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속의잡설' Category

誠意

수요일, 11월 11th, 2009

대학을 줄이자면 보통,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인데, 가치론이 시작되는 부분이 성의(誠意)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毋自欺也 자신을 속이지 아니하는것. 대학을 읽을 때마다 이부분에 자꾸만 눈이 간다.


[알라딘]역사학이란 무엇인가

목요일, 10월 8th, 2009

[알라딘]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절판도서, 구하기 힘들다. 울산 중부도서관에는 있다. 대여해서 읽자. 혹 접하게 되는 분들은 알려주셨으면 하고 바래봄.


大學을 다시 읽었다.

토요일, 10월 3rd, 2009

大學을 다시 읽었다. 대학은 확실히 글을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글 쓰는 데에도 많은 본이 되는 문장인 것 같다. 대학에도 나오지만, 사건이나 대화형 에피소드 중심의 논어나 맹자와는 달리–다른 종교경전도 이러한 경향이 있지요.– 대학은 한사람이 일시에 체계적으로 적은 옛 사람들의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저서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로 요약되는 대학의 내용은 앞뒤 내용이 끊어짐이 없이 버릴 내용도 없는 탄탄한 구조로 되어 있다. 만약에 사서 중에 한권만 읽으라면 단연 대학이겠지만, 대학 중에서도 한부분만 뽑아 봐야 한다면 나는 讀大學法을 꼽겠다. 한글 해석이 빽빽하게 들어차도 7쪽 밖에 안된다.


맘스치킨

화요일, 9월 29th, 2009

우리동네 맘스치킨. 이 간판을 보면, 치킨과 키친에 관한 판례가 있었던 게 떠오른다. 착오였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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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일요일, 9월 20th, 2009

휴대폰을 조만간에 정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음. 기타등등의 시기까지는 전화를 정지하는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전화가 되지 않으면 그리 알고 계시도록, 연락은 메일이나 방명록을 이용하면 되겠지요. 이곳을 찾아오는 수고마저 불필요한 관계라면, 잠시 쉬는것도 괜찮을듯.


學,思,多讀,多作,多商量

목요일, 9월 10th, 2009

글 읽기와 글쓰기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이 사실 그렇게 외따로이 떨어진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령 읽기만을 생각할 경우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 글을 써보는 것이 글을 체계적으로 읽는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오래토록 남는다. 쓰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쉬이 쓰는 것이 아니라, 퇴고 작업이 수반되는 바, 그것은 자신의 글을 읽고 문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읽기(讀)를 학(學)에 대입하고 생각(商量) 을 사(思)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면, 공자가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고 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본디 학이라는 것은 사(思)라는 것과 따로 떨어질 수 없겠지만, 여기서 공자는 어떤 지양해야 할 학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사와 대립시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옳은 학(學) 개념 속에는 읽기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다작 다상량이 함께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아마 이 경우 외에 공자가 말하는 학(學)의 개념 속에는 다작 다상량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작(作)또한 상량(商量)과 결코 별개의 것이 될 수가 없는데, 작(作)이라는 것은 결국 상량(商量)한 것을 구체적 문자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물컹거리고 말이라는 것이 미끈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구체성이 떨어지는 바, 홀로 머릿속에서만 살 것이 아닌 바, 언제나 언어화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작(作)이라는 행위로 실천(習)해 보는 것이다. 결국 독(讀)은 작(作)과 병행되어야 하고, 작(作)하기 위해 상량(商量)하게 되고, 때론 상량(商量)하기 위해 독(讀)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읽기만 읽을 게 아니라, 그것에 관해서 써보기도 해야 할 것이며, 쓰기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하여 읽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박재범, 민족주의, 언론

수요일, 9월 9th, 2009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떡밥 제공자? ㅡ;

오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연구주제에 관한 이야기. ‘민족주의와 언론’ 이야기 하다가 그 단어의 광범위함에 손발을 오글거리며─이건 흡사 ‘존재’를 사유하는 듯한─”박재범 쓰면 되겠네.”라고 말했다. 박재범 유승준 이현도 등등을 경우경우로 비교해서 그 담론이 확산되는 대에 언론이 어떤식으로 기여했는지를 살피면 뭔가 꺼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히 박재범의 경우 마이스페이스라는 SNS에 적은 기록이 문제되는 고로, SNS를 언론이 어떤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이런거 생각해보면, 기술의 발전─인터넷 환경─이 기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괜찮은 주제인듯.

유승준 이현도까지 갈 것도 없이 박재범만해도 다양한 층위에서 논할 수 있겠네.


토요일, 9월 5th, 2009


귀농

일요일, 8월 23rd, 2009

귀농이 희망이라거나

귀농이 새로운 삶의 모습이라거나

귀농이 우아하고 고상한 의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그대의 삶이 여전한 풍경 속의 한 켠이거나

지상의 어느 풍경의 가혹한 비정미를 즐겨 누리는 것일지도요.

_ 소야골숲속학교, 여름지기….

귀농을 미화하는 이야기들이야 많이 있겠지만, 귀농은 어떤 대단한 것도 아니고,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종류의 성질도 아니고, 그저 삶의 양식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 중에는 그 의의를 찾고 밀어 붙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그런 허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 것 같다.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에 학생들 강하게 ‘반발’ – 프레시안

금요일, 8월 21st, 2009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에 학생들 강하게 ‘반발’ – 프레시안.

진중권 임용 거부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이다. 중앙대 학생들은 그들의 수업권을 내세워서 진씨를 옹호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진중권이 수업 안해준다고 해서 대학 수업권의 침해라면 다른대학은 모두 수업권 침해인가? 그리고, 학생이 무조건 몰린다고 해서 좋은 수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결국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사태이다. 한예종이건, 초중고교 학생이건.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들을 권력자들이 선별하여 권력자들의 가치관을 가진 학생들이 태어나도록 만들고자 한다. 한예종 사태때, 진중권이 블로그를 옮겨가면서 까지 정권의 탄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했던 말들을 상기시켜 보자. 이 사건은 따로이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사태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