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속의잡설' Category

넋두리

화요일, 3월 23rd, 2010

인간이라는게 혼자 있어도 혼자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쌓은 구업이 한심하기도 하여서, 그냥 그것 대로 자유하기야 하겠지만 온전히 절연한 것도 아니어서, 그쪽 동네 소식은 아직도 들려오는데, 꽁꽁 고여있는 늙은이마냥 옛날생각을 하면서 요즘에야 하는 생각은, 그 동네 역사가 이제 10년을 갓 넘겼더라도, 얽히고 섥힌 그 누적된 힘의 깊이는 바다건너 침입해온 제국과도 비슷한 깊이의 내력을 갖는지라. 그 깊이는 과연 그대들이나 내가 절대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들고, 그저 파악이나 시도할 수 있을 뿐인데, 이제는 내가 그것 대로 자유한 탓으로, 그것의 파악을 시도한다기 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갖던 중에, 그 다른 것의 전체가 다가오기에 그 동네라는 부분이 다가오는 식으로 파악될 뿐이외다.


읽고 싶은 책들

목요일, 3월 18th, 2010

현식형이 책을 새로 번역했다. 책을 작년 11월 말쯤에 보내줘서, 받자마자 일주일 정도만의 다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중국의 전국시대에 관련 사상가들이 궁금해졌다.

현식형이 이번에 번역한 책은 장자에 관한 전체 서적은 아니고, 장자 중에서 몇 구절을 뽑아 그것을 저자가 풀어 놓은 책이다. 현식형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이 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자를 직접 읽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 잠언록
황천춘 외 지음, 김현식 옮김/보누스

중국 전국시대 관련해서 책들을 찾아보다가 아직은 못 읽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 목록을 한번 뽑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시대 비판철학
이해영 지음/문사철
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
김영건 지음/라티오

여기에 사마천의 사기도 더했으면 좋겠다. 사서는 일독했으니, 3경도 한번 읽어야겠다.

역사철학 관련 서적들을 좀 읽었으면 한다. 한스 위르겐 괴르츠의 <<역사학이란 무엇인가>>는 절판되어 있으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으니 조만간에 도서관을 이용할 예정이다. 거기에 요기 이 책도 추가.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리햐르트 반 뒬멘 지음, 최용찬 옮김/푸른역사

독서취향?

수요일, 3월 17th, 2010

http://book.idsolution.co.kr/

열대우림 외곽에 위치한 사바나 기후는 독특한 건기가 특징. 수개월간 비 한방울 없이 계속되는 건기 동안 사바나의 생물들은 고통스러운 생존의 분투를 거듭한다. 가뭄과 불에도 죽지 않는 강인한 초지를 기반으로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번성하는 ‘야생의 천국’인 동시에, 혹독한 적자생존의 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또한 고대 인류의 원시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건조한, 절제된, 강인한 생명력. 이는 당신의 책 취향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죽음의 건기를 대비하는:
    죽음의 건기를 대비하는 생물처럼, 치밀한 계획 하에 쓰여진 정교한 책을 선호. 책이란 무릇 간결하고 정확한 내용이어야 함.
  • 대초원 위의 야생동물 같은:
    사바나의 고양이과 육식 동물처럼 유유자적 고상한 취향. 과격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세속적이지도 않은 나름 고상한 선택 기준을 갖고 있음. 아마도 경험이나 교육에 의한 분별력으로 추정됨.
  • 절제된 현실주의:
    멍청한 감상주의, 값싼 온정주의, 상투적 가족주의, 이런 것들로 장사하려는 상업주의를 배격함. 문화적인 보수 성향이 있음. 지나치게 독창적인 책보다는, 절제력과 품격을 갖춘 것을 더 선호함.

당신은 출판시장에서 가장 보기 드문 취향 중 하나입니다. 분명한 취향 기준이 있음에도 워낙 점잖은 탓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당신의 취향은 다음과 같은 작가들에게 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움베르트 에코
로마의 원형 경기장 시절부터, 인류는 줄곧 잔인한 구경거리를 좋아했다. 이런 소름 끼치는 고문에 대한 최초의 묘사 중 하나는 오비디우스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그는 아폴론이 한 음악 경연에서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를 패배시킨 후 산 채로 그의 가죽을 벗겼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실러는 소름 끼치는 것에 대한 이 “자연적 성향”을 아주 잘 정의했다.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처형이 벌어질 때면, 사람들은 그 장면을 구경하려고 항상 흥분해서 달려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만약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만 영화관에서 유혈 낭자한 “스플래터” 영화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일 텐데, 그 영화가 허구로서 제시되는 이상 관객들의 양심이 흔들릴 일은 없는 것이다.
- 추의 역사 中

김승옥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 무진기행 中

J.D. 샐린저
“나는 특히 목사라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모두 목사가 잇었는데 모두들 설교를 할 때마다 억지로 꾸민 거룩한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이 역겨웠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내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 소리를 내는 것이 더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설교가 모두 거짓으로 들린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 호밀밭의 파수꾼 中


誠意

수요일, 11월 11th, 2009

대학을 줄이자면 보통,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인데, 가치론이 시작되는 부분이 성의(誠意)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毋自欺也 자신을 속이지 아니하는것. 대학을 읽을 때마다 이부분에 자꾸만 눈이 간다.


[알라딘]역사학이란 무엇인가

목요일, 10월 8th, 2009

[알라딘]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절판도서, 구하기 힘들다. 울산 중부도서관에는 있다. 대여해서 읽자. 혹 접하게 되는 분들은 알려주셨으면 하고 바래봄.


大學을 다시 읽었다.

토요일, 10월 3rd, 2009

大學을 다시 읽었다. 대학은 확실히 글을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글 쓰는 데에도 많은 본이 되는 문장인 것 같다. 대학에도 나오지만, 사건이나 대화형 에피소드 중심의 논어나 맹자와는 달리–다른 종교경전도 이러한 경향이 있지요.– 대학은 한사람이 일시에 체계적으로 적은 옛 사람들의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저서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로 요약되는 대학의 내용은 앞뒤 내용이 끊어짐이 없이 버릴 내용도 없는 탄탄한 구조로 되어 있다. 만약에 사서 중에 한권만 읽으라면 단연 대학이겠지만, 대학 중에서도 한부분만 뽑아 봐야 한다면 나는 讀大學法을 꼽겠다. 한글 해석이 빽빽하게 들어차도 7쪽 밖에 안된다.


맘스치킨

화요일, 9월 29th, 2009

우리동네 맘스치킨. 이 간판을 보면, 치킨과 키친에 관한 판례가 있었던 게 떠오른다. 착오였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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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일요일, 9월 20th, 2009

휴대폰을 조만간에 정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음. 기타등등의 시기까지는 전화를 정지하는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전화가 되지 않으면 그리 알고 계시도록, 연락은 메일이나 방명록을 이용하면 되겠지요. 이곳을 찾아오는 수고마저 불필요한 관계라면, 잠시 쉬는것도 괜찮을듯.


學,思,多讀,多作,多商量

목요일, 9월 10th, 2009

글 읽기와 글쓰기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이 사실 그렇게 외따로이 떨어진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령 읽기만을 생각할 경우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 글을 써보는 것이 글을 체계적으로 읽는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오래토록 남는다. 쓰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쉬이 쓰는 것이 아니라, 퇴고 작업이 수반되는 바, 그것은 자신의 글을 읽고 문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읽기(讀)를 학(學)에 대입하고 생각(商量) 을 사(思)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면, 공자가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고 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본디 학이라는 것은 사(思)라는 것과 따로 떨어질 수 없겠지만, 여기서 공자는 어떤 지양해야 할 학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사와 대립시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옳은 학(學) 개념 속에는 읽기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다작 다상량이 함께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아마 이 경우 외에 공자가 말하는 학(學)의 개념 속에는 다작 다상량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작(作)또한 상량(商量)과 결코 별개의 것이 될 수가 없는데, 작(作)이라는 것은 결국 상량(商量)한 것을 구체적 문자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물컹거리고 말이라는 것이 미끈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구체성이 떨어지는 바, 홀로 머릿속에서만 살 것이 아닌 바, 언제나 언어화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작(作)이라는 행위로 실천(習)해 보는 것이다. 결국 독(讀)은 작(作)과 병행되어야 하고, 작(作)하기 위해 상량(商量)하게 되고, 때론 상량(商量)하기 위해 독(讀)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읽기만 읽을 게 아니라, 그것에 관해서 써보기도 해야 할 것이며, 쓰기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하여 읽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박재범, 민족주의, 언론

수요일, 9월 9th, 2009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떡밥 제공자? ㅡ;

오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연구주제에 관한 이야기. ‘민족주의와 언론’ 이야기 하다가 그 단어의 광범위함에 손발을 오글거리며─이건 흡사 ‘존재’를 사유하는 듯한─”박재범 쓰면 되겠네.”라고 말했다. 박재범 유승준 이현도 등등을 경우경우로 비교해서 그 담론이 확산되는 대에 언론이 어떤식으로 기여했는지를 살피면 뭔가 꺼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히 박재범의 경우 마이스페이스라는 SNS에 적은 기록이 문제되는 고로, SNS를 언론이 어떤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이런거 생각해보면, 기술의 발전─인터넷 환경─이 기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괜찮은 주제인듯.

유승준 이현도까지 갈 것도 없이 박재범만해도 다양한 층위에서 논할 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