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2월, 2007

Political Compass

수요일, 12월 26th, 2007

1. Political Compass 라는 것이 있다. 이 테스트는 경제를 기준으로 X축, 권위적인 정도를 Y축으로 놓는다. X값이 양수 값이 나오면 우파이고, 음수 값이 나오면 좌파, Y값이 양수 값이 나오면 권위주의자, 음수 값이 나오면 자유주의자에 가깝다. 내가 이걸 안 때는 2003년도였는데, 당시에는 경제는 중간에서 약간 왼쪽 그리고 약간 자유주의적인 성향으로 나왔다. 당시에 나는 모든 ‘운동’을 거부하는 그런 종류의 꼴통이었는데, 내 경제적 성향이 왼쪽이라는 것을 오히려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급격히 불손해 지기 시작하더니, 극으로 달린다. 이제는 할 때마다 경제는 -8.88이 나오고 권위적인 정도도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방금 또 해보았는데 -9.33 이 나온다. 이 수치는 몇년째 거의 변동이 없다. 할 때 마다 조금씩 갈등하는 질문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2. 영어학원 강사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충혈된 눈으로 수업에 들어오는데, 충혈된 이유가 쌍꺼풀 수술을 했기 때문이라고 발랄하게 그 이유를 말한다. 영어 교육과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많아 봤자 나보다 2살 많을 것 같다. 어떤 책을 가지고 오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 제목이 ‘당당한 부자’다. 영어학원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욕망을 잘 표현하는 자기개발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 위에 작은 글씨들이 쓰여 있어 자세히 보니”「집 없어도 땅은 사라」의 김혜경이 전하는 당당한 부자 되는 법!” 어이쿠야! 부동산 투기 홍보하는 책자겄구만!! – 나는 자기개발서를 혐오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일까? 이런 서적들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책은 안 읽는 게 좋은 거다.

3. 얼마 전 TV 뉴스에서 현대중공업의 매출실적에 대한 방송이 나왔다. 실적이 잘 나왔다는 이야기였고, 또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기업과 하청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동환경이라는 것은 사업주로서는 ‘돈 들어가는’일인데, 대기업은 노조와 정부관청의 감시 때문에 안전장치를 갖추고 보험도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하청업체의 경우 비정규직 채용도 많고 안전장치나 보험을 보장할 정도로 넉넉한 업체는 드물다. 또 하청 일이라는 것이 워낙 고되다 보니, 직장을 유지하는 근로자는 거의 없고, 업체도 근로자 떠날때 까지 등골 빼먹자는 심보로 운영하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는 경우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자신들이 하는 것보다 하청에 맡기는 것이 비용이 싸게 들 경우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용절감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안전장치와 보험에 들어가야 할 돈을 하청에서는 지출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비용절감이다. 그 결과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고사망률이라는 통계로 나타난다. 이게 TV 뉴스에서 나왔다.

4. Political Compass 에는 이런 질문이 있다. “정부는 공공의 대중을 속인 기업들을 처벌해야 한다.” 기업의 세련된 착취를 바라보면, 이 질문에 강력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현대에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이윤들은 크고 작게 약자들을 착취해서 이루어진다. 또, 이러한 착취 덕분에 대기업 사원들은 좋은 노동환경을 보장받게 된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대립되다 보니, 노동자들 간에도 계급이 생긴다.

덧 2008.01.05. update.
내가 예전에 했던 테스트 결과를 기록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2003. 05. 18.
Economic Left/Right: -3.88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1.59

2005. 02. 11.
Economic Left/Right: -7.00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6.82

2006. 03. 02.
Economic Left/Right: -8.88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9.03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토요일, 12월 22nd, 2007

소리아카이브라는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여러가지 들을 거리가 참 많다. 그중에서 정진홍씨 강연을 걸어둔다. 이 강연은 다음세대재단과 문지문화원 사이가 공동주최한 석학특강-지성의 향연에서 이루어졌는데, 정진홍씨 외에도 많은 석학들이 강연하였다. 이런 좋은 들을 거리를 보니, MP3 플레이어가 사고 싶어진다. 강의 내용 중에는 예전에 열린종교 시민대학 강연을 보았을 때와 겹치는 내용도 있다.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1) – 정직하다는 것(물음과 답변) 2007/11/20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2) – 관성의 비극(범주와 개념) 2007/11/27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3) – 인문학적 상상(새언어 낳기) 2007/12/17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4) – 경험과 기억(스침과 지님) 2007/12/19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5) – 대담 with 장석만(충간문화연구소 소장) 2007/12/21

오마이뉴스 –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인터뷰

수요일, 12월 12th, 2007

오마이뉴스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인터뷰가 실렸다. 긴 편이긴 한데 읽어볼만 하다.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인식과 연관되어 있다. 아나키즘, 민주주의, 근대-탈근대, 생명, 문학의 종언-지식인의 종언, 평화주의, 공동체주의, 내가 모를 여러 문제인식.

“내 주머니에 현금 채우기 위한 경제? 선거 민주주의로는 살 길 못 찾는다”
이명원의 좌우지간⑥-1:<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당 반대하는 녹색 지식인의 ‘정직한 비관주의’
이명원의 좌우지간⑥-2:<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김규항의 변

수요일, 12월 12th, 2007

예전에 한창 디워에 관한 논쟁에서, 김규항씨가 한겨레 21에 ‘타인의 취향‘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논쟁적 사안이라, 김규항씨의 글도 논쟁에 휩싸였는데, 아마 강의에서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나 보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일종의 주석으로 ‘고장난 지성‘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김규항은 ‘디워’에서 나타난 네티즌의 행태에 대한 지적은 당연히 동의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자신은 “한국 네티즌의 행태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누구보다 비판적인 생각을 피력해왔”다는 것.

고장난 지성은 ‘붉은악마‘와 ‘디워’의 집단주의를 비교하며, 붉은악마가 더 심각했음에도 붉은악마의 경우에는 그 ‘지성’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문제인식으로 시작한다. 그러한, 지식인들의 비일관적 모습의 원인은 붉은악마와는 달리 디워는 지식인의 ‘취향’을 거슬렀다는 것이다. 이어서 대중들의 이러한 모습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지식인의 실천에 대해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취향이 불편한 것은, ‘디워’의 집단주의적 현상이 ‘반지성주의’적인 문제인식의 발로처럼 묘사되는 부분이다. 광기에 맥락을 부여한 것은 김규항이다. ‘고장난 지성’은 불편하지 않지만, ‘타인의 취향’은 여전히 불편하다.


유리상자, 러브레터에 나와서…

월요일, 12월 10th, 2007

유리상자가 12월 7일 금요일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서 텔미, 거짓말, 사랑앓이를 불렀다.

이건 작년 것.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심재관

수요일, 12월 5th, 2007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심재관 지음/책세상

‘들어가는 말’에서

‘불교학은 동양에 존재했던 학문이 아니다. 이는 단지 동양을 대상으로 한 식민 제국들의 이해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오리엔탈리즘의 한 부류는 나름대로 약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서양의 학문분과이다.’ …

‘불교학은 문헌학이라는 특정한 학문 또는 그 학문의 방법적 원칙에 기생해 탄생한 근대의 학문이다.’…

‘불교 연구가 근대화된다는 것은, 그 학문이 갖는 식민지적 역사로 말미암아 중심과 주변, 지배와 종속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효과는 전 지구적 환경을 맞아 종결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확대될 수 있다.’…

탈식민주의 논의하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생각난다. 그만큼 그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이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식민시대가 끝났음에도 한국에 남아있는, ‘우리 안의 식민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어떤 연구 리포트를 작성하고자 주제를 정하고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도 왕과 신하의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적 성격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막스 베버는 ‘보편사 문제’를 화두로 삼았는데, 보편사 문제란 서양과 달리 동양이 왜 합리화의 발전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다.
앞서 말한 ‘조선시대에도 왕과 신하의 관계 속에도 민주주의적 성격이 있다.’라는 주제는 탈식민적이기 위한 주제로 보인다. 서구인들이 말하듯이 조선시대 왕정이 결코 비합리적인 제도가 아니었음을 항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왕과 신하 관계를 평가하는 척도 자체가 민주주의와 합리주의라는 서구적, 제국적 시각이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불교학이다. 이제는 너무나 멀어져 밝힐 수 없게 되어버린, 본래의 전통적 불교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정작 근대화도 제대로 되지 못한 불교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제국들에 의해 문화제가 약탈당함으로써, 우리는 연구를 위한 물적 토대를 잃어버렸다. 이어, 물적 토대의 약탈을 통해 제국은 지적 권위마저 가지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것을 말함에도 타자화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일본과 조선의 불교학 발전과정에 대해서도 서술하는데, 양자의 비교는 일본의 불교학이 철저하게 근대화된 것에 비해, 조선의 불교학이 근대화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들어가는 말에서는 ‘오히려 실천은 양자를 경계할 수 있는 섬세한 시각을 필요로 하며, 그러한 차별을 통해서 불교가 스스로 그 정체를 회복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하는 일이다.’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불교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실은 말을 하는 것 같다.

불교의 ‘비역사성’과 ‘살아있는 다원체계’ 그것이 불교가 종교적 일 수 있는 ‘정체’ 아닐까?


[[나비와 전사]], 고미숙

토요일, 12월 1st, 2007
나비와 전사
고미숙 지음/휴머니스트

지난번에 시민지식네트워크 학술제 갔을 당시, 현식이형이 사 준 책이다. 학술제에서는 도서행사도 같이하고 있었는데, 그 중 많은 부분이 사상가들을 해석해놓은 2차 서적이었다. 나에게는 약간의 원전주의적 취향(나는 사상가가 직접 적은 책을 읽은 후, 그 사상가에 대한 해설서를 읽어야 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원서를 읽지 않음은 언어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일종의 타협…)이 있는 탓에, 그 누구의 2차 서적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

이 책은 푸코와 연암, 그리고 조금의 불교적 사유를 섞어서 근대 바깥을 이야기한다. 책의 부제목이 ‘근대! 18세기와 탈근대를 만나다’인데, 중세 속 연암의 탈 중세적이면서 근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사유를 기반으로, 근대의 기반 지층을 흔들어 버린 푸코의 사유를 기반으로, 우리 속의 근대적 사고들을 흔들어 버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력하게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개화기에 정신적 물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졌으며, 그만큼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화기 이후에 우리의 사유는 어떤 ‘단절’을 겪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처절하게 느껴진다.

처음 시작인 “1 속도의 경이, 시공간의 재배치” 부분에서는 특히 시간관과 연관되어 역사관에 대해서도 이야기된다. 시간이 단선적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복합적인 시공간으로 여겨지는 것은 단지 포스트모던의 징후가 아니라, 근대 이전의 시간 또한 그러했다는 것.
근대의 시간은 자본주의와 결합하게 된다. ‘시간은 돈’!!! 시간은 돈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귀한 가치처럼 내세우는 ‘노동의 신성함’역시 노동하는 것은 돈이 되기에 유의미한 것이다. 게으른 것은 돈이 되지 않기에 무의미하고 비난받아야 할 것이 된다. 결국, 우리는 빠른 것을 추앙하게 되며, 그 기저에는 화폐라는 숨어있는 신이 작동한다. 고미숙 씨는 속도의 파시즘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우리는 잠자는 시간마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줄여야 할 무엇으로 간주하게 되며, 개화기 계몽 담론에서는 잠과 꿈을 깨우는 ‘종’이라는 상징물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근대의 단선적 시간관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사회진화론과 결합하게 되며, 이 사회진화론은 오리엔탈리즘의 바탕이 된다.

이어서는, 인간과 자연의 적대적 이분법의 문제, 연애가 신흥종교 못지않은 위세를 얻기까지의 과정, 근대적 사고 내에서의 연애의 죽음충동, 여성-되기와 유머, 양생학에서 위생학으로, 이어 생체권력, 앎의 경계지음에 대한 경계…

요즘은 길게 적어 놓은 것들을 짧게 요약한다는 게 정말 불필요한 짓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 책 정말 대박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