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와 총학
1-1. 총학생회에 대한 평가는 학교당국에 대한 평가와도 직결된다. 총학생회는 학내에서 학교당국의 협력자로서 혹은 학교당국의 대항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학생단체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당국의 행정에 만족할 경우, 총학생회는 학교당국에 대항하는 행위로는 학생들의 만족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반대로, 학생들이 학교당국의 행정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총학생회는 학교당국에 ‘액션’을 취함으로써 학우들의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1-2. 지금 학우들이 총학에 가지고 있는 불만은 총학이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이러한 총학에 대한 불만 이전에는 학교당국의 행정에 대한 불만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총학에 가지는 불만의 정체는 총학이 학교당국의 만족스럽지 않은 행정을 지적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식당이 만족스럽고 버스가 만족스럽다면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총학에게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학우들은 총학에 대한 자신의 불만이 동시에 학교당국에 대한 불만임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2. 식당 정책의 경향
2-1. 올해 들어서 변화된 식당 정책에는 어떤 경향이 보인다. 일하는 분들의 효율성을 위한 변화라는 것이다. 일하는 분들의 ‘효율성’을 위해 특식은 사라졌으며, 일하는 분들의 재료준비를 위해 분식당은 배식시간이 생겼다.
2-2 Mom’s kitchen이 식권카드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 길 가던 총학생회장을 붙잡고 물어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학생식당(ECMD)과 분식당(소비조합)으로 달랐기에 불가능하겠지만, 학교직영으로 바뀐 현 상태에서 그것을 받지 않을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총학생회장은 ‘회계가 학생식당과 Mom’s kitchen이 분리되어 있어서.’라는 설명을 했다.
2-3. 식사를 준비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회계업무의 성격상 분리가 필요한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학기 들어 변화한 식당정책의 대체적인 경향은 ‘학우들의 편의’를 위한 변화보다는 일하는 분들의 ‘효율성’을 위한 변화였다는 걸 말해보고 싶다. 식당 운영의 효율성, 회계상의 효율성.
3. 정작 학교에 대한 평가는 비켜가는 편파적 비난에 대하여
3-1. 특식이 사라진 것에 대해 학우들은 그다지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현상이라기보다, 기이한 현상으로 보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ECMD가 정식의 효율적 배식을 위해 특식을 폐지한다고 했을 때, 학우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얼마나 강력한 반발이 일었을지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래서, 여기서 진정하고 중요한 질문은 ‘왜 학우들은 특식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이의 제기하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3-2. 학우들이 발언하는 것을 봐도 어떤 경향이 보인다. 얼마 전 뜨거웠던 밥줄과 식권 줄의 논쟁에서도 학우들은 학우들 사이에서의 질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정작 학교당국에 대해서는 심정적 불만이 있음을 약간 내비치기만 할 뿐이다. ‘식당이 좁아서 그렇죠.’라고 말하고는 이를 수용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번 총학생회에 시원해질 것을 요구하는 글에서도, 학교행정당국에 대한 상당한 문제인식을 내비치기는 했으나 구체적 요구는 총학생회가 시원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이제는 총학생회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열쇠’라고 까지 수사된다.
3-3. 우리 학우들은 학교당국을 비판하는 것에 있어, 심각한 불편함을 느낀다. 사실 우리가 학교에서 직면하는 문제들 대부분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지점은 학교 당국에 의한 문제들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가 총학생회이다. 이제, 학우들은 총학생회에 발언하는 방식을 좀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총학생회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학교가 이러이러한 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총학생회가 이 같은 나의 의사를 학교당국에 전달하고 관철시켜 달라.”
여기서 총학생회의 부분만 언급하는 것은, 정작 근본적인 지점에서 침묵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당국보다 비교적 약자인(또한, 비판하기 쉬운) 총학생회만을 비판하는 것이기에 나에게는 일종의 비겁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4. 왜 총학이 선교단체처럼 되었나?
4-1. 우리 학교 총학생회가 왜? 선교단체처럼 운영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할 필요가 있다. 총학생회장단은 우리 학우들이 뽑을뿐더러, 그들에 대한 평가 또한 학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착각하지 말자, 총학생회의 어떤 결정들은 온전히 총학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총학생회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학우들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학우들의 여론을 신경 쓰게 되며, 또한 학생대표로써 그래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4-2. 우리는 쉽게 총학생회에 이런 말을 한다. “이번 총학생회가 기도가 부족한 것 같다.” 또한, 어떤 액션을 취하는 총학생회에 이런 말을 한다. “좀 더 알아보고, 물어보고 행동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결국 정작 가장 큰 책임을 지닌 학교당국보다 총학생회에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4-3. 좀 더 알아보고 물어보고 기도하는 총학생회가 하는 업무처리는 얼마나 더딜 것이며, 또 얼마나 신앙적이겠는가? 그들은 그 신앙의 힘으로 이 사회의 고난을 자신 하나가 욕을 먹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기꺼이 욕을 먹겠다는 신앙적 태도를 지니기도 한다. 아~~!! 이 얼마나 답답할 노릇인가!!
4-4. 우리 좀 솔직하자. 총학에 시원해질 것을 요구하는 우리는 정작 얼마나 시원한가? 총학의 답답함을 비난하지만, 스스로는 얼마나 시원하게 자신의 불편함을 말해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대한 무수한 비난에 맞서, 우리는 얼마나 시원하고 당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5. 진짜 열쇠는 총학의 시원함이 아니라, 학우들이 시원해지는 것.
5-1. 우리는 총학에 대해서만 말하고, 학교당국 앞에서는 침묵한다. 이제 어느 정도 모두 공유된 학교당국에 대한 문제인식조차 학교당국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동의를 얻지 못한다는 암묵적 인식하에, 더 이상 이야기 되지 않는다. 결국, 학우들의 갈 길 없는 불만이 분출될 곳은 만만한 총학생회일 뿐이다. 이는 근본적이지 못할뿐더러, 비겁하기까지 하다.
5-2.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진정한 열쇠는 총학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우들이 학교당국에 대한 불평불만을 당당하고 시원하게 내뱉게 되었을 때, 총학생회도 비로소 시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시원한 학우들의 의사가 반영되어 총학생회도 학교 측에 강력한 항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이제 시원해지자. 답답한 동행은 우리의 답답함의 결과물이며, 우리가 답답한 동행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 또한 학교비판을 주저하는 답답한 학생의 모습임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