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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발췌]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서울: 푸른역사, 2009)

월요일, 10월 12th, 2009

짜임새 있는 글을 쓰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다. 일단 다 읽었는데, 몇 구절 뽑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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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종교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막연하고 결과론적인 대답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힘을 획득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한 힘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사회에 무관심한 사상-종교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무관심한 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힘을 획득한 사상만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에 집중하는 것에의 의의는 그만큼 한국 기독교가 정치권력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질 것이다. “종교의 진면목은 신화나 의례, 혹은 상징을 분석하기보다는 정치-경제-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관찰하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관점은 특정 “정치나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기독교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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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내용은 우리나라 개화기에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것에 대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태도를 분석한다. 서구문물을 정신문물과 물질문물로 구분한 뒤, 그에 대한 태도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경험이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고, 그 세계관이 서구 문물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지적을 몇 옮겨둔다.

척사론은, 비록 막연하기는 하지만, 서양 문물의 뒤에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경제 윤리, 그리고 제국주의적 힘과 동기 등에 대한 상당한 통찰력을 반영했다. …

황현黃玹이 지적한 바대로 개항과 국제 통상이 이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역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수입품은 대부분 저렴하고 불요불급한 공산품인데 그런 물품을 사들이기 위해서 조선이 내다 파는 물품은 쌀, 곡식, 피혁 등 일상의 필수품과 금, 은 등 귀중품이어서 조선 경제는 교역을 할수록 더욱 피폐하게 되었던 것이다. <<매천야록>>, 69~70. _ 26번 주석

… 개항기 보수적 유림이나 개화적 중신들에게 공통된 관심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며 살리는 것이었다. _ 책, 28.

중화주의와 서구주의는 당시 동아시아 세계관의 양극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 양극 사이 어느 점에 위치했느냐에 따라 서구 문명과 기독교를 보는 관점이 달랐다. 중화주의와 서구주의는 힘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세계관이었고, 논리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의 좌표가 서구주의쪽으로 옮아간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중화주의와 서구주의가 충돌했을 때 어느 쪽이 이기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_ 책, 53.

서세동점기의 조선에서는 서구적인 것이 진보적인 것으로 강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식 서구주의는 현실적 중화주의보다, 그리고 미국식 서구주의는 일본식 서구주의보다 더 진보적으로 보였다. 개신교를 받아들인 개화정치인과 민중은 더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제국주의와 뗄 수 없게 결합된 상황 속에서, 일본식이든 미국식이든 서구 문명의 근대성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를 받아들이는 셈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이나 서구를 흠모하는 것과 일본을 흠모하는 것의 뿌리는 같았다. 기독교 개화파들도 대부분 서구화된 일본을 흠모했으며, 일본식 서구주의를 받아들였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경우 일본의 조선 강점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_ 책, 55.

이러한 사실들은 척사파들이 폐쇄적이고 수구적이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현재 친미와 친일이 가지는 친화력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 하다.

3장의 내용은 얼마전에 교계에서 유행했던 again 1907이 대상하고 있는 대부흥 운동을 재검토 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통회자복 현상은 유교적 공동체 윤리가 기독교적 사적 윤리로 전환되는 모습이라는 차원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선교사들이 전한 사적인 차원의 종교는, 즉 신과의 개인적 관계에 의해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은 유교적 전통사회 속에서 낯선 개념이었다. 사적인 개인의 선택을 전제로 하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동아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다가 개항기에 서구로부터 도입된 근대적 서구의 인식체계다. 조선 후기의 유교는 개인적 차원의 종교가 아니라 국가와 문명 전체를 아우르는 이치[道]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사적인 개인이 신과 맺는 초이성적 관계가 중심이 되는 기독교와 달리 조선의 유교는 철저히 공적인 제도와 문물의 차원에서 그 정체성을 찾았던 것이다. 성리학의 공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 속에는 사적이고 초합리적 영역의 종교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 부흥운동에서 벌어진 통자회복 현상은 한국 교인들이 개인적이고 초이성적 차원의 기독교를 비로소 경험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점은 부흥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교인들이 일본인들을 증오한 죄까지 회개하고, 고종이 퇴위했을 때 극도로 고조되었던 반일감정을 길선주가 기독교적 원칙에 따라 진정시킨 현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분노까지 회개의 대상으로 삼거나 제어한 이런 장면은 공동체적 감정마저도 사적인 차원의 회개거리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어, 부흥운동 기간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경험했던 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대부흥운동의 결과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한국 교회의 비정치화도, 이와 같은 좀더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와 연결하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_ 책, 124.

7장은 한국 개신교가 베트남 참전에 관련하여 정부와 비슷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국가의 자주권과 관련하여 입장을 세우기 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실리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기독교는 베트남전에 반대한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여론과는 달리 미국 기독교 극우와 같은 입장을 나타내며 한국 정부를 지지했다.

따라서 NCC가 유독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보여준 경직된 견해는 한국 교회의 도덕적, 신학적 판단력이 6-25 전쟁의 경험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손상을 입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점은 종교가 신자에게 “진정으로 참된really real”것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심어준다고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같은 어떤 절실한 가치체계와의 관계에서도 종교적 가치관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냉전 시기 한국의 교회가 보여준 것은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상호관계는 냉전 시기 한반도의 남북 모두에서 드러났던 양자의 놀라운 친밀성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교회의 태도는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기독교라는 종교가 인간의 판단력과 가치체계에 미칠 수 있는 힘과 한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_ 책,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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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개항기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보았을때, 남한의 경우에 처음에는 중국에 이후에는 미국에 붙어먹는 느낌이 강했다. 남한의 전통을 사대의 전통이라 해도 무방할듯 하다. 북한의 현재 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김일성이라는 지도자가 상당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처음부터 표방했던 것도 아니었고,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건 상당해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 류대영

금요일, 9월 25th, 2009

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612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9/h2009092902401884330.htm

한겨레 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78675.html

※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한겨레는 인터뷰를 하긴 했으나 인터뷰 내용을 실지 않았고, 한국일보의 기사가 인터뷰 내용을 대체로 잘 반영한 기사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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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대영 교수님 책을 몇 권 사놓기만 하고 절대 읽어본 적은 없지만, 교수님이 여태껏 내어 오신 책 제목들만 보아도, 교수님이 어떤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셨는지는 알 만 하다. 서문을 잠깐 훑어보니 과연 그렇다. 여태껏 내셨던 논문들을 모아 편집하고 책으로 만들어 내신 것이다.

그저 제목만 보고 서투르게 느끼는 감정으로는 아마도 여태껏 연구해 오신 것들이 이제 현대에까지 이르러,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을 하는 책이 만들어 내어진 것 같다. 물론 다른 좋은 서적들도 쓰셨겠지만, 진짜 읽어야 할 책은 이 책이 되지 않을까?

보통은 마이리스트에 조용히 담아두나, 친구들도 같이 보자고 블로그에 올린다.


스티븐 툴민, 『코스모폴리스』(마산: 경남대학교출판부, 2008)

금요일, 4월 17th, 2009
코스모폴리스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경남대학교출판부

I. 들어가며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데카르트부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명제를 시작점으로 삼아, 그 명제가 극단적으로 전개된 현대를 살피며, 그 같은 문제들은 데카르트의 명제를 고집한 까닭이라고 지적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데카르트가 주장한 명제와 그 전개는 물론이거니와 그 명제가 나오게 된 사회적 맥락을 살피며, 또 그와 유사한 사회적 맥락에서 데카르트적 명제와 세계관들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도 보여준다.

이 같은 시도가 ‘모든 텍스트는 그 맥락 속에서 읽히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쉬이 들을 수 있는 주장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데카르트는 맥락을 읽어내고 상황을 고려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였으며, 스스로가 탈상황화 하는 명제를 주장하였고, 이 책이 출간될 당시 데카르트에 대한 연구자들 또한 데카르트를 탈상황화 된 인간으로 이해해 왔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에 대한 반성적 의의를 지닌다. 이는 특히나,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시작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이전’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며, 그들 관심사가 그저 근대에 머물지 않고 중세로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공부꺼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다 넓은 지성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 안내자와 같은 기능도 한다.

데카르트가 동료 철학자들에게 민족지학이며 역사학이며 시학 따위의 연구분야들을 단념하라고 권고한 시점이 바로 17세기 초였다. 데카르트는 내용 면에서나 상황관련성 면에서나 풍요롭기 그지없는 이 분야들을 포기하는 대신에 기하학이며 역사학이며 인식론 등 추상적이고 탈상황적인 분과들에만 전념하라고 권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내 연구의 초점은 17세기야말로 실천적인 철학관으로부터 오로지 이론에만 헌신하는 철학관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점이라는 사실에 맞추어졌다. 이것은 본서의 핵심적 관심사에 해당한다. _ 책, 7.

II. 백지상태로부터의 출발이라는 신화

듀이며 하이데거며 비트겐슈타인이며 로티 등의 해체작업 이후에, 철학의 선택폭은 아주 좁아졌다. 세가지 가능성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첬째, 철학은 순수이론적인 (근대적인) 철학의 연구 프로그램을, 이 헛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갈 때까지 고집할 수 있다. 둘째, 철학은 새롭고도 이론에 덜 치우친 작업을 추진하면서, 보다 실천적인 (포스트모던적인) 현안들이 요구하는 방법들을 계발해 나갈 수도 있다. 셋째, 철학은 17세기 이전의 전통으로 회귀하여 잃어버린 의제들을 다시 논의할 수도 있다. 데카르트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났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더없이 유용한 의제들의 부활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_ 책, 27.

이 책의 가장 핵심 내용은 백지상태로부터의 출발이라는 신화에 대한 파괴인 것 같다. 철학을 크게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으로 나누고 근대의 그것이 이론철학만을 중시하고 실천천학을 등한시 했다면, 우리는 이제 실천철학이 필요하며 다시 그것을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한 입장이, 앞서 인용한 첫 번째 입장과 두 번째 입장의 대립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 두 입장이 어떤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 바. 그것이 백지상태로부터의 출발이라는 신화인 것이다. 우리는 실재로 ‘실존’이라는 단어가 모든 맥락을 벗어나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을 뜻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저자가 진단한 대로 분명 ‘실천철학’적 측면이 보충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백지상태로부터의 출발’이라면, 그것은 근대와 공통점을 갖는 태도이다. 짐짓 생경해 보이는 17세기 이전의 전통에 대한 회복은 그런 점에서 앞선 두 태도들과 차이점을 갖는다. 그러니까, 근대에 대한 대안인 포스트모던에 대해 과연 ‘새로운’ 포스트모던만이 대안인지에 대해 저자는 재차 물어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역사적인 (사실적인) 쟁점이었다. 이 쟁점은 근대의 기원에 대한, 특히 16세기 인문주의로부터 17세기 이성주의에로의 전환에 대한 규범적 해설을 수정하기 위해 제기되었다. 둘째는 역사학적인 쟁점이었다. 이 쟁점은 우리가 과연 근대를 17세기부터 시작된 새로운 현상으로 취급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묻기 위해 제기되었다. 셋째는 철학적인 쟁점으로서, 근대성의 관념 자체를 겨냥했다. 우리는 이 쟁점을 통해서, 과연 근대의 야망이 오늘날에도 적절한 것인지, 아니면 오늘날의 지적, 실천적 관심사는 전혀 새로운 <포스트모던적> 방향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지를 묻고자 했다. _ 책, 274-275.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실천철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론철학은 등한시되어야 할 그 무엇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론철학도 하나의 유산이므로 결국에는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짐작컨대, 더욱 다급한 현안은 인문주의의 합리적이고 관용적인 (그러나 방만하지는 않은) 유산을 되새기는 일이지, 엄밀과학의 체계적이고 완전지향적인 유산을 (설령 그것이 확고하게 정립된 것이라 할지라도) 유지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두가지 유산 모두가 필요하다. 어느 한가지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완벽한 이론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뉴턴과 데카르트가 귀감이겠지만, 이론이 실천 속에 맥박처럼 고동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인문학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엄밀과학과 인문학을 철저히 구획한 기왕의 근대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인문주의라는 근대의 반쪽을 철학과 과학이라는 나머지 반쪽과 다시 봉합하는 일이다. 이것은 철학과 과학의 구원을 모색하는 길이기도 하다. 17세기 이성주의적 수단만을 가지고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이론의 (혹은 주권 독립국의) 모든 주장은, 실천과 경험이라는 그것의 뿌리 속에서 증명되지 않는다면 아무 위력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_ 책, 293.

III. 기존의 생각들에 대한 수정

저자가 의문을 가지게 된 과정들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지식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보여주는 대목들이 나온다. 그야말로 근대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수정하기 위한 서적인 것이다. 먼저 저자가 1장에서 “규범적 해설과 그 결함들”에서 서술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근대상 뿐만이 아니라 중세상 또한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깨는 근대와 중세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①근대는 중세에 비해 풍요의 시대였다. 근대는 근대 풍요로움의 산물이다. ②중세는 종교적 속박이 강했고, 근대 이후에 그것이 점차 완화되었다. ③인쇄술의 발전에 따라 평신도가 주도하는 세속문화가 출현하였다. 이렇게 세 가지 이다. 자 그럼 이제, 이 같은 우리의 기존 생각들을 논파하는 저자의 서술을 살펴보자.

16세기에 유럽은 중단없는 경제적 팽창을 누렸고, 에스파냐의 남아메리카 식민지들로부터 보물선에 실려온 은덩어리에 힘입어 대자본을 형성할 수 있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그같은 번영은 비꺽거리다가 결국 멈추었다. 불황과 불확실성의 시절이 뒤를 이었다. 17세기 초에 유럽인들의 생활은 결코 안락하지 않았다. _ 책, 36.

17세기에 교회의 통제가 느슨해졌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까웠다. 교황청은 기독교의 교리와 제도를 내부로부터 변혁하려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의 시도를 전면 거부했고 직접적인 대결을 선택했으며 프로테스탄트파를 분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정책은 트렌트 공의회 이후로 16세기 말에 착수되었지만, 30년의 유혈 참극이 발생한 1618년부터 극단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략)… 과학자를 위시한 지적 개혁자들에 대한 신학적 압력은 17세기 초반에 약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되었다>. _ 책, 38-39.

17세기에 평신도들 사이에서 교육과 문자해독의 능력이 확산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교육과 문자해독력의 확산에 힘입어 세속적 학문은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영향력을 키워갔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인쇄된 서적은 이미 1600년 이전에 100년도 넘게 통용되어 오던 참이었다. 근대 <문학>이 1600년 이후에야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시험을 통과하기 힘들다 – 이 점에서 근대 문학은 근대 과학이나 근대 철학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는 서유럽에서는 1520년 경에, 이탈리아에서는 그보다 앞서 진행되었던 일련의 변화들로부터 태어난 때늦은 후예들이었다. …(중략)… 16세기 인문주의자들이 만든 문화를 17세기 중반의 문화와 나란히 검토해 보면, 근대의 세속문화가 오로지 17세기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_ 책, 39-40.

IV. 다른 대립적 논쟁들에 대한 저자의 의견들

이 책에서 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은, 다른 여러 대립적 입장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책을 읽을 때는 2가지가 특히 눈에 띄었는데,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대립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모던-포스트모던 논쟁에 대한 저자의 논평이다. 특히나 모던-포스트모던에 대한 논쟁에 대한 저자의 논평에서, 모던-포스트모던에 대한 논쟁의 성격 자체가 애초에 서로가 지칭한 용어의 정의부터 제대로 하지 않고 시작한 허무한 논쟁이라고 지적되는데, 이러한 지적을 통해서 우리의 “읽지 않아도 될 책 목록”에 모던-포스트모던 논쟁과 관련된 서적들이 등재되는 순간이다.

이 점에서 근대성에 대한 철학적 비판자들과 옹호자들은 동문서답의 논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작가들이 <근대성>의 지속적 정당성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들은, 하버마스가 그것을 <긍정하기 위해> 지적한 20세기의 특징들과 일치하는 대목들이 많다. 양 진영은 마치 한 동전의 양면을 취하듯이 <근대성>이라는 쟁점의 양면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양 진영의 차이는 내용적인 차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근대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양 편이 서로 다른 뜻을 부여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_ 책, 282.

V. 중세에서 찾는 현재의 논의들

이 책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문학, 철학, 과학, 등등을 다루는 저자의 박학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저자가 어쩔 수 없이 에세이 형식을 빌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이러한 저자의 박학함은 어떠한 사상가들이 어떠한 전제들을 공유하는지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소개해주고 있어, 공부하는 이들에게 사상가들의 지도를 그리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시대상황을 다루는 책의 특성상, 각 사상가들이 어떤 시대에 반응했는지도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에 이루어지는 여러 논의들과 비슷한 태도들을 우리가 중세라고 일컬었던 그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나는 이 책에서 파괴적 의미의 ‘회의주의’가 아닌, 관용적이고 겸손한 의미에서의 ‘회의주의’를 만날 수 있었다.


생기론과 유심론의 발생

금요일, 4월 3rd, 2009

살아있는 기계라는 관념마저도 적대시되었다. 생명의 활동이란 기계론의 편협한 자연관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는 목적과 기능을 갖는다는 근거에서, 생리기관의 작용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들은 정신의 활동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들 못지않게 격렬한 비판을 받곤 했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의 비판과 비교할 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비물질적> 대행자라는 견지에서 생명과 사고를 설명하는 <생기론>이나 <유심론>을 중세의 유물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생기론이나 유심론은 중세의 유물이 아니라. 17-18세기의 과학에서 처음으로 정립된 것이었다. 그것들은 <물질>과 <기계>에 대한 기존의 정의로부터 발생한 결점을 보충할 필요 때문에 정립된 것이었다. 생기론이나 유심론은 전적으로 근대의 발명품이었다.

_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코스모폴리스』(마산: 경남대학교출판부, 2008), 185.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서문

금요일, 3월 27th, 2009

책은 사두었지만 좀체 읽어내질 못하는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저, 강성위 옮김, 『서양철학사』(대구: 이문출판사, 2005). 서문만 반복적으로 읽어내고 있는데, 철학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서문 발췌 pdf


[세속적 인문주의]의 애매성과 불필요성

일요일, 3월 22nd, 2009

스티븐 툴민의 『코스모폴리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상당히 흥미롭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에 언급하기로 하고, 방금 눈에 들어온 부분이다. 아무래도 타인으로부터 “인본주의자”로 규정당한 경험 때문인 듯. 그 “잔치”님은 요즘 뭐하시나? 갑자기 궁금하네….

그렇지만 오늘날의 원리파 기독교도들이 즐겨 사용하는 <세속적 인문주의>는 애매하고도 쓸모없는 개념이다. 이 구절은 자칫 독자들에게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기독교에 적대적이었고 비록 무신론적이지는 않았어도 반종교적일 수는 있었다는 상상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이러한 상상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16세기의 주역들은 양심에 비추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에라스무스는 독단적 교리를 조롱한 『우신예찬』을 썼지만 카톨릭 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가 가장 존중한 친구 중 한명이기도 했다. 아마도 에라스무스로서는 루터의 개혁 열정이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지 않도록 그 독일인 친구를 설득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루터에 대한 우호적 비판자였던 에라스무스는 문제를 자기들끼리 조용하게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공적인 대결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터가 몹시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에 에라스무스는 루터를 설득하지 못했다.) 에라스무스가 죽은 1530년대에 어린아이였던 몽테뉴도 비슷한 맥락에서 신학적 확실성에 대한 주장을 주제넘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몽테뉴 역시 독실한 카톨릭 신자를 자임했다. 더구나 그는 로마 방문 시에 교황의 알현을 청할 정도로 권위있는 신자였다. 이런 점에서 원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세속적 인무주의>는 착각에 불과하다. 15-16세기에 형성된 실생활에서의 인문주의는, 학문영역에서의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지배하던 유럽 문화 <내부의> 현상이었다. 실제로 인무주의자들은 종교개혁에 크게 이바지 했던바, 칼뱅처럼 프로테스탄트 인문주의자로서 기여하기도 했지만 로마 카톨릭 체제 안에서 인문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_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코스모폴리스』(마산: 경남대학교출판부, 2008), 48-49.

여기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세속적 인문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한 개념이라는 것, 그리고 몽테뉴는 교황을 알현할 정도의 권위있는 신자였는데, “신학적 확실성”에 대한 주장을 비판했다는 것. 이 문단 이후에는 이러한 내부의 인문주의자들의 정직한 회의에 대해서 계속 서술한다.

함부로, 인본주의 낙인찍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세속적 학문 운운 따위도 다 개소리라는 교훈을 알려주는 주옥같은 문장이다.


『당신들의 천국』단상

목요일, 3월 19th, 2009

상류층은 법, 중류층은 상식, 하류층은 연대. 각 계층의 투쟁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하는데, 그 분류 자체가 거칠고 대개는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것 그대로 삶의 형태 마다 알맞은 싸움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에서의 절정 부분.

  “그런데 참, 언제던가, 그 육지 사람들이 원장을 데려간다고 했을 때 말이야. 일이 결국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 사람들이 원장을 원했을 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임자를 그만 놓아보내주는게 좋았을 걸 그랬어. 공연히 그때 원장을 붙들었지. 하지만 그땐 누가 용케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을 알 수가 있었나…… 그래, 이젠 때가 너무 뒤늦은 얘기가 되고 말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앞일을 분간하지 못했다는 건 아마 우리가 일찍이 주님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거나 그것을 깨닫고도 그 뜻에 복종하고 따르기를 주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게야.”

  황장로는 짐짓 한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거듭거듭 원장의 주위를 맴돌았다.

  “참 묘한 일이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별지어주시는 주님의 뜻을 그나마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은 항상 이 추하고 권세 없는 문둥이들뿐이었거든. 원장들은 한사코 그걸 알아차리려 하질 않는단 말씀야. 그게 화근이야. 그 벌써 20년 저쪽 시절의 일이지만, 그 주정수 원장 말씀이야. 그 사람 때도 그랬었지…….”

_ 이청준,『당신들의 천국』(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5), 273.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의적 신앙이 투쟁양식이기도 하다. 아니, 자의적 신앙이 저들의 직관에 대한 표현양식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욱의 논리가 그들의 투쟁양식이 될 수 없고, 조원장의 권력, 명분이 그들의 투쟁양식이 될 수도 없다.


『안티고네』단상

수요일, 3월 18th, 2009

『안티고네』에서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하데스의 법과 크레온왕의 명령은 대치되고 있는데,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크레온왕에게 하는 말 중에 하나.

하계(下界)의 신들께 속하는 시신을 장례도 치르지 않고,
매장도 하지 않은 채 욕보이며 이 지상에 붙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오.
시신들에 대해서는 그대에게도, 상계(上界)의 신들께도 권한이 없으며,
그대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이들 신들께 폭행을 가하는 것이오.

『안티고네』, 1070행 -1073행.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영역주권 사상. 다신교적 전통은 각 신이 주관하는 각자의 영역에서의 각자의 질서를 형상화 하는 것에 더욱 강점을 지닌다.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나타나는 유형론의 유용성과 한계

토요일, 3월 14th, 2009
그리스도와 문화 (반양장)
헬무트 리처드 니버 지음, 홍병룡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I. 기독교 세계관 운동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회의하는 편이다. 잠깐 언급하고 가자면, 세계관에서 이야기 하는 용어들이 그것들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려고 할 경우 적용하는 자들의 자의에 달리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행해지는 방법 자체가, 기독교 세계관의 여러 종류들이 형성된 그 구체적 현실에서 떠나, 단순한 도식으로 남아버리기 때문에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본다.

『그리스도와 문화』1)라는 책 또한 기독교 사상을 형성한 사상가들이 어떤 구체적 현실에서 무엇과 싸우면서 자신의 사상을 형성했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고, 그 사상가들에 대한 이해는 정말로 ‘도식적’ 차원에서만 소개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와 문화』를 그저 기독교 사상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대략 소개하고 이후에 그들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소개하는 기독교 입문서 정도의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같은 한계들은 유형론의 한계와도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유형론의 방법론에 대해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어쩌면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책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저자는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유형론의 한계와 독자가 유형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유형론이라는 방법론은 비단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재미거리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혈액형이나 MBTI 등의 심리검사나 사회과학 분야에도 널리 쓰이고 있는데, 『그리스도와 문화』를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와 문화가 관계맺는 유형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그것이 어떤 방법론에 근거해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말 첫부분 종이 1장 정도의 분량이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유의하고 읽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II. 유형론의 대두

저자는 먼저 유형론적 방법을 사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서술하는데, 그 이유는 발생론적 방법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발생론적 방법이란 “단 하나의 아이디어나 원칙이 어떤 개별적 현상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가정”2)하는 방법이다. 원칙의 성숙정도가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사상을 볼 때에도 전기나 후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발달의 정도에 따라서 나눈다.

하지만, 이러한 발생론적 방법은 그 방법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나 원칙”이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 다른 요인이나, 또 다른 원리들이 한꺼번에 구현된 사례에 있어서는 그 방법이 부적절한 것이 되게 된다. 그래서 유형론적 방법이 대두되는데, “유형론이란 이처럼 많은 요소를 여러 가문으로 나누어 각각 독특한 특징이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론이다.”3)

발생론적 방법과 유형론적 방법의 이면에 드러나는 차이점은 발생론적의 경우 ‘하나’의 원칙이나 원리가 현상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보는 반면에 유형론적 방법은 그 원칙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일 수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유형론은 기독교의 여러 윤리들이 하나의 원리 하나의 원칙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발생론적 방법이 일원론적 설명방식이라면 유형론적 방법은 다원론적 설명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III. 유형론의 한계 : 경험성보다 합리성을 우선시 하라

저자는 유형론의 한계 또한 서술하고 있는데, 유형이란 정신적 구조물인 만큼 어떤 개체도 거기에 딱 들어맞지 않으며, 그것은 철저하게 대상의 이해를 위해서 이용되어야 한다고 서술한다. 우리가 유형론을 대할 때 취해야 할 태도는 “합리성을 경험성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 속에 함축되어 있는데, 이러한 유형론은 철저하게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저자는 “양자간의 필연적 연개성을 진술하는 것으로 보면 안된다.”4), “유형론은 … 결정론을 주장하는게 아니다.”5) 라고 서술함으로써 일종의 경험론으로서의 유형론은 결국 합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IV. 유형론을 사용하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비교적 명확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서술한 리처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가 관계 맺는 양식에 관하여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가들을 열거하며 그들의 사상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유형적 분류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사상에 대한 큰 지도를 그린 후, 저자가 언급한 사상가들을 ‘합리성’의 눈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행해야 할 것이다.

리처드 니버의 이 같은 유형론에 대한 서술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쉬이 접하는 혈액형별 성격테스트 라거나, MBTI같은 성격유형론들이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한 유형론과 동일한 유형론이라는 점에서 그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도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 리처드 니버,『그리스도와 문화』(서울: IVP, 2007), 홍병룡-임성빈.

2) 책, 47.

3) 책, 48.

4) 책, 48.

5) 책, 49.


박찬국,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파주: 동녘, 2004)

화요일, 2월 17th, 2009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박찬국 지음/동녘

I. 들어가며

  저자는 “모든 철학은 인간의 삶에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역사적인 존재인 한 모든 철학은 자신의 시대와의 대결이다.”1)라고 책을 시작한다. 이런 시각에 기초하여 하이데거 역시 그의 철학이 그의 삶에 뿌리박고 있는 한에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철학과 생애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2)3)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 또한 하이데거가 살았던 시대와의 ‘대결’로 규정함으로써 하이데거가 대항 했던 사상적·시대적 전선을 보다 명확히 표현해 내고 있다.

II. 데카르트의 자연관과 플라톤의 존재이해

  하이데거가 살았고 하이데거 자신이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한 시대는 기술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기술문명과의 사상적 대결이다.4) 저자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전선 중 가장 근본적인 지점은 과학기술과 이데올로기이다. 하이데거가 현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규정한 것도 과학기술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간이 착취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대항적 맥락에서 나온 규정이다.

  먼저 과학기술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근대의 데카르트적 주체와 종래 플라톤류의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반성작업을 언급한다. 데카르트의 자연관은 자연을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하고 예측할 수 있는’ 연장적 사물〔res extensa〕로서5) 보는데, 이는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하는 대상을 분리하고, 그 둘 사이에 공통점은 없는 것으로 본다. 데카르트 자신은 자신의 철학적 작업이 “모든 물체의 힘과 작용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철학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식을 적합한 모든 목적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인식(표방하는 새로운 방식)을 통하여 우리는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될 것이다.”6)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근대가 진행되면서 세계를 계산 가능한 에너지들의 연관체계로 보는 자연관으로 심화되었으며7), 인간 자신도 자연에 속하는 이상, 필연적으로 인간마저 ‘객관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계산 가능한 에너지’로 규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8)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대상화하고 에너지를 뽑아낼 객체로 보게 된다. 이 같은 데카르트의 자연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이해마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주의적인 이성관에서는 데카르트적 자연관을 전제로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그 작용법칙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능력으로 이성을 규정한다. 하이데거는 이 같은 이성관이 데카르트를 비롯한 서구 형이상학의 존재자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본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서구 형이상학은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인간이 지각하거나 이론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왔다.9) 이러한 존재 이해는 우리가 언제든지 이론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자를 간주한다.10)

III. 쇼비니즘과 자유민주주의국가에 대한 비관

  하이데거가 살았던 당시의 독일은 바이마르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당시 독일은 경제공황과 1차 대전의 패배에 따른 연합국의 배상요구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는데,11)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적인 바이마르 정권이 이 같은 난국을 수습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이데거 또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특별하게 우려한 것은 바이마르 정권의 무능으로 볼셰비즘과 같은 극좌세력이 대두하는 것을 염려하였다.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주의와 서구 전통 형이상학이 그러한 것처럼, 볼셰비즘 역시 모든 사물을 기술적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전체주의의 전형으로 보았다. 자연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국력 증대를 위한 총동원 체제로 보았다.12) 하지만, 자유주의적인 바이마르 체제 역시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볼셰비즘과 다를 바가 없는 체제였다. 자유민주주의적인 바이마르 체제가 말하는 자유라는 것 또한, 마르크스가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 자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13)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상실하고 실질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금권 지배를 강화하는 바이마르 체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보았다. 하이데거는 러시아의 볼셰비즘과 미국의 자본주의 양자 모두를 ‘모든 존재자를 계산 가능하고 얼마든지 착취될 수 있는 에너지로 환원하려는 광기와 물질 만능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나라’들로 보았다. 그리고 독일민족과 유럽이 이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다.14)

  이런 맥락에서, 하이데거는 ‘나치 운동’에 희망을 걸었다. 히틀러는 나치운동을 시작하는 당시에는 반유태인 정서와 세계정복의 야심을 숨긴 체 기술문명과 도시문명, 대부르주아 세력을 배격하고 농촌과 농민들의 정신을 이상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기술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농촌의 삶을 강조한 하이데거15)는 자신의 사상과 나치즘의 이념에서 사상적 유사성까지 발견하였다. 특히나 히틀러는 1933년 5월의 ‘평화연설’에서 “민족에 대한 자신의 무한한 사랑과 충성은 다른 민족들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다.”라고 말하였을 때, 하이데거는 물론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마저도 히틀러의 출현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16)

  하이데거는 이렇게 ‘나치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는데, 하이데거는 대학생들로 하여금 노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대학의 문턱을 낮추고 노동자들에게 배울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였다. 더불어 맹목적인 학문의 자유보다 조국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하이데거의 총장 취임 연설17)과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18)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하이데거는 나치당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제국주의 정책에는 찬동하지 않았으나 초기의 나치운동에 적극적인 하이데거의 태도는 많은 비판자들에 의해 나치와 동일시되었다. 이후, 나치당의 권력은 점차로 강해졌고, 나치당은 대학의 요직에 나치당과 가까운 사람들을 임명하도록 대학총장인 하이데거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에 하이데거는 자신이 총장직을 사임할 것을 결정하였다.

  하이데거는 비록 나치당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초기 나치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었다는 오명을 업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하이데거는 나치즘에 대해서도 반성적 작업을 행하게 되는데, 특히 니체와의 대결을 통해서 나치즘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하이데거는 나치즘 또한 기술적 전체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극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IV. 존재와 근본기분 그리고 망각과 회피

  하이데거가 지적한 플라톤의 전통 형이상학이 갖고 있던 존재에 대한 태도는 이제 정말로 그 태도에 대해서 물어보아야 한다. 전통 형이상학이 가지고 있는 ‘명제’가 아니라, 명제나 질문이 물어지는 명제 발언자 혹은 질문자의 기분에 대해서 묻게 되는데, 하이데거 철학에서 ‘근본기분 〔Grundstimmung〕’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용어해설 부분을 보자.

  기분 Stimmng과 근본 기분 Grundstimmung

하이데거는 기분이 인간의 삶에서 갖는 심대한 의의를 드러낸 키에르케고르의 통찰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현존재의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기분은 다른 존재자들로부터 고립된 주체의 내면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엄습하면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처해 있는 세계를 개시하는 힘이다. 불안이라든가 깊은 권태와 같은 기분은 내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면서, 나에게는 나 자신의 존재가 문제 된다는 사실을 개시한다. 기분은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로서 세계 전체에 열려 있다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본능에 의해 제한된 환경세계에 사로잡힌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는 있어도 기분을 가질 수 없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기분 중에서 우리 자신과 세계를 완전히 달리 드러내면서 우리를 결단에 직면케 하는 기분을 근본 기분이라고 하였다. 전통적인 철학은 존재에 대한 이해가 보편적인 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으로 본 반면에, 하이데거는 우리 각자가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이러한 근본 기분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_ 책, 280. (밑줄은 필자)

  하이데거는 우리의 모든 이해는 ‘기분지어진 이해’라고 말한다.19) 본래, 그리스인들의 사유에서는 ‘경이’라는 근본기분으로 존재자들이 엄습해 오는데, 플라톤에서부터 존재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언제든지 파악될 수 있는 초월적인 이데아로서 ‘망각’되어 가고 있었으며, 데카르트는 ‘회의’라는 근본기분을 바탕하고 철학적 물음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20)

  여기에서 한 가지 강조해야 할 점은 하이데거는 존재의 대상적 성격뿐만이 아니라, 존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체적 성격 또한 보았다는 점이다. 과학은 존재자가 눈앞에 이미 드러나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존재 자체가 개현되는 사건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존재자의 진리를 근원적으로 개시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이나 과학처럼 이미 드러난 존재자들을 실마리로 하여 파악된 그것들의 본질과 전체적인 질서로부터 존재자들을 다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개현이 일어나는 사건으로 진입해야만 한다. 이러한 진입을 통해서만 존재자들은 자신들을 근원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반해 형이상학이나 과학이 탐구의 실마리로 삼는 눈앞의 존재자들은 존재자들의 근원적 개시가 퇴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전통 형이상학은 존재자의 개시를 위한 근본 전제가 되는 존재를 망각했다고 보며 이러한 망각이 극단에 이른 것이 현대의 과학기술이라고 보았다. 현대과학은 존재자의 개시를 위한 전제를 존재 자체의 개현에서 찾지 않고 인간이 기투하는 조작적인 가설에서 찾는다. _ 책, 281.

V. 예술과 철학의 관계

  과학주의적 입장에서 철학은 과학과 유사한 학문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하이데거에게는 철학은 예술과 유사성을 갖는다. 하이데거는 철학을 역사적으로 다가오는 존재의 진리가 근본기분을 통해서 개현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개념이 하이데거의 ‘존재 역운’이다.21) 저자는 하이데거의 존재역운을 우리가 흔히 영감〔Inspir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의 하이데거 특유의 해석으로 보는데,22) 하이데거는 진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표현들을 곳곳에서 드러낸다.23) 이렇게 보았을 때, 영감을 긍정하는 예술이야 말로, 진정 철학에 근접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본질은 ‘존재자의 진리를 작품 안에 정립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24)

  이 책에서도 특별하게 관찰할 수 있는 부분은,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는 철학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저자 박찬국의 시각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저자는 『존재와 시간』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존재와 시간》은 각자적인 현존재가 갖는 본질적인 존재 구조를 분석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 일반이 갖는 유형적인 특성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상실하고 어떻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지, 그리고 일상속의 자기의 본질은 무엇이고 진정한 자기는 무엇인지를 분석한 것이다. …(중략)…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라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문학적인 형식을 취한 반면에, 하이데거는 각자적인 개인으로서의 모든 인간이 갖는 보편적인 존재 구조를 분석한 것이 다를 뿐이다. _책, 77. (밑줄은 필자)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대한 태도도 특기할 만하다.

  하이데거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 못지않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존재의 진리를 생기하게 하는 근본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작품을 보존하는 것〔Verwahren〕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작품이 개시하는 존재의 진리 안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을 주관적인 체험 안으로 끌어들이지도 않고 체험의 유발체로 만들지도 않으며,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진리에 진입하면서 세계와 자신을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다. _ 책, 239.

VI. 전쟁과 기술문명과의 관계

  하이데거가 살았던 시대는 전후의 독일이다.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적 검토는 과학기술문명과 전쟁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박찬국의 말하는 하이데거 사상의 의의 부분을 보자.

  기술문명은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전쟁은 해롭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전쟁과 과학기술문명의 급속한 발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가? 하이데거와 같은 사상가는 양자 간에는 본질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만약 둘 사이에 본질적인 연관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기술문명을 깊이 반성하기도 전에 단순히 전쟁만을 중단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_ 책, 276.

VII. 마치며

  아무래도 하이데거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은 존재의 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며, 그 속에서 신비를 발견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존재자에게 진리를 뱉어내라는 공격적 태도가 아니라, 존재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 진리가 우리 앞에서 개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진리의 개현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하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사상은 신비주의적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합리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사유를 좁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를 가르고 그것의 불명확성을 비판하는 기준 자체가 합리주의자의 그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신비가 사라진 세상, 감사가 사라진 세상, 모든 것을 에너지로만 환원하는 세상, 하이데거가 안타까웠던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이데거가 보기에 지금은 또한 얼마나 안타까울까?


1) 책, 14.

2) “그러나 필자는 하이데거 사상의 형성에는 다른 여느 사상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가정환경이나 성장 배경, 그 시대의 사회적·정신적 상황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서 그의 삶에 대한 검토가 상당 부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_책, 42.

3) 책, 39. 에서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시기별로 그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고 요약한다.

4) 책, 15.

5) 책, 28.

6) 책, 29.에서는 《데카르트 전집》6권, 질송(Etienne Gilson)판, 1925, 61쪽 이하.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를 재인용 하였다.

7) 책, 29-30.

8) 책, 31.

9) 책, 33.

10) 책, 33.

11) 책, 158.

12) 책, 158.

13) 책, 159.

14) 책, 160.

15) 책의 곳곳에서는 하이데거의 사상이 농촌이었던 자신의 고향 메스키르히와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책, 45.에서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자신의 고향 메스키르히에 대한 연가이자 찬가라고도 부를 수 있을 듯하다. 하이데거는 황폐해져만 가는 기술문명에 대해서 자신의 고향 메스키르히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라고 말한다.

16) 책, 162.

17) 하이데거는 총장 취임 연설 ‘독일대학의 자기주장’에서 “그 동안 찬미되어온 ‘학문의 자유’는 대학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는 부정하는 자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라고 말함으로써 맹목적 자유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책, 164. 참고.

18) <노동봉사로의 호소>라는 글에서는 “그러한 봉사를 통해서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민족공동체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매일 분명하면서도 철저하게 경험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민족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이는 책, 164-165. 참고.

19) 책, 103.

20) 책, 214-216. 참고.

21) 책, 217-218. 참고.

22) 책, 218.

23) “우리가 사상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우리에게 온다.” _ 책, 219. “그것이 내 안에서 사유한다. 나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 _ 책, 220. 같은 표현들이 그 단적인 예이다.

24) 책,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