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육 절반 담당… 월급 60만원대
화요일, 7월 29th, 2008경향신문 :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대학 교육 절반 담당… 월급 60만원대”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들의 애환을 다룬 기사이다. 학교법과 노동법 사이에 끼여버린 안타까운 비정규직이다. 대학 등록금은 그렇게 높게 오르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수임용은 안하고,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때우는 악랄한 대학이다. 정말 대학교육 원가공개라도 해야 할 참이다.
그저 읽고, 정리하고, 가끔 불평할 뿐이지요.
경향신문 :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대학 교육 절반 담당… 월급 60만원대”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들의 애환을 다룬 기사이다. 학교법과 노동법 사이에 끼여버린 안타까운 비정규직이다. 대학 등록금은 그렇게 높게 오르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수임용은 안하고,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때우는 악랄한 대학이다. 정말 대학교육 원가공개라도 해야 할 참이다.
1.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게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무래도, 영상미와 음악에 집중한 측면이 있었던듯. 혜진과 준수가 한국으로 돌아왔음에도 사랑이 커져가는 과정을 묘사하려다 보니, 조금은 어쩔 수 없이 ‘낭만’적으로 시청자들을 괴롭히며 지루한 영상 지루한 음악적 반복이 있었던듯…
2. ‘사실’을 쫓아 살아가는 퇴직형사 박병식의 내면갈등, 그리고 그와 얽힌 인물들과의 갈등은 하나의 관전포인트. 박병식이 ‘사실’을 대하는 태도와 이준수와 윤혜진이 사실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3. 이준수(이동욱)가 죽은 이유가 강회장의 괴롭힘이라기 보다는 ‘사랑’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혜진 같은 경우에는 ‘영원한게 왜 없어?’라고 준수에게 항변하며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를 의지적으로 거부하였고, 준수의 경우에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를 인정한 이후에, ‘영원한 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죽음’을 선택하였다는 것. 준수가 영원한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는 준수가 혜진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 뿐이에요."라고 말한 것. 강회장에게 쫓기는 준수를 걱정하며, 준수가 언제 죽었는지 불안해 하며 살수 없다는 혜진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준수에게 사랑이 주는 불안함과 닮아있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은 준수가 혜진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후에 적극적으로 전개되었으나, 준수의 이같은 성향은 준수의 인격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는 사랑의 의미가 너무 촘촘하다. 준수에게 있어서의 다애와 혜진의 의미차이는 준수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4. 강회장과 박병식의 갈등 또한 중점적으로 볼만한 부분이다. 박병식은 정해진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회장에게 있어서 법의 정해진 절차를 밟는 것은 그의 복수심을 충족시켜줄 수 없으며, 오히려 아들 강성구의 방탕한 생활이 드러나도록 하는 바라지 않는 방식이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법은 단지 자신의 복수심을 충당시켜주는 도구일 뿐이다.
5. 극의 중반에 등장한 혜진의 친구 성숙은 참 얄밉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6. 이 드라마에서 아쉬운 부분은 죽음을 선택한 준수와 삶을 계속 살아가는 혜진 그리고, 결국에는 자기 좋다는 돈많은 남자와 그저 그런 결혼을 한 조금은 패배적 결론을 내려버린 다애. 하지만, 하동원의 변화에 대해서는 드라마 뒷편의 공백시간으로 돌려버린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
7. 영원 – 멈추어 버린 시간 – 죽음 – 사랑 – 종교, 혜진이 언제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준수는 혜진의 그리움이 만들어내는 ‘사실’. 준수는 우상일까? 차라리 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쓸데없는 잡글을 올린다. 정제되지도 않은… 글이 참 쉽게 쓰여진다. 부끄러운 일이다.
귀찮은데… 그저 몇가지 포인트….
자료의 부재
나는 솔직히 학교측이 제시하는 인상이유는 알지도 못한다. 또한 솔직히 총학생회측이 제시하는 합리적인 인상가 10% 라는 것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논박을 하지만, 그들 또한 인상 근거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할 만한 자료가 없다.
학교측 발표와 총학측 발표에는 미묘한 시각차가 있는 듯 하다. 학교측이 발표한 자료에서 45식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는, 기존의 식대보다 10%가 인상되었음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총학생회 측에서는 10% 인상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데, 학교측의 시각대로 45식을 기준으로 하였을때는 이번 인상결정이 10%인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점도 결국, 인상근거에 대한 구체적 자료들이 충분하지 않은 데서 오는 ‘해석차’의 문제일 것이다.
총학측 발표
매식과 의무식의 가격 차등은 합리적 제도로 보인다. 기존에 항상 지적되었던 것은, 매식과 비교하였을때, 의무식이 갖는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많이 사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30식 의무식과 매식의 가격을 동일하게 하라는 총학생회의 주장은 30식 의무식을 사실상 무의미한 제도로 만들려는 주장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학생입장에서도 유효한 정책이 아니다. 총학은 30식과 매식의 가격을 동일하게 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30식과 매식의 가격을 내리는 주장을 해야할 것이다.
학생식당 운영의 주체가 ‘학생처’가 되었다는 부분은 약간의 문제가 있는것 같다. 식당운영위원회와 관련된 타 부서들이 자신의 권한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가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가 제도에 문제를 제기 하기에는, 우리는 제도 내에서 싸워본 적 조차 없다. 우리는 총학이 분식당의 대안을 요청한 사실도, 회계정리를 요청한 사실도 몰랐다.
학교측 발표
나는 지속적으로 올라온 학교측의 주장에서 받아들이기 미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발생하는 이익은 학생식당의 개선과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지원 그리고 바람직한 학생활동 등에 환원되어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부분은 사실상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학생들로부터 얻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다시 재투자 된다는 긍정적 의미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공적 측면에서 우리학교와 비교도 안되게 많은 지원을 하는 여타 다른 학교들을 생각하면, 학교측의 이같은 발언은 그다지 당연한 발언이 아니다. 학생식당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학생식당은 이익이 ‘발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학교당국의 이같은 ‘학생식당 이익의 재투자’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학생식당 이윤추구는 장기적으로는 학교 건물을 늘이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전화로 통보하고 식대인상을 결정하였다는 부분도 참 재미있다.
전략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학교측의 정보독점이다. 정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 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학교측에 정보공개를 요구해야한다. 하지만, 학교측은 그다지 성실한 정보공개를 하지 않을 것이다.
식당 문제에서 학교측의 일방적인 결정에도 불구하고, 학생사회가 이끌려 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은 학생들도 ‘밥’이라는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만이어도 먹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독점 상태에서 학교측에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불매운동 밖에 없다. 이러한 불매운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학교밥’이 아닌 다른 먹을거리가 있을 경우이다. 그래서, 총학이 좀 바깥에서 싸게 김밥이라도 때어 오면, 학교밥 안먹고 그거 먹어줄 의사가 있다.
그리고, 정말로 불만인 외부거주인들은, 도시락을 싸다니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리고, 총학에 묻어가는 자치회는 뭥미?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화하는 것(즉 개념에 대하여 그 대상을 직관에 있어서 부여하는 것)은 직관을 지성화하는 것(즉 직관을 개념 아래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오성은 아무 것도 직관하지 못하며, 감성은 아무 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양자가 결합함에 의해서만 인식은 나올 수 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조금 더 다듬고 싶었는데, 귀찮다. ‘나단’이랑 ‘내사랑 한동’에 대해서도 엮을까 하다가 너무 길어져서 그만 썼다. 언젠가, 학우들이 ‘나단’을 대하는 태도와 ‘내사랑 한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글을 쓸 요랑이다.
냉소에 대한 불편함
서
나는 그저 지방대학교 학생 그리고 지역민으로서, 작금의 쇠고기 사태에 대한 촛불의 물결이 한껏 반가우면서도, 어떤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촛불이 한껏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나, 촛불을 일어나게 하는 촛불속의 일부 정신들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역사라는 것을 대할 때, 역사는 항상 진보한다는 진보주의 역사관(또는 낙관론)이나, 언제나 타락하기만 한다는 비관론의 한편에 서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역사에 참여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중요하며, 인간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 곧 역사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현재 사회를 지탱하는 요소들 또한 인간의 욕망이나 의지이며, 그것이 개개인의 역량을 벗어난 구조의 힘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며, 그 구조라는 것 또한 ‘인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여사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분명 우리 사회의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발언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발언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회에 대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에서 발현되었다면, 그 책임이라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사회가 이렇게 구성되게 된 하나의 요소로서의 개개인’에게 또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음미해야 하지는 않을까?
냉소주의
모든 촛불로 일반화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촛불을 들고 있는 일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신속에 ‘냉소주의’와 ‘일방적 분노’가 있음을 감지한다. 어쩌면, ‘냉소주의’는 모든 사회를 타락시키는 악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냉소주의’자들은 타인을 ‘냉소’만 할 뿐, 실질적인 문제해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으며, 타인을 짓밟음으로써 느끼는 쾌락만을 즐길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냉소주의와 결합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일방적 분노는 정작 이같은 사회를 구성하게 한 개개인의 잘못에는 눈을 돌리게 만든다. 정작 대선때 이명박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의 잘못은 상기시키지 않으며, 이명박을 찍는 사람들을 막지 못한 다른 유권자들과 무능했던 정치인들의 잘못에는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이러한 냉소주의는 없다가 따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회가 이렇게 형성되게 된 정신적 배경에는 ‘냉소주의’가 있었다. “정치인들이 뭐 그렇지.”같은 부류의 냉소주의. 냉소주의자들은 정치인들을 한껏 욕하며, 카타르시스만 느낄 뿐, 적극적으로 정치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냉소주의’는 묘하게 ‘양비론’과도 결합하게 되는데, 모든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았던 ‘냉소주의’는 이명박에게도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냉소주의의 역동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작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한동대학교 학생들은, 이제 쇠고기 촛불의 열기에 휩싸여 우파 기독교 단체에게 “그런 목사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기독교 목사들을 목사로 있게하는 신도들은 누구였으며, 그러한 우파 기독교 단체의 성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학교를 다니는 당신들은 누구인가?? 이제 그들은, 그러한 무반성과 냉소 속에서, 촛불과 목사들의 간음 사이에 논리적 연관성 마저 찾아내어 버리는 신비스러운 직관마저 소유하게 되어 버렸다.
냉소주의와 싸워야 한다.
우리의 적은 냉소주의였고 앞으로도 냉소주의일 것이다. “모든 언론이 다 그렇지 뭐.”식의 냉소는 ‘조중동’과 ‘한겨레’의 차이점을 무시할 것이며, “횡수가 그렇지 뭐.”식의 냉소는 더이상 건전한 토론이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자칫 진보를 가장한 가짜 ‘한동좌파’들의 “한동이 그렇지 뭐.”식의 냉소는 말할 것도 없겠다.
‘냉소’가 팽배한 곳에는 희망이 없다. 구체적 사안의 정치적 입장이 아무리 동일하다 하더라도, ‘냉소주의자’는 우리의 적이며, ‘냉소주의’는 사회를 파탄으로 이끄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우리는 삶의 구체적 영역에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냉소주의를 관찰하고 그에 대적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쇠고기 사태에 대한 입장은, ‘천주교 정의사제 구현단’의 입장에 가깝다.
우리는 남쪽으로 행진할 것이다. 더 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_(프레시안 – 사제단 “서울광장에서 매일 저녁 7시에 미사 올리겠다…단식 기도 시작”)
내용 없고 실체없는 신비적인 ‘상상력’개념을 운운하며 직접민주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하나의 이상으로나 가능하고, 이것은 촛불을 보다 지속적이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근거로써의 의의를 가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상을 국민들이 따라줄 것인가 혹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사회가 대의민주주의로 이끌려오게 된 이유에는 ‘정치에 적당히 관심을 끊고 싶은’인간의 게으름이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의 이상일 뿐이며, 가끔은 정치에 관심도 끊고 놀수도 있어야 행복한 세상은 아닐까??
나는 그래서 오히려, 사회를 현재까지 구성시켜 온 제 조건들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조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촛불의 대상은 이명박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예를 들면, 지독시리 지독한 한나라당 지지세력). 그래서 나는 촛불시위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포항에는 ‘이명박 대통령님을 믿습니다.’따위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물론, 나 개인을 생각하였을때, 평생 경험해 볼까 말까 한 정치적 이벤트가 벌어지는 현 시기에, 그 이벤트의 중심인 서울에 가보지 않는 것은 나의 손해이겠지만, 정말로 촛불시위가 필요한 것이 어디일까 생각하면, 오히려 지역의 촛불시위에 머릿수를 채워주는게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직접이냐 간접이냐는 형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아닌가.
책은 멀리하고 지내던 내가 대학 와서 읽은 첫 책을 꼽으라면 [[서승의 옥중19년]]이다. 서승과 서준식은 형제인데, 언뜻 철학 강의자료를 뒤지다가 서준식의 옥중서신에 관한 문구를 발견하고, [[서준식 옥중서한]] (서울: 야간비행, 2002)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는 중이다.
책을 사고 싶어 검색을 해보니, 첫번째 출판사와 야간비행을 거쳐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2008년 1월까지 검색이 되는데 현재 모두 품절이다. 특히 노동사회과학연구소판은 야간비행에서도 빠진 편지 부분이 추가되어 있다. 이거 어떻게 구할 수 없나?? 나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쪼르기 목록 No.1 로 등제한다.
“철학은 원래 전문적 문제영역을 가지지 않고 사회적 현실을 전면적으로 문제 삼는 학문인 것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역사상 항상 현존 사회와 그 어떤 긴장 관계에 서 왔던 근본적 이유는 철학 자체의 이 같은 본질에서 유래한다. 이와 같은 고달픈 긴장관계 속에서 버티어 나가지 못하고 전문화, 과학화로 스스로의 활동을 한정시키는 것으로 현존 사회에 ‘편입’될 때, 철학은 그 고유의 총체성의 시각을 잃어 현존 사회(세계)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영광스러운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특정한 ‘항간의 유행’이 도대체 어느 정도 진리에 가까우며 어느 정도 가짜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엄밀한 학’만이 판단 특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진리가 프락시스의 과정에서 인식되고 프락시스에 의하여 검증된다는 인식론적 입장에서 볼 때, ‘엄밀한 학’만이 유행의 물결에 초연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은 학자적 오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서준식, [[서준식의 옥중서한]] (서울: 야간비행, 2002), 562-563.
박경리 추모 백일장과 전통문화 답사. 2008년 5월 31일 토요일 당일치기로 양동과 경주 근처를 돌았다. 어떻게 꼽사리 껴서 잘 다녀옴. 사진은 정의홍 형님과 이수환 군이 찍은 사진.
이날의 단연 주제는 김인욱 군의 염장질이었음.
아주 강력한 에피소드
한 과객이 ‘쌍쌍바’를 먹으며, “아이스크림은 역시 쌍쌍바야.”라는 멘트를 날리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김인욱 군은 “같이 먹을 사람도 없으면서.”라는 강력한 멘트를 날려주었다고. 김인욱 커플의 못말리는 닭살행각에 교수, 학생 가릴 것 없이 입방아를 찧어대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