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월요일, 8월 27th, 2007규항넷에 오른 ‘타인의 취향’ 이라는 글에 트랙백을 걸었으나 당장에는 올라오지 않았다. 오늘 보니 올라와 있었는데(그래서 그런지 방문자 수가…), 그 글에 동조하는 트랙백과 내 글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세상은 ‘훌륭하게 사는 사람들’과 ‘훌륭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 둘로만 나뉘는 게 아니다. 아마도 숫자로는 가장 많은 또 하나의 사람들, ‘훌륭하게 살 수 없는(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는 바로 그들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했으며 전망했다. 예수가 헤롯 괴뢰정권이나 성전지배세력(훌륭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보다 바리새인들(훌륭하게 사는 사람들)과 오히려 더 많은 갈등을 벌인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경멸은 억압보다 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_ (gyuhang.net – 경멸)
끄덕끄덕 거리게 된다. “경멸은 억압보다 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내 글에 대한 반론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괜스러운 맥락부여라고 생각되었다. 내 글의 요지는 관념화된 맥락부여에 대한 지적이었고, 그 부분에 대한 답은 아니다. 억압이 아닌 경멸을 이야기 하지만, 디 워를 옹호하는 사람들 또한 인텔리들의 취향에 대한 ‘경멸’이 있었다. 결국 ‘선빵’가리기의 관념성. 아직 대답이 된건 아니지 않은가?
PS. 그리고 그냥 떠오른 생각 하나. 훌륭하게 살 수 없는(살 줄 모르는) 사람들 에게 ‘칼’을 건네 주어야지, 그들을 대상화시켜 ‘해석’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PS2. ‘아마도 숫자로는 가장 많은 또 하나의 사람들’ – 대중과 소통하려는 김규항씨의 어떤 지향성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소통의 대상이 되어야지 어떤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