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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전학대회 비평 – 평의회여 차라리 죽어버려라 !!

목요일, 2월 28th, 2008

사람들은 회칙 탓을 많이 했다. 분명히 누군가가 잘못한 것이었는데 회칙 탓을 많이 했다. 돌이켜 보면, 그건 꽤나 쉬운 레파토리 였던 것 같다. 내가 1학년 때 이었었나?? 그때도 선거로 시끄러웠었는데, 한 선배는 이런 내용과 비슷한 말을 했다. ‘이번 사건으로 회칙을 보게 되었는데, 회칙이 정말 엉망이더라. 이런 회칙을 남겨두고 가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미안하구나.’ 그리고 그 선배는 졸업했다. 그 후에도, 한동에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혹자는 무엇이 문제라고 하였고, 또는 그 문제는 근본적으로 회칙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 얼마 전 선거 당시에도 그랬다. 누군가도 이미 지적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랬지만, 그건 분명히 학생대표들의 문제였었다. 그럼에도, 그런 말은 어김없이 나왔다. “구조의 모순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2월 18일 전학대회 회의록이 올라왔다. 안건이 10개나 된다. 그렇게도 지루한 회의 가운데 평의회와 관련된 안건이 2개나 된다. 평의회 관련 안건은 ①평의원 활동 지원비 지급 기준 제정에 대한 의결 ②총학생회칙 제 69조 평의회 소집 및 의결정족수에 관한 해석 문제였다. 그중에서 두 번째 안건의 내용이 눈에 뜨인다. 지금 상황에서는 회칙해석에 관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어 보임에도 평의회 소집에 대한 회칙 해석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난데없이 2부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평의회를 2부제로 운영하기 위해서 회칙해석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평의회에 참석하지 않으니, 1부와 2부로 반반을 나누어 평의회의 의결을 진행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나간 논의를 돌아보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지난 학기에 있었던 의미 있는 논의를 기억하고 있다. 별것 아닌 횡수 논쟁에서 무슨 큰 의미를 찾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논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과 논쟁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혼동이야말로 여태껏 진행되어왔던 학생대표들의 평의회 활성화 노력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분별없는 열정이었는지 잘 드러내는 논의였다. 그리고 그 문제는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i3 횡설수설 글 번호 14414 // 평의회는 없어져야 한다. – 윤군
i3 횡설수설 글 번호 14442 // 평의회는 없어져야 한다 2. – 윤군
i3 횡설수설 글 번호 14504 // 평의회 문제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 윤군
  1. 민주적 정당성

    이 글들에서 ‘윤군’이 집요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평의회가 ‘민주적 정당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총학생회칙 62조 에서는 평의회 의원은 팀장으로 ‘호선’된 자로 하는데, 이는 평의회가 대의적 기구로 활동하기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다는 지적 이었다. 또한, 평의회가 의결로써 행사할 수 있는 정책제안권, 집행지연권, 직무감찰권은 평의회 의원들 재적의원 1/5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하기 때문에 그 적은 수의 평의회 의원들로는 학우들의 의사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평의회는 단순한 여론수렴업무를 위한 일종의 ‘사무기구’로 볼 수 있는데, 그것마저 효율적이지는 않으니 평의회를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윤군의 주장에서 가장 근본 되는 부분은 ‘민주적 정당성’의 결여에 있으며, 다른 주장들도 그에 관한 문제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나는 윤군이 지적한 평의회의 ‘민주적 정당성’결여에 대한 문제인식에 깊이 통감하고, 왜? 회칙이 그렇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회칙개정당시의 자료를 찾아봐야만 했다.

    • - 회칙개정 과정

      현 회칙 이전의 회칙에서 우리는 평의회를 처음으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제안이유서에서 평의회가 언급된 부분을 찾아보면, ①<들어가는말>”각 팀대표 1인씩으로 구성될 평의회를 통해 공론장을 구현하여 집행부의 정책 집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학 내 학생 자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②<제안이유>”나. 현실 상황에 적합한 총학생회칙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학생기구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적극적 여론수렴기구인 평의회를 구성함으로써 회원의 학생정치 참여 의지를 북돋아 바람직한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개정하려는 것임.” ③<주요골자>”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론수렴을 위해 평의회를 신설하고 집행부의 정책 집행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함(안 제11장).”이 있다.

      윤군이 지적한 평의회 선출 부분과 평의회 소집의 정족수 부분은 현 회칙과 이전 회칙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표 [평의회 구성과 의결정족수 비교]

      예전회칙 현회칙
      제 62 조 (구성 및 선출)
      1 항 평의회는 각 팀에서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다.
      2 항 각 팀의 대표는 팀 재적인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한다.
      제 62 조 (구성 및 선출)
      1 항 평의회는 각 팀에서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다.
      2 항 각 팀의 대표는 당해 학년도 매학기의 팀장으로 선출된 자로 한다.
      3 항 팀장의 선출은 팀원 중에서 호선한다.
      제 69 조 (소집 및 의결정족수)
      1 항 평의회는 총학생회장 또는 재적회원 1/7 이상의 연명에 의한 소집 요구가 있을 때 의장이 소집한다. 단, 긴급한 경우에는 의장이 소집할 수 있다.
      2 항 평의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단, 제64조제2항, 제65조제1항과 제3항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여야 한다.
      제 69 조 (소집 및 의결정족수)
      1 항 평의회는 총학생회장 또는 재적회원 1/7 이상의 연명에 의한 소집 요구가 있을 때 의장이 소집한다. 단, 긴급한 경우에는 의장이 소집할 수 있다.
      2 항 평의회는 재적의원의 1/5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한다.
      3 항 평의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단, 제64조 제2항, 제 65조 제 1 항과 제 3 항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여야 한다.
      4 항 가부동수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
    • - 과정에서 드러나는 교훈

      표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우리는 평의회 의원의 선출 방식이 현재와 같은 호선의 방식이 아니라, 과반수의 출석과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 선출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평의회의 의결이 현재의 1/5 이상의 출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반수의 출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현 회칙보다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동체 리더쉽 팀장과 평의회 의원에 아무런 연관을 짓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 회칙 개정 당시에 학우들이 팀장과는 별도로 평의회 의원을 선출해야 한다는 점을 몰랐다는 점과 회칙에서 요구하는 과반수의 출석을 평의회 개회에 요구할 경우, 현실적으로 개회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개정이 이루어 졌다. 당시에도 학생 대표들은 평의회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에서, 이같이 평의회의 민주적 정당성을 희생시킨 것이었다.

  2. 팀 대표 = 평의회 의원 ??

    우리는 지난 논쟁에서 윤군과 한 교수가 부딪혔던 또 하나의 쟁점을 기억한다. 그 쟁점은 ‘팀장이면 팀장이고 우리의 대표이지, 민주적 정당성은 또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교수는 자신의 팀장의 민주적 정당성에 의문을 품는 윤군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했는데, 교수는 팀 팀장을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학생정치에 관심이 없음에도 이 논쟁에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비록 우리 평의회가 팀장을 평의회 의원으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부터 그러하였던 것도 아니고, 공동체 리더쉽 팀장으로서 요구되는 의무와 평의회 의원으로서 요구되는 의무는 분명히 다른 것이기에 그 둘은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혼동은 아직도 계속되는 것 같다. 이 둘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들은 예전의 논쟁에서도 많이 언급되었으니 읽어보도록 하자.

과거와 현재를 비춰 보며…

  1. 평의회 2부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평의회 2부제는 또 다시 대표들의 명분으로 평의회의 민주성을 죽이려는 시도이다.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합리적 토론’이후의 표결이다. 민주주의는 ‘합리적 토론’이 없을 경우에 중우정치가 된다. 민주주의를 구체화 시킨 제도는 의회와 선거인데, 선거의 경우에도 그 이전에 ‘사회적 의사소통’을 하는 기간을 둔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의회와 선거가 구별되는 지점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주제에 관하여 토론을 하느냐 마느냐의 여부이다.

    그런데, 평의회 2부제는 1부와 2부사이에 소통이 단절된다. 단지 표결 수만 합산해서 대충 끼워 맞추겠다는 다분히 형식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사고는, 의원들의 의사확인에만 집중했을 뿐, 정작 의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토론’의 기능을 무시한 사고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평’의회’가 정말 ‘의회’인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팀 대표 투표인단’ 이라고 다시 명명하는 것은 어떠한가?

    전학대회는 이 같은 자의적이며 어디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으며,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회칙 해석과 적용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2. 평의원 활동 지원비 지급 기준 제정

    • - 공동체 리더쉽과 평의회를 구분하자.

      전학대회의 평의회에 관련 된 안건 중 첫 번째 안건에 관한 논의는 기존에 학생과에서 ‘공동체 리더쉽 활성화 방안’으로써 팀장에게 장학금이 지급되는 것을 ‘팀장/평의원 활동 지원비’로 명의를 바꾸고 그것의 지급 기준을 제정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규칙 제정에 ‘공동체 리더쉽’이라는 교육적 의미에서의 활동과 ‘자발적 능동적 여론수렴’으로써 평의회 활동이 분리되어 취급되지 않고 있다.

      “정책국장: 학생과에 문의한 결과 드문 경우인데, 팀장이 팀 모임을 거의 안 나온 경우, 2건 정도) 교수님이 지급비 지원 반대를 민원 하셨습니다. ” – 2월 18일 전학대회 회의록.
    • - 학생활동 장학금은 노동의 대가인가?

      나는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학생정치 활동으로 인한 장학금은 노동의 대가인가?? 하는 것이다. 인센티브 책 이라는 것은 학생들의 평의회 활동을 경제적 유인으로 장려해 보겠다는 의미인데, 전학대회에서 이는 곧 평의회 활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전개되는 것 같다.

      회의록에서는 평의회 의원이 일정 횟수 이상의 회의에 참석 하여야만 장학금 지급을 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전학대회에 비추어 예를 들자면, 전학대회의원들 또한 전학대회에 몇 회 이상 참석하지 않으면 장학금 지급을 하지 않는 규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장학금을 학생활동에 대한 노동의 대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대표가 자신이 맡은 바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 제도에서 보장하는 정치적 견제들(탄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학생대표들이 올바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가장 적절한 정치적 방법이다.

      인센티브 책은 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이기적인 인간을 바탕으로 두고 사안을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리사욕만을 챙기는 학생대표들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학생대표들의 자발성과 순수성을 믿고 있다. 정치는 정치논리로 풀어야 한다. 정치를 경제논리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 - 그러면?

      그러니까 ‘팀장/평의원 활동 지원비’로 혼동시키지 말고, ‘공동체 리더쉽 지원비’와 ‘평의원 활동 지원비’로 항목을 나눈 뒤, 평의원 활동을 위한 순수 장학금은 따로 보장하고, ‘공동체 리더쉽 지원비’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적 목적에 맡도록 학교 측에서 기준을 제정할 수 있도록 분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리하며…

평의회에 관련되어 몇 년에 걸쳐 심화된 문제는, “평의회를 공동체 리더쉽과 함께 운용하여 활성화 시키자.”라는 방법론적 명제 때문에 문제가 심화되었다고 본다. 평의회 2부제 또한 채플이 2부로 나뉜 배경에 맞추어 나온 발상이다. 이제는 이러한 방법론을 버릴 필요가 있다. 공동체 리더쉽과 평의회는 분명 다른 것이다. 학생 대표들의 올바른 분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도적 수정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 근래 이루어지는 제도적 수정은 기존의 회칙에 대한 올바른 이해조차 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사안에서도 학생대표들은 평의회가 운영되는 현실과 회칙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 다기 보다는 ‘평의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정작 평의회가 꿈꾸었던 민주주의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제도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제도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제도와 그 제도에 수반하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있어야만 그 제도도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대표들은 구성원들의 의지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환원시켜 이해하였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회칙의 문제로 돌리는 데 급급했다.

만약 계속해서 학생대표들의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계속해서 수동적으로 평의회가 이끌어져 나간다면, 이 같은 소모는 분명 비효율 적인 것이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론수렴을 위한 평의회’라는 당초의 취지는 무색해 질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취지는 상실되고 사회적 혼란만을 야기하는 평의회는 사라져야함이 마땅하다.

평의회 비활성화에 대한 문제 해결은 학우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외의 다른 방법들은 없다. 그 외의 모든 다른 방법들은 책임회피일 뿐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영화 두 편 – 색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월요일, 2월 25th, 2008

1. 영화이해
영화비평이라는 것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영화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영화를 칭찬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영화의 평가 이전에는 그 영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를 이해하려면 영화를 만든 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이 정말로 영화를 제작한 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일 필요는 없다.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종합한 추리, 그 추리의 정합성이 높을수록 제대로 된 영화 이해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이 의도하지 않고 삽입했던 부분들 마저 고려한 이 ‘영화의 이해’는 영화의 예술성을 보다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또 새로운 창작이다.

2. 영화의 표현방법
영화가 보는이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그걸 바꾸면 그걸 보는 방법도 달라진다. 가령, 그냥 영화를 보는 것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영화’ 라는 순수 음성정보로 구성된 영화를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도 다르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그래도 보통은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긴장감을 높이는 ‘배경음악’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걸 포기한 영화가 있다. 그래서 정말 리얼한 영화. 오로지 캐릭터와 효과음 만으로 ‘긴장’을 주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범죄, 드라마, 스릴러 | 2008.02.21 | 122분 | 미국 | 18세 관람가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 우디 해럴슨 더보기
줄거리 : 영화는 사막 한 가운데서 사냥을 즐기던 모스(조쉬 브롤린)가 총격전이 벌어진 듯 출혈이 낭자한 사건 현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모스는 물 한 모금을 갈…더보기
멀티미디어 예고편, 인터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그 특이한 표현방법은 찬사받을 만 하다.

- 색계
영화를 읽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다. 스쳐지나가는 장면 장면을 텍스트화 한다는 것도 정신노동이 필요하다. 색계는 의미망이 촘촘한 영화다.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드라마 | 2007.11.08 | 157분 | 미국 | 18세 관람가DVD구매
감독 이안
출연 양조위, 탕웨이, 조안 첸, 왕리홍 더보기
줄거리 : 1942년 상하이-회한. 막 부인(탕웨이)이 카페에 앉아 과거를 회상한다. 그녀가 왕치아즈라 불리던 그 때를…. 1938년 홍콩-시작.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보기
사운드 트랙 색, 계 OST
멀티미디어 예고편, 인터뷰, 뮤직비디오

그냥 단순히 노출수위가 높은 정사씬에 열광하거나, 그것에 필요 이상으로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장면이 묘사하는 주인공들의 관계를 봐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색계는 의미망이 촘촘하다. 그 장면 장면이 보여주는 심리 묘사와 의미가 촘촘하기 때문에, 단순한 스토리성 스포일 만으로는 영화를 깊이 음미할 수가 없다. 장면 하나하나에 주석을 달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영화를 평가 하기 이전에 그 영화를 촘촘하게 해석해 내는 것만으로도 감탄짓게 하는 빽빽한 영화다.


2006년 가을학기 <텍스트와 문화> 발표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월요일, 2월 18th, 2008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한겨레출판

2006년 가을학기 <텍스트와 문화>
法 20300724 전덕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 작가 – 박민규(朴玟奎)

1968년 ~ 살아있다. 울산광역시 출생. 학성고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졸업 후 2년 조금 넘게 광화문에 위치한 해운회사에서 근무, 이후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사에서 근무.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경기를 관람 중,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을 보고, 타이슨의 심정에 몰입.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어졌고, 참으면 병될 것 같아서 아내에게 말한 후 소설을 썼다고…. 박민규는 말했다.

- 수상내역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로 제 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2005년 『카스테라』로 창비 주관의 제 23회 신동엽창작상 수상.

- 작품내역
2003년 지구영웅전설 – 문학동네
200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한겨레 신문사
2005년 카스테라 – 문학동네
2006년 핑퐁 – 창비

2. 줄거리

1982년 즈음, 곧 중학생이 되는 나는, 동창이며 같은 중학교를 가게 될 조성훈과, 나란히 우수상과 6년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력으로 졸업한다. 무엇보다, 알파벳을 외우는 큰 머리를 가지고 있다. 당시에 한국에서도 ‘프로야구’ 라는 것이 시작되었고, 내가 살고있는 인천에는 ‘슈퍼맨’을 마스코트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팀이 결성된다. 나는 다른 구단의 마스코트보다 단연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슈퍼맨이 마스코트라는 이유로 삼미의 우승을 점친다. 또한 프로야구선수이면서 정장을 입고 다니는 삼미의 선수들을 보면서 평범한 기자 클라크를 연상한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들뜬 열기와는 달리 삼미는 연달아 패배하여, 인천의 어른들에게 야구는 외면받는다. 리틀 삼미슈퍼스타즈인 나와 조성훈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삼미의 패배를 이유로 늙어가기 시작하였고, 82년 전기리그에 삼미는 30패를 기록한다. 여름이 지나자, 리틀 슈퍼스타즈 회원 2명이 MBC 청룡으로 변절하였고, 3명의 회원은 야구에 흥미를 잃어 탈퇴하게 되었고, 리틀 슈퍼스타즈는 조성훈과 나 2명만 남게 되었다. 삼미는 82년 후기 리그에서 5승 3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27명의 선수 중 11명을 방출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한, 삼미는 83년 1패 차이로 우승을 놓치는 쾌거를 이룩했으나, 다시 만년 최하위 팀으로 내려간다. 나와 조성훈은 그 충격으로 우울한 소년이 된다.
삼미의 고별전을 보고, 나는 소속이 인간을 바꾼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열심히 공부하는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간다. 친구 조성훈을 통해 민주주의와 혁명의 꿈을 키웠으나,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접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대중을 보면서, ‘우리’에 회의를 느낀다.
이후 조성훈과 함께 1류 대학에 입학하게 된 나는 어렸을 적 삼미의 경험 때문인지, 실패의 경험이 없고 언제나 성공만을 해온 친구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로 친구 조성훈의 말처럼 ‘졸업장만 따는’생활을 한다. 친구 조성훈은 친족간의 재산 상속 문제와 부모님의 사고로 일본으로 간다.
1류대학을 졸업한 나는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결혼을 하였으나, 일로 인해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그 직후 IMF의 여파로 직장을 잃게 된다.
내가 이혼 직후에 조성훈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조성훈은 자신 특유의 설을 풀어내며, 나에게 조언과 위로를 한다. 나는 다시는 예전의 직장생활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며, 조성훈과 함께 삼미슈퍼스타즈 팬클럽을 조직하여 야구를 즐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3. 첨부 발표 자료

  1.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 <핑퐁>의 소설가 박민규 : 김혜리가 만난 사람 : 씨네21" 전문
  2. "대한문화 2004년 봄호 기획특집 – 2004년 봄, 젊은 소설을 읽다" 에서 부분발췌.

    발췌부분

    필요 없음을 위하여

    - 천운영, 이만교, 박민규의 소설들

    글 구중서 _ 평론가. 1936년생. 평론집 『한국 문학과 역사의식』 『문학과 현대사상』 『역사와 인간』 등.

     박민규   

    사람이 이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한 가지 가능한 일이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허구이니까. 그런데 있을 수 있는 일(개연성)이라는 것이 기준이고, 그래서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 문제이다.

    당대마다 삶의 현장이 다르고 거기에 대응하는 의미가 다르다. 70년대의 산업화, 80년대의 민주화 투쟁, 90년대의 사회주의 세계권 붕괴, 그리고 2000년대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특징일 것이다. 물론 문학예술이 이 시대별 특징을 기계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관심이 지난 시기와 다르게 상당 부분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이 변함없는 것과 당대적으로 변한 현실이 씨줄과 날줄로 짜이면서 역사의 폭을 이어간다.

    2000년대 전반기쯤에 발표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본다. 천운영의 「명랑」 「멍게 뒷맛」, 이만교의 「너무나도 모범적인」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대상으로 잡는다.

    (중략)…

    또 하나 자본주의 사회를 그린 장편소설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다. 여기에서도 주인공의 출발점은 소년시절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주인공 소년이 지방 도시 인천의 명문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아들의 책상머리에 가져다 붙여 놓은 말이다. 그런데 이 무렵 한국에 프로야구 구단의 창단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야구 그 자체야 좋다. 정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놈들이야. 전부 도둑놈들이야”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정치와는 달리 야구에는 원칙과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포츠의 순수한 매력이다. 인천에 연고를 둔 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이 창단되었을 때 이 지역 중학생들을 비롯해 주민 전부가 열광했다. 경기에서 이길 때에도 질 때에도 소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것은 ‘프로’ 야구였다. 바야흐로 한국에도 프로의 시대가 온 것이다. 야구는 프로 야구가 되고, 인간도 프로급 사원 즉 전문 인력이 되어야 했다.

    “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회사에서 출세를 하려면 가정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준열한 압박의 시대가 왔다.

    가정에 무심해진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까지 했지만 제 3차 구조조정은 넘기지 못하고 실직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주인공 ‘나’는 퇴직금을 까먹으며 쉬게 되고, 허드레 아르바이트도 해 보면서 우연히 사귀게 된 여인은
    3명의 애인과 7명의 섹스 파트너가 있다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나도 놀라지 않는 척하면서 그 여자와 관계를 갖는다.

    창단 당시의 삼미 구단은 기록적으로 패배를 일삼다가 결국 해체되었지만 그것은 잊을 수 없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야구였다. 일본 히로시마 지역 후루에 마을의 야구도 그런 것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속구를 던지는
    투수도 없고 무리를 하는 타자도 없고, 강변 기차역 창공을 날아가는 작고 때 묻은 야구 공. 이것은 다만 신명의 축제 마당이었다.

    주인공과 친구 조성훈과 일본인 인텔리 노숙자 사카에는 함께 편하고 자연스러운 야구를 사랑하는 낭만적 구단을 재구성한다. 저 삼천포 바닷가 좁은 잔디밭에 전지훈련이라고 가서 그들은 구성원 모두의 거침없는 자유행동과 유희를 연출한다. 여기에서 신기할 정도로 인간성 회복의 행복한 성과를 거둔다. 주인공 나는 이혼했던 아내와 재결합한다.

    장인으로부터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고, 나도 아내도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 첫 결혼 때에 비해 우리의 재산이 너무나도 줄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간단하게 행복할 수 있었다. 가진 게 간단하면 인생은 간단해진다. 그리고 아내는 그 간단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임신을 했다. …… 작고도 힘찬 생명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대 전반 무렵에서도 소설은 또 이렇게 귀결되기도 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자본주의 문명을 그 어떤 소설보다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일류대학 졸업, 엘리트 사원 코스, 이혼, 숙명의 감원 선고, 허탈한 휴식, 우유배달 아르바이트, 문란한 이성 체험, 홈리스 노숙자 신세, 이렇게 참담하면서도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본질적으로 자포자기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지는 것을 일삼던 고향의 자연스러운 야구에 울며 사랑하던 인간 본성에 돌아간다. 필요 이상으로 애쓰지 말자. 초인적인 속구와 홈런이 왜 꼭 필요하다는 말인가. 신선하고 경쾌하게 창공을 나는 볼의 탄력
    자체에서 함께 즐거워하면 되지 않는가. 그 자연의 요람이 그립다. 그 시절 그 곳으로 돌아가 간단하게 살자. 가난해도 오히려 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자. 그렇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개연성, 이 가능성,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라고 해서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무조건 최악이라든가 끝장나고야 말 자체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역사상 실패했다. 정당한 사유제는 자유권에 속하며, 시장경제는 창의와 능률을 위해 거부될 수 없다. 다만 부도덕한 독점화, 빈부격차의 증대 현상만은 견제해야 한다. 누가 하는가. 문학예술과 종교와 시민운동과 제 3세계운동이 해야 한다. 미국이 절대적 제국인 것도 아니다. 미국은 경제적 적자국가이며, 약소국의 자살공격 앞에 떨고 있다. 문학예술이 변함없이 인류의 진실과 평화를 창조해 나아가야 한다.

  3. "대산문화 2004년 여름호 기획특집 – 젊은 소설가는 말한다." 에서 부분발췌.

    발췌부분

    박민규

    조까라, 마이싱이다!

    글 박민규_소설가. 1968년생. 소설 『지구 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

     

    1. 도대체 마이싱이란

    학창시절 학교를 주름잡던 1년 터울의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의 별명은 ‘마빈 헤글러’였다. 실제로 머리를 빡빡 깎은 그에겐 언제나 화려한 소문이 뒤따랐었다. 즉 3대 1이라든지, 칼을 든 2명이 포함된 4대 1이라든지. 그러나 그 소문에 비해 펀치는 한결 부드러운 것이어서(맞아봐서 안다) 나는 그가 마빈 헤글러라기 보다는, ‘마빡 헤글러’일 뿐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루는, 그래서 넌지시, 담배를 피고 있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형, 지난 번에,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선배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네왔다. 조까라, 마이싱이다. 북북, 꽁초를 담벼락에 부비며,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우선 말의 뜻을 짐작조차 못하겠거니와, 묘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가 과연 ‘마빈’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어쨌거나, 그런데 도대체 마이싱이란? 도대체 마이싱이, 뭐지? 나는 궁금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나는 작가가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그냥 어느 순간, 무작정 글이 쓰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나에겐 그것이 전부이다. 무작정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도 보름 전의 일이었다. 어디신가요? <대산문화>입니다. 요는, 젊은 작가의 변(辨)을, 듣고 싶다는 얘기였다. 평소, 이를테면 학술재단 같은 곳과 교류를 하면 작가로선 끝장이란 소신을 갖고 있었는데, 예, 예 잘도 대답을 하고, 쓰겠노라 동의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 순간 심하게 이 글을 쓰고 싶었고, 바로 그 순간 아무런 까닭도 없이 ‘조까라 마이싱’의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래서다.

    2. 너가 당룡이냐

    우선 나는, <대산문화>로부터 네 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해서, 짧게, 그것부터 답하고 보는 게 도리란 생각이다. 심사, 숙고 해보았지만, 4가지 질문 모두가 도무지 긴 대답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내 무식(無識)의 소산이거나, 정답이거나. 정답은 늘, 짧고 간략한 것이기 마련이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해왔다. ①자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혹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답.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를 쓰고(用)있다. 그래서다. ②기존의 소설과 자신의 소설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 답. 마치 ‘인류와 자신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다. 나(내가 쓴 소설)는 유전자의 리바이벌에 불과할 따름이다. 흘러, 가자. 흘러가서, 전달, 하자. ③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 기획특집 참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

    써놓고 보니, 마치 4대 1의 싸움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나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넨 건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대산의 질문들을, 나는 그런 분위기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70년대의, 이소룡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너가 당룡이냐? 그렇다. 내가, 당룡이다.

    3. 푸트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박민규

    이른바 ‘등단’을 한 지, 이제 꼭 1년이 지났다. 소설이 무언지는 애당초 몰랐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이 나란 인간이다. 그냥 쓰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 오로지 그럴,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꼴린 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글을 쓰는 것인가? 그 이유를 나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돌대가리. 이, 마빡만 헤글러!

    이유는 짜증이다. 짜증, 이라기보다는 하소연이고, 하소연, 이기보다는 외로움, 같은 것이다.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지면이, 도대체 없었다. 그래서다. 그래서 이것은 젊은 작가의 변(辨)일수도 있고(참, 어지간히도 젊다!), 변(便)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이제 겨우 2권의 책을 냈을 뿐인데, 그리고 구만 리의 앞길이 남아 있는데. 바로, 그래서다. 이 구만 리의 앞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밟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선 길을 가야 할 이유가, 또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다. 문단인지 평단인지, 아니 세상이여! 우선 말하겠는데 제발 좀 문학의 위기, 소설의 위기라고 떠들지 마라. 호들갑 좀, 떨지 말아라. 나는 어디 핵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쉰 소리 하려면 집에서 쉬어라, 나오지 마라. 그것이 문학을, 또 우리를 도와주는 길이다. 단언컨대, 지금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문학의 위기를 떠드는 놈들의, 위기일 따름이다. 아이고 귀야. 귀에 슨 녹슨 못을 뽑아내며, 나는 중얼거린다. 너무 그러니까 니들이 마치 ‘문학’ 같잖아? 니들이 ‘문학’이냐?

    두 번째, 궁상 좀 떨지 마라. 즉 그것이 이곳의 풍경인데, 마치 위기론에 이은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작가는 잡문으로 뺑이를 쳐야 하고, 또 그걸 당연한 걸로 생각한다(생각해야 한다). 안 팔려요. 안 팔리면 어쩌죠? 몇 푼의 계약금에도 손을 내밀기가 민망하고, 생활은 점점 좀스러워진다. 요는, 위기를 떠드는 놈들이 이 땅의 작가들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는 것이다. 좀스럽고 비참하게 만들며, 왜소하고 말랑말랑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몇 푼의 선인세와 생활비에 손을 떨고 연연해야 하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글이라면, 우선 나부터도 읽고 싶지가 않다.

    세 번째, 근친상간 그만하자. 내가 볼 때 이 땅의 소설이 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각설하고 찢어지자. 그 동안 즐거웠다. 어찌나 문단속을 잘 했던지, 이곳에는 여지가 없다. SF도 추리도 공포소설도, 심지어 제대로 된 하이틴 로맨스도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아아 줄리엣, 우리 아버지들은 언제 죽을까? 오오 로미오, 오빠가 자꾸 나를 건드려요. 헤이 유! 근친상간이 바보를 만든다는 거, 꽤나 알려진 의학 상식 아닌가? 쪽 팔려, 박수 좀 치지 마. 어이, 저리 가! 접붙이지 마.

    네 번째, 거 참 말 많네! 거 참, 말이 많다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이다. 말이 많은 건, 어쨌거나 말이 많은 것이다. 그뿐이다. 지금껏 나는 네 개의 질문을 받고, 네 개의 답변을 하고, 네 개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는 무엇인가? 나는 당룡이고, 그냥 날 내버려두란 얘기다. 어떤 면(面)에서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네가 당룡이냐? 끄덕끄덕. 삼가 한수를 배우겠소. 오호라 학익(鶴翼)의 품세를, 그렇다면 용호(龍虎)의 권세로! 쿵후라는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좋은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다. 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또 소설이란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과거의 문학을 동경해 작가가 된 인간이다. 눈물이 날만큼, 그때가 그립다. 누군들, 품세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싶지 않으랴.

    마치 문학처럼, 언제부턴가 복싱도 시시해진지 오래이다. 때문에 나는 이종격투기를 관람한다. 얼마 전 열린 이종격투기 대회에서의 일이다. 종이 울리자마자, KO로 승부가 난 경기가 있었다. 복서 출신의 패자는 습관처럼 푸트웍을 밟아보려다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선공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뭐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즉 삼가 한수를 배우겠, 에서의 ‘퍼벅’의 느낌. 정신을 차린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런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푸트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수건을 던지지 마라 안젤로 던디(수많은 세계 챔피언들을 길러낸 많은 저명한 복싱 트레이너)여. 나 역시 푸트웍 한 번 밟아보는 게 꿈이다.

        박민규의 소설들. 박민규는 『지구 영웅 전설』로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4. 조까라 마이싱!

    세상은 나의 문파와 나의 품세 따위에 관심을 접은 지 오래이다. 작가로서, 이제 나는 실제로 충격을 주고, 파괴하고, 저것을 쓰러트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 이 싸움은 더욱 실질적이고(비록 폼은 없어도), 냉정한 것이 되었다. 약속대련과 근친상간을 벌일 여유가, 나에겐 없다. 나는 실제로 강해야만 하고, 또 강해지고 싶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의 룰은 이 땅의 문학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어디 농업만의 문제이겠는가? 이제 이 땅의 문학은 제조업인가 서비스업인가? 텍스트와 번역의 댐이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줄 것인가? 수입인가 내수인가? 질문은 끝이 없고, 간략한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간략하게 – 나는 정말이지, 강해야 한다.

    그래도 이 땅에 ‘작가’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 땅에 ‘소설’이 있었고, 나는 그 아름다웠던 싸움들을 가슴 속 깊이 저장하고 있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고, 다름 아닌 그들의 소설이다. 경건하게, 나도 싸워나갈 것이다. 그 외의 문제라면, 몰라, 조까라 마이싱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느낌이지만, 어떤 면(面)에서의 세상은 또 분명히 좋아졌다. 지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아폴로를 달에 착륙시켰던 컴퓨터보다 정확히 3배가 더, 뛰어난 것이다. 내 책상 밑으론 인터넷이 들어와 있고, 나는 더 이상 도서관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환경에서 당신을 화성에라도 보내줄 만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조까라 마이싱이다. 큐빅 퍼즐을 맞출 때의 요령으로, 어떻게든 그 좋은 면들을 나는 맞춰나가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사이 시인 구상이 이 별을 떠났다. 구상 선생님 편히 잠드세요. 당신의 싸움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4. "|내가 쓰는 나| 그래 ? 어쩔래 ? " 전문
  5. "[색연필]소설가 박민규 ‘비디오 연체료’ 법정 가나 – 조선닷컴" 전문
  6.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박민규" 전문
  7. "본심 심사평 "당선작 감각적 문체등 탁월"" 전문

대운하 사업 반대

금요일, 2월 15th, 2008

한마디: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http://liketree.net/view/36

그것이 비록 예견된 일이었으나 나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이명박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망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혼란의 시기가 오겠지만 오히려 그때가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류의 말들의 이면 속에 들어 있는 희망의 씨앗 혹은 어떤 믿음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 희망이나 믿음의 정체는 적어도 이 사회에는 이명박을 저지할 만큼의 양심 따위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러한 양심들에게 그 기회를 잡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 위로가 아니다. 이 위로는 사실 무언가를 명령하고 있다.

  1. 태안의 기름유출 사태
  2. 울산 영아 살해 사건
  3. 숭례문 방화 사건

최근의 가장 뜨거운 이슈들 3개이다. 그런데 나는 이를 대처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불편하다. 이 세 사건은 모두 너무 과도하게 슬퍼하고 과도하게 분노하고 그리고 너무 비 실천적이다. 그리고 너무 쉽게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영아 살해사건은 계모가 영아를 학대하다가 영아가 죽게 되었고, 계모가 사체를 태우고 유기한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이상한’계모가 영아를 살해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이상한’계모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온 무관심한 이웃들과 그와 함께 살면서도 저지하지 못한 구성원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계모를 욕하고 또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자신들의 죄를 잊으려는 듯이 그들은 아주 쉽고 격렬하게 계모를 욕한다.

평소에는 환경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태안에서 하루 기름 닦은 것으로 자신의 환경보호의식을 높이 평가한다. 과거의 수많은 환경파괴적 개발은 그저 목도하던 그들이, 그들은 또 이제 너무 쉽게 한 기업을 욕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다가올 환경파괴적 개발을 목도할 것이고, 언론에서 성금을 모금하고 누군가가 방석을 깔아주어야 다시 또 ‘환경’을 부르짓을 것이다.

숭례문의 역사도 몰랐고, 한번 눈길도 주지 않던 이들이 불타버린 숭레문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문화재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그들이 불타버린 숭례문 앞에서, 눈물을 한번 흘림으로써 애국자가 된 듯한 심정에 취한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사진찍는 일본인을 개념없는 쪽바리라고 한껏 욕해주며, 국보를 보존하지 못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잊을 것이다. 다시 그들은 몇일 후면 쉽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태안이 충격이었다면, 숭례문 방화가 충격이었다면, 우리 이건 좀 막아냈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큰 생태계 파괴와 그 주변의 문화유산들이 파괴될 것이 뻔해 보이는 ‘대운하 사업’!! 그래서 배너 달기로 했다. 내 블로그에 들러주는 친구들은 대운하 반대 해줬으면 좋겠다.


[[논리와 삶]], 성홍기 지음, 이문출판사

금요일, 2월 15th, 2008
논리와 삶

성홍기 지음/이문출판사

이 책을 언제 어떻게 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교내 서점에서 서성이다가 수업에서 쓴다고 하길래 책값도 저렴하기에 그냥 샀는데, 정작 나는 읽지 못하고 수업을 듣는 후배들과 지인들에게 빌려주느라 내 손을 떠난지 몇년이 흘렀던 것 같다. 언제 한번 읽어 보고자 책을 찾았을 때는 누구에게 빌려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이전에 빌려주었던 사람에게 괜히 물어봤다가 없는 기억력이 탄로나고야 말았다.
언젠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언젠가 어떠한 일로 인욱이형 집에 들렀다가 이 책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도 이 책 있었는데, 누구에게 빌려줬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니, 인욱이 형이 이 책이 바로 내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다시 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논리학 서적이 두권있다. 김광수 저 [[논리와 비판적 사고]]전정판1과 성홍기 저 [[논리와 삶]]이다. 당연한 이야기 겠지만, 이 둘 간에는 차이가 있는데 [[논리와 비판적 사고]]의 경우에는 합리성을 근거로 하여 논리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김광수의 책에서 드러나는 논리는 합리성의 원칙에 호소하는 수단으로써의 논리이다. 김광수는 머릿말에서 구체적 상황 속에서의 ‘논리공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합리성에 대한 언급도 아무래도 이러한 저자의 관심이 반영된 듯 하다.

[[논리와 삶]]에서는 ‘인식’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시작한다. 성홍기는 논리와 합리를 보다 많이 구분한다. 김광수도 물론 논리와 합리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논리 이전의 신념체계나 지향적 태도 모두 합리성에 판단되어야 한다는 서술을 하고 있다. 성홍기 책의 경우 명제를 ‘인식명제”평가명제”주장명제’로 나눈 후 평가명제는 화자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고, 주장명제는 논리적 참과 거짓의 평가대상이 아니라 합리적인가 적절한가에 대한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논리와 합리 사이에 보다 두터운 선을 그어주고 있다.

[[논리와 삶]] 서문을 보면 참고서적 중에 [[논리와 비판적 사고]]가 포함됨을 알 수 있다. [[논리와 삶]]은 조금 더 근본적이고,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조금 더 실용적이다.


  1. 김광수 저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2007년 10월에 쇄신판이 새로이 나왔다. 개정판,전정판,쇄신판 순으로 책이 변화하였는데, 쇄신판과 전정판의 목차 내용이 많이 다르다. 내용이 많이 달라진 듯 하다. 전정판은 반양장인데 쇄신판은 양장본이다. 전정판은 15000원인데 쇄신판은 20000원 이다. [본문으로]

설 연휴

금요일, 2월 8th, 2008

1. 설 연휴라 소호리에 있었는데, 강아지들이 많이 컸다. 그들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2. 식사 중에 삼성의 cf가 나온다. 삼성에서 ‘훈이’시리즈로 계속해서 cf가 나오고 있는데, 내용은 어떤 상황에서 부모로서 훈이에게 어떠한 말을 해줄 것인지 묻는 cf이다. 삼성 홈페이지를 통해서 시청자들이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훈이에게 해줄 말을 쓰고, 그중에서 선정된 것이 다음 cf에 반영된다. 이에 대해서 얼마간의 대화가 있었다.

‘으~ 손으로…’ 훈이는, 할머니가 맨손으로 만진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더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주는 김치를 받아먹을 것을 거부한다.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이 ‘더러움’에 대한 자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 교육한다. 예를 들어 “밥먹기 전에는 손 씻어야지.” 혹은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더러운 것.” 같은 교육들 말이다. 훈이가 할머니가 맨손으로 찢어주는 김치를 먹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이러한 교육의 소산이다.
이번 cf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할머니의 김치를 거부하는 훈이의 속마음이 나레이션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훈이 부모의 경우 아이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지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설정이다. 시청자의 경우 이러한 아이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지만, 부모의 경우 이러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대화의 과정이 있어야만 아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청자의 참여’라는 명목 하에서 시청자들은 cf에 넣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한마디로 나름대로 ‘교육적’이라고 여겨지는 메시지를 담아내어야 하니, 결국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의문을 건드리지 못한다. 어떠한 감탄할 만한 말 한마디로 cf제작자가 마무리를 짓는다 하더라도, 훈이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1

3. 이명박의 영어정책 관련해서 신해철이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한마디 한 것이 인터넷 뉴스에 많이 퍼지고 있다. 고스트스테이션에 들어가서 방송들을 듣는다. 신해철의 인터넷 방송은 실없는 농담 속에 그래도 간간히 생각해 볼 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는 것 같다.2 한참 웃기는 음담패설 이후에 신해철이 갑자기 진지해진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정확하지 않다)’라는 영화에서, 돈을 벌기 위해 마약상을 하던 주인공이 마약범으로 잡혀 처절한 환경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 주인공의 연인은 주인공을 찾아가게 되고, 오래간만에 연인을 만나게 된 주인공은 연인을 보자마자 그의 가슴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철창을 사이에 둔 체 그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자위하는 장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신해철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고, 물질적 정신적 안정을 이룬 인간과 그 정 반대의 인간을 이야기하며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 영화의 정확한 제목을 알고 싶다.


  1. cf관련된 인터넷 웹 사이트에 보니, 고객들의 생각도 특별할 것이 없다. ‘김치는 손으로 찢어 먹어야 제맛’과 비슷한 류의 코멘트들이 주를 이룬다. [본문으로]
  2. 신해철의 인터넷 방송은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웃긴다. 똥, 성, 욕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최근의 방송에서 신해철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방송을 그저 ‘웃기는 방송’으로 볼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방송은 ‘웃기기 위한’방송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다. [본문으로]

이명박의 영어정책에 관해서

일요일, 2월 3rd, 2008

진중권이 입을 열었나 보다.
[프레시안] 반론은 영어로만 받겠습니다. – 진중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영어 수업은 물론 영어로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 누구도 거기에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은 살짝 동의가 되지 않는다.

배움은 동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음은 조금은 아는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물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냥 학교 수업 시간에, 조금이라도 알아들어야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기억을 상기시키면 좋겠다.

영어수업이 영어로 가능하다는 것은, 영어만으로 이야기해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 상태에서 문맥이나 상황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앎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중권이 쓴 것 처럼, 사고는 모국어로 이루어진다. 인식이 터잡고 있는 곳은 모국어이다. 모국어를 기반으로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영어 어휘를 배울 때 우리말로 해설된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영어 교육을 무조건 영어로 하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어느 지점까지는 모국어를 이용한 영어교육이 필요하다. 영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인간을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영어로 수업하는 건, 그건 영어 교육이 아니다. 그냥 인간을 영어에 노출시키는 것일 뿐이다. 마치 신생아가 언어를 습득하는 것 처럼 말이다.


[[성과 속]], M.엘리아데

금요일, 2월 1st, 2008
성과 속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한길사

우리는 신비와 성스러움을 동일시 하는 입장을 만나곤 한다. 이 책의 서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1971년에 출간된 루돌프 오토의 저서『성스러운 것』은 엘리아데가 보기에 그러한 입장이었다. 오토는 종교에서 합리적-사변적 요소를 배척하고 비이성적 측면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비이성적-신비적인 것에 국한해서 성스러움을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엘리아데가 보기에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은 이성과 비이성의 구분과는 다른 독자적인 대립이다. 그래서 엘리아데는 “단순히 비합리적인 측면에만 국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은 단지 종교가 지닌 비합리적인 요소와 합리적인 요소의 관계가 아니라 성스러운 것 그 전체이다. 성스러운 것의 정의는 우선 속된 것과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성과 속의 대조를 설명하고 정의하고자 하는 데 있다.”1라고 서술함으로써 오토와 구별되는 책의 방향성을 밝힌다. 이러한 방향성으로 인해 이 책은 자연스럽게 ‘종교적 인간’의 ‘생활 체험’과 ‘종교적 감정을 가지지 않은 인간’의 그것을 보여주고자 하게 된다. 2

이 책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은 결국 구체적 사례들을 비교 대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방법론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사적ㆍ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민족의 종교적 자료들을 평등하게 병치해 놓는 것은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19세기의 오류로 다시 되돌아갈 가능성, … 인간 정신이 자연 현상에 대하여 항상 동일하게 반응한다고 믿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민족학과 종교학의 진보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이것은 항상 진리가 아니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가끔 문화에 의하여,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역사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3는 서술이 그러하다. 이는 모든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물론에 대한 경계로 보인다.

1장에서는 공간을 중심 개념으로 해서 살펴보는데, 종교적 인간들은 질서를 본질적인 것이고 성스러운 것으로 보는 반면 혼돈을 비실재적이고 일시적이고 속된 것으로 본다고 서술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거에는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지 않아 자연을 ‘혼돈’으로 보았고, 그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였을 때 그 질서를 성스러운 것으로 바라보고 가치부여를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과거에 ‘혼돈’이 일상이고 ‘질서’가 비일상이었던 것과는 달리 현대에는 과학이 많이 발달하였기에 ‘질서지워진 것’이 일상이고 ‘혼돈’이 비일상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에는 종교와 과학이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거나, 신비주의가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잡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은 희귀한 것에 더욱 가치를 두지 않는가?

2장에서는 시간을 중심 개념으로 해서 살펴보는데, 그리스와 인도의 ‘영원회귀’적인 시간개념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창조의 그 시기로 다시 되돌아가는 축제나 행사에서 시간의 성스러운 측면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같은 ‘영원회귀’적인 시간이라도 탈신성화된 시간은 그 성격이 다르다. 유가설의 경우 창조와 파괴의 영원한 반복에서, 다시 돌아오는 창조의 기쁨을 보는것이 아니라, 지루한 시간으로 바라봄으로써 해탈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2장의 마지막 문단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즉 시간은 더 이상 원환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현대 철학에서의 시간은 다시 인도 및 그리스의 영원 회귀의 철학에서와 같은 두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철저하게 탈신성화된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안하고 덧없는 지속으로 나타난다.”4

너무나도 평면적인 공간과 시간을 살고 있는 나는, 이 덧없는 지속을 어떻게 견뎌내어야 할지 잠시간 생각해보기로 하며, 못다읽은 이 책을 잠시간 덮어두기로 한다.


  1.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성과 속]], 한길사, 1998.05.20, p.48 [본문으로]
  2.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성과 속]], 한길사, 1998.05.20, p.50 [본문으로]
  3.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성과 속]], 한길사, 1998.05.20, p.52 [본문으로]
  4.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성과 속]], 한길사, 1998.05.20, p.12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