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월, 2008

성과 속

목요일, 1월 31st, 2008

“그렇지만 이러한 유추적 표현법은 그 전혀 다른 것을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에 기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즉 인간의 자연적인 경험을 초월하는 모든 것을 언어는 부득이 그 경험에서 얻은 용어로 환원시키게 된다.”M.엘리아데, [[성과 속]] (서울: 한길사, 1998), 이은봉 옮김, 48.


울산에 대한 잡설

월요일, 1월 21st, 2008

뉴스에 울산이 실업률이 제일 낮다는 기사가 뜬다. 뉴스에 서울대 지원대비 합격률이 울산이 전국 최고의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30%에 육박한다나?? 이에 고등학교 교사들의 진학지도 덕분이라는 칭찬도 나온다.

울산에는 공업탑이라는 곳이 있다. 교통의 중심지라고 봐도 된다. 주변에 고등학교들도 비교적 많이 있고, 그러다 보니 학원들도 많다. 어쨌든, 그곳에는 문화문고라는 울산 최대의 서점이 있다.

그런데, 그 최대의 서점이라는 문화문고에는 책이 없다. 최근 이 서점이 쇄락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책이 없다. 규모는 크지만 절반 가량이 고등학생들 문제집으로 채워져 있고, 그 나머지의 절반정도는 여성잡지로 자리를 차지한다. 그 나머지의 반 정도는 영어문제집이다.

이렇게 쇄락하고 있는 울산 서점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까? 서점이 잘 안돼는건 인터넷 서점의 등장 이후로 전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울산은 정말 특별하게도 서점이 없다. 비교하자면 포항보다도 더 책이 없다.

“산업도시 울산에서 문화도시 울산으로~” 울산방송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울산은 과연 건조한 회색도시다.

실업률과 서울대 합격률과 더욱더 쇄락하는 시내 서점의 관계에 대해서 그냥 한번 생각해 본다.


잡설

화요일, 1월 15th, 2008

1. 좀 된 이야기인데, 결국 MP3를 질렀다. YEPP – U3 4G 샀다. 삼성 제품이다. 예전에는 MP3가 많이 비싼 제품이었는데, 대중화되어서인지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

2. MP3가 삼성 제품이라서 떠오른 생각인데, 태안 기름유출 사건에 대한 삼성 음모설까지 떠돈 적이 있다.
(모든 것들이 맥락을 따져서 보면 더 명료해 지긴 하지만,) 음모설이라는 게, 음모설이 말하는 사실 자체보다. 그 맥락 속에서 말하는 바가 더 많은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맥락을 살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모론은 그 주체가 누가 되었든 태안 사태를 ‘고의적’으로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러한 주관적 ‘고의’는 인간 내면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굉장히 증명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삼성 같은 대기업이나 해경 내부에 어떤 고의성을 증명해 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여태껏 무관심했던 환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게 차라리 효율적이고 지속적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예전에 지율스님 사태 때처럼 도롱뇽이라고 해서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법적으로 다툴 수조차 없는 그런 사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법학적으로 근본적인 지점이라 많은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좀 근본적인 게 필요한 시점 아닐까?

3. 뭐 이런저런 반(反)삼성적 정서가 조장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걸 이용해서 또 장사해 먹고자 하는 인간들이 생긴다. 가령 LG 다니는 직원들은 이런 걸 보면서, “삼성물건 사지 말고 LG 물건 사!” 라는 권유를 하게 되기도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삼성물건을 사건 LG 물건을 사건 삼성직원이나 LG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이득 되는 건 없다.
LG에 취직한 어느 형이 LG 물건 사라고 할 때, 하나 물어보도록 하자. “형 내가 LG 물건 사면, 형 보너스라도 받아요?” 물론, 그 형이 영업사원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기도 한다.

4. 산 MP3 속에는 강유원씨가 몇 년 전에 radio21에서 방송한 ‘강유원의 재미없는 철학이야기’ 코너에서 한 ‘공산당 선언’ 읽기와 이정우씨가 강의한 동영상을 MP3 파일로 컨버팅 해서 넣어놓았다.
강유원씨 라디오 방송은 다 들었다. 강유원씨 라디오 방송에서 정보전달의 효율이나, 강유원씨 홈페이지가 참여하고 있는 ‘텍스트 지향’ 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는데, 과연 인터넷 동영상은 전달하는 정보에 비해서 너무 용량이 많이 든다는 강유원씨의 말에 동의한다.
칠판에 글씨 쓰는 소리를 잠시간 감상하며, 음성만으로도 많은 것을 들어 재끼며 문명의 풍요로움을 맛본다.

5. 이렇게 동영상이 전달하는 정보의 한계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미술이나 영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미술이나 영화에서 담아내는 것들도 존재적으로는 참 많을 수 있겠지만, 너무 어려워지면 인식이 안 되기 때문에, 미술이나 영화 평론이 필요하게 되는 것 아닐까??
뭐 엄밀하게 따지면, 딱딱한 책들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용어나 개념어가 함축하는 내용이 많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스승을 필요로 한다.

6.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참 자주 음미할 만하다. ‘신이 없다.’도 아닌 ‘신은 죽었다.’인데, ‘신이 없다.’는 명제와 참 대비시켜 생각할 만하다. 좀 더 풀어 보자면, 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은 죽었다.’는 것인데, 이는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신의 인식에 대한 부정이다.
가령 백만 년 후에, 전덕규라는 한 인물의 실존 유무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전덕규라는 인물을 백만 년 후에도 살려 놓으려면 그의 살아있었음을 증명할 사료도 필요하고, 생각을 증명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며, 전덕규의 정신에 대해서 백만 년 후에까지 그 시대적 유용성을 설파할 어떤 종류의 학자들이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 있어야 하는데, 만약에 전덕규의 살아 있었음을 증명할 사료도 없고, 그를 연구해주는 학자들도 없다면, 전덕규의 존재 유무와는 또 별도로 후대 사람들은 전덕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죽은 것과 같은 것이다. 전덕규는 존재 했음에도 전덕규에 대한 인식은 죽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니체는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정신에 대해서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예수의 진정한 정신이 인식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니체는 진정한 예수의 정신에 대해 알았다는 말이 되는 것인가? 독설가이고 조금은 오만한 태도인 것 같다. (그래도 니체의 말은 음미할 만하다.)

7. 강유원씨는 공산당 선언에서 허무주의의 도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하는데, 허무주의가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모던의 속성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동의하는 바인데, 그러한 내용이 공산당 선언에서 나온다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해석’인 것 같다. 공산당 선언을 적었던 당시의 마르크스가 그러한 생각을 했으리라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칸트의 인식이원론에서 허무주의를 예언했다고 주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해상 하이라이프 CF

금요일, 1월 11th, 2008

광고 카피

건강진단을 받았다.
100살까지도 거뜬하겠단다.
근데, 낼 모래가 은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광고 속에 현실이 들어 있다. 이제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이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그것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삶이 불가능한 시대다. 그러한 삶의 불안함을 더욱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그것을 조장하는 CF를 만들고 또 그것을 상품화하여 파는 것이 보험이다.

이 CF는 우리에게 말한다. “건강하면 뭐하니? 돈 없으면 사느니만 못하단다.”

현실인식마저, 상품판매를 위한 도구로 변모한 역설적이고 잔인한 CF다.


비범함을 향한 평범함의 항변 –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화요일, 1월 1st, 2008
영화 포스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 龜は意外と速く泳ぐ)
미키 사토시 감독, 코미디, 90분
우에노 쥬리, 아오이 유우

스즈메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거북이에게 밥 주는 것이 일이다. 외국지사에 근무 나간 남편은 매일매일 전화가 오긴 하지만, 묻는 것은 거북에게 밥을 줬느냐는 내용뿐이다. 그 대화마저도 성실하지 않다. 전화를 끊은 직후 다시 전화가 와서 묻는다. “거북군 먹이 줬다고 했던가?”

일상을 지루해 하는 스즈메의 시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배관공과 쓸데없는 시비가 붙어 배관공의 집까지 가게 되고, 또 배관공이 삐쳐서 “집까지 걸어서 가!”라고 한 말에 정말로 그냥 집까지 걸어가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런 스즈메가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하게 되고, 스파이 임무를 받게 됨으로써 이런 일상은 특별해져 버린다. 스파이 임무는 “눈에 안 띄도록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것”. 임무가 되고 보니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비범함은 평범함을 어떻게 바라볼까? 어중간한 맛을 내는 라면집은 평범함을 바라보는 비범함의 우월감에 가득 찬 시선에 반항하는 장소이다. 어중간한 맛을 내는 것이 맛있는 맛을 내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거라는 대화가 오고 가더니, 영화는 정말로 맛있는 라면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보임으로써 어중간한 맛은 맛있는 맛을 내지 못하는 ‘패배자들의 변명’이라는 주장을 과감하게 논박한다.

영화는 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상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오히려 잘나가고 비범한 쿠자쿠가 평범한 스즈메를 부러워하더니, 너무 비범해서 스파이 혐의로 감금당해 버린다. 영화의 결말은 스즈메가 쿠자쿠를 구하려고 출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는 ‘평범’의 위대함을 웅변한다. ‘비범’을 구원하는 ‘평범’의 ‘비범’함. 영화 내내 펼쳐지는 별로 웃기지도 않는 오타쿠 유머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통해 비로소 1급 유머로 승화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2번 보면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