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저녁 5시 버스를 타고 포항에 들렀음. 며칠 지내는 동안 지인들을 둘러보고, 생각지도 못하게 나를 만나고자 하는 한 괴짜(?)가 있어서 여러 이야기들을 하였는데, 그냥 한번 정리해 보기.
I. 패션좌파와 짝퉁좌파
허지웅이라는 이가 글을 쓰면서 자주 강조하고, 자신의 블로그 첫 화면으로 고정해 두고 하는 이야기가, 당위론만 가지고 있는 좌파들에 대한 경멸이다. 허지웅이 말하는 ‘패션이라도 좋다.’는 이야기는, 당위론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비록 패션일지라도, 삶마저 그러한 당위론과 일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이야기는 그런 자칭 ‘진짜 좌파’들을 위한 게 아니다. 나는 1등급 한우마냥 거들먹거리는 ‘진짜 좌파’들이 싫다. 더 이상 그런 자들을 위해 글 쓰지 않는다. 당위를 빼면 한줌 농담거리도 남지 않는 그들의 글에서 진보 고해성사를 한 뒤 다시 빤한 삶의 굴레로 기어 들어가는 독자들을 위해 글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허지웅이 말하는 “자칭 ‘진짜 좌파’”들은 글이나 말에서만 진보 고해성사를 한 뒤, 자신의 삶은 별반 달라질 것 없는 그런 좌파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 “자칭 진짜 좌파”들은 결국 이론적 측면에서 선을 긋고 무엇이 더욱 진짜 같은 좌파이념인지를 설파하는 데에서 그 ‘진짜’의 의미를 찾을 뿐, 삶에서 ‘진짜’의 의미를 찾지는 않는다.
‘패션이라도 좋다.’라는 말은 살롱좌파, 강남좌파, 패션좌파 등의 단어들이 함의하는 부정적 의미들, 그런 단어들을 이용해서 비난하는 대상들과도 같은 비판지점을 지닌다. 살롱좌파, 강남좌파, 패션좌파들 모두 이념적 진보성과 비판적 정신들을 자신들을 치장하기 위해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들에 대한 비난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대상을 비난하며 말하는 것들은 모두 말과 행동의 일치, 생각과 행동의 일치, 삶과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II. 한동 학생정치 지형에서의 이미지 소비적 행태들
내가 생각하기로는 한동 학생정치 지형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성이나 언행들을 통해서 이 같은 좌파의 ‘지적인’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국제정치학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했던 학생정치적 행동들을 살펴보면, ‘지적인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고, 잃을 것이 없는 활동’들만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근래의 경우로 작년에 있었던 ‘뉴라이트 교과서’ 사태에서 취했던 행동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한 인식과 반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한 학술모임으로만 모여 있었고, 특강이 모두 마쳤음에도 그것을 정리하고 유영익 교수나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한 입장발표를 하지 않았다.
작년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준철 학우에 대해서 등을 돌려버린 국제정치학회 회원들과 당시의 캠프원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사실 그들이 이준철의 신뢰를 저버린 총학생회 운영에 대해서 뒤에서나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들 중 누구하나 공공의 영역에서 당시 총학의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비판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지지한 후보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당시 총학생회 집행부에 속해서 내부에서 싸웠던 인물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단지 뒤에서 호박씨나 까고 지적인 이미지를 한 번 더 획득했을 뿐이다. 결국 행동하지 않을 정도로만 비판적이라면 그것은 냉소일 뿐이고, 지적이게 보이고 싶은 욕망일 뿐이다.
III. 지적이면서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을 정도의 부
인간의 이 같은 욕망이 비단 학교 내부에서 보이는 시니컬하며 지적인 인물집단의 문제만은 당연히 아니다. 주낙현 성공회 신부의 블로그에서 읽어볼 만한 글을 발견한다.
이른바 강남 대형 교회들이나 그 밖의 “중산층”을 선교 대상으로 한 대형 교회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천주교의 성장도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천주교는 그동안 비판적이면서 지적인 ‘이미지’를 키워왔다. 이 ‘이미지’는 개신교의 그것과 차별화되기도 해서 더 유효했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짐짓 뻐기는 “중산층 욕망”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성장하는 개신교 대형 교회와 천주교의 성장도 같은 맥락에 있다. _ http://viamedia.or.kr/2009/02/23/462
기독교의 성장 또한 ‘비판적이며 지적인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고, 천주교의 보수적인 실체나 천주교 정의사제 구현단이 사실은 종파에서 내어놓은 망나니 집단으로 여겨지는 것은 차지하고라도 정의사제 구현단의 행위들은 천주교의 이미지를 ‘비판적이며 지적인 이미지’로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경험은 김규항의 ‘교회’라는 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친구 소개로 찾아간 교회는 작았다. 목사는 알려진 소설가였고 50명 남짓한 신도는 지식인들이었다. 나는 지쳐 있었고 새로운 교회의 진보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는 잠시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교회를 의심하게 되었다. 광주항쟁 3주기가 되는 예배 시간. 목사는 감동적으로 설교했다. 목사가 눈물을 흘리자 신도들도 울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도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다. 땡. 교단의 종이 울리고 목사는 웃으며 야유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이제 야유회에 맞는 얼굴이 되었다. 장소에다 회비까지 정해지고 드디어 신도들은 개운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는 한줌의 양심과 사회의식을 마스터베이션하고 있었다. 징그러웠다. 나는 교회 문 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가기를 거듭했다. 나는 청년부 총무였고 두 달만에 교회에 나갔을 때 회원들은 해명을 요구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내 눈길을 피했다. _ http://gyuhang.net/entry/교회
“중산층 욕망”, 386세대나, 좌파들이 그렇게 좌파가 아니라고 말하는 민주화세력들이 기반을 둔 욕망도 이 “중산층 욕망”이다. 한국사회 내에서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물론이거니와 교내 ‘잘난’ 학생들의 행동들에서도 이 “중산층 욕망”이 보인다. 잘나가는 학회인 ‘국제정치학회’의 흥함에는 “중산층 욕망”이 과연 작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그들이 그렇게 배우고 사회에 나가면 지금의 한국보다 나아지리라 생각할 수 있을까. 이명박을 욕하고 미국 대통령을 논해도, 결국 학생시절에 이야기 했던 것들을 현실에서 삶으로 검증하는 인물은 없을 것 같다. 아니, 당장에 하는 이야기들을 삶으로 검증하는 인물은 없다. 이명박만 욕하면 누구나 정의로워지는 세태가 더욱더 이 “중산층 욕망”을 부추길 것이고, 이미지 좌파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