 자신의 처와 함께 있을 것을 고집한다.
아리랑에서 나타나는 혁명가들이 접하는 여인상은 두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헌신적인 여성과 독립적이고 지혜로운 여성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