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그냥기록' Category
일요일, 9월 20th, 2009
류교수님 수업을 정식으로 수강한 적은 없다. 학점관리를 워낙 엉망으로 해둔지라 타 학부 수업을 정식으로 수강하는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거의 끝물로 <텍스트와 문화>, <기독교 고전강독>같은 토론수업(?)을 교수님께 허락을 득하고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참석했었다. <텍스트와 문화>의 경우에는 박민규의 소설로 발표도 했었다. 학교에 있던 마지막 학기에는 "니놈이 기어이 내 수업을 수강하지 않고 졸업하겠다는 것이냐?"는 교수님의 특유의 미소가 가미된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그밖에도 <역사와 인간>, <기독교 역사>(이건 수업 이름이 기억이 정확하게 안난다.), <문화예술사>(이것도 수업 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을 일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업이었다.)같은 수업들을 아주 가끔 청강했었다. 강의식 수업과 토론수업은 그 즐거움이 달랐는데, 특히 토론수업 도중에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몇번 있었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는 학교 행정당국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교수님은 학생들이 제출하는 페이퍼의 내용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신앙적 이야기로 페이퍼의 끝을 맺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교수님께서는 아이들을 가르칠 의욕이 안생긴다는 말씀도 했었던 것 같다. 이미 계시적으로 은혜받아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이상 가르칠 것이 무엇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자신이 가르쳐도 되겠냐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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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9월 15th, 2009
영화::시간은 거꾸로 간다::노안으로 태어난 아이가 노안 때문에 집에서 버려지지만 노안 덕분에 편히 빌어먹다, 죄책감을 느끼던 생부가 남긴 유산으로 또 편히 살다. 이제 늙어서는 동안으로 빌어먹다가 죽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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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9월 15th, 2009
상상력이 희망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 그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상상력이라는 말은 내용이 없는 말이다. 배울수도 없다. 차라리 신의 계시가 좋겠다. 그건 기도라도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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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9월 2nd, 2009

love 아니고 phi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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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9월 1st, 2009
존재의 불안을 바탕한 열렬한 사랑을 허무주의라 평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존재의 불안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회문제화 시키려는 시도가 있는것 같다. 당시 평론이 지금의 시대적 인식은 아닐까? 그렇다면, 허무에 대항해 사랑하지않음이 오히려 희망적 징후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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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9월 1st, 2009
공부하다 보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문제도 같이 다루게 되는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게 궁극적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책 읽고 생각하고 이 모든 행위가 자기충족적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공부가 기쁨이고 위안이구나. 아니 이게 차라리 일종의 종교구나. 아! 이게 내 종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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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8월 30th, 2009
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역사철학관련 서적이다. 주안점을 두고 읽은 부분은 역사학의 방법론에 관한 논쟁들. 저자는 역사 연구자들을 방법론적 차원에서 실증론자와 관념론자로 나누고 그 둘 간의 대립으로 방법론에 대한 서술을 끌어 나간다. 실증론자들은 자연과학과 비슷하게 객관을 강조하고 역사에 있어서 일반법칙을 정립하고자 한다. 관념론자들은 인간의 과거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간행위의 외부(객관적 사실) 뿐만 아니라 내부(어떤 행위가 어떤 의미로 행해졌는가)에 대해서도 탐구해야 하며, 때문에 당시의 심성, 정신세계 또한 탐구대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방법론만을 이용하는 것은 그릇되다 비판한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모토는 이점에서 실증론자들만의 모토가 아닌데, 실증론자들은 일반법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관념론자들은 오히려 인간의 내부까지를 포함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규명하며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외부를 사유함에 있어서는 실증론자들의 방법론이 과거를 규명하는 한 단면이며, 인간의 내면에 있어서는 관념론자들의 방법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관념론자들의 과거의 심성이나 문화탐구에 있어서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역사철학에 있어서 프로이트에 대한 서술도 다루어진다. 실증론자들과 관념론자들의 차이는 그 방법론 뿐 아니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지의 여부에서도 갈라지겠는데, 실증론자들은 자연과학처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았고, 관념론자들의 경우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 "점 칠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경우 미래는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와 비슷하게 정신분석학에 있어서의 주요 개념들 또한 증명 불가능 하기 때문에 실증론자들과 대립하게 되는데, 이들의 논쟁 또한 정신분석학의 지지자들과 비판자들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결과론적 측면을 강조하는 회의론자들의 입장이 저자가 보기에 설득력을 갖는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 이 둘(역사학과 정신분석학)은 실천적 진리관에 정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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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8월 30th, 2009
경성과학(hard science)과 연성과학(soft science)의 구분지점과 연성과학의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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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8월 20th, 2009
존 루카스의 역사연구입문을 읽었다. 상당히 얇고 (20쪽 정도?)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말 그대로의 입문서이다. 책은 역사를 둘러싼 논쟁들을 툭툭 던지듯 말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입문서 니까. 툭툭 던져진 단어들을 캐물으면서 다른 책들을 참고하면 좋을듯. 이 20쪽에 달하는 얇은 책만 읽어도 역사 관련해서 삽소리 하는 일은 줄어들 듯. 무엇보다 아카데믹한 논문작성 방법 자체가 모두 역사학에서 연원한다는 사실. 그렇다면 모든 아카데믹한 글쓰기는 역사학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역사학 관련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서 랑케의 사관에 관해 항상 드는 생각은 랑케사관은 역사학이 과학에 대항하기 위해 했던 시도이고, 그래서 역사학 그 영역 자체의 그것이라기 보다 과학의 일부로 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보는 기준 자체가 과학의 그것이라는 생각도. "18세기에는 역사가 문학의 한 분야로, 19세기에는 역사가 과학의 한 분야로 보였지만, 20세기의 우리는 그러한 간명한 진술을 내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21세기에 19세기적 사고를 고집하는 인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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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8월 20th, 2009
산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습하고 어두운 구름. 자연히 산에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자욱이 끼거나 하여 우두컴컴한 나날들이 계속된다. 산 아래는 쾌청하고 맑은 날도 있었으나, 산에 걸린 구름은 바람에 날리지도 않고 산과 하나인듯 계속 그대로다. 그곳은 어쨌든 사람들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세수를 하지도 않고 논 밭 가축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도시의 손님이 들작시면 세수와 면도를 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고장이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삶은 고해요 고통이라는 말을 쉬임없이 내뱉는 사내들과 도시의 소음이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가 큰 여편네들이 산다. 사소한 것들을 사소하게 다투는 그 소리는 도시의 굉음만큼 신경질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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