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2009. 9. 04. 00:12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원래 꽤나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원곡 먼저 들어보시고

Sunny Side 인가 하는 그룹에서 리메이크를 했단다.

아무래도 숨을 뿜어내는 울림은 옛곡이 더….


philia

2009. 9. 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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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아니고 philia


존재의 불안을 바탕한 열렬한 사랑을…

2009. 9. 01. 23:22
존재의 불안을 바탕한 열렬한 사랑을 허무주의라 평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존재의 불안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회문제화 시키려는 시도가 있는것 같다. 당시 평론이 지금의 시대적 인식은 아닐까? 그렇다면, 허무에 대항해 사랑하지않음이 오히려 희망적 징후는 아닐까?

공부하다 보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2009. 9. 01. 19:16
공부하다 보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문제도 같이 다루게 되는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게 궁극적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책 읽고 생각하고 이 모든 행위가 자기충족적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공부가 기쁨이고 위안이구나. 아니 이게 차라리 일종의 종교구나. 아! 이게 내 종교구나.

경향닷컴 |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

2009. 8. 31. 15:18

경향닷컴 |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

-카이에 뒤 시네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해선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현실과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판타지 영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찬욱의 영화엔 내가 연관시킬 수 있는 현실이 없다. 아마 내가 체험할 수 있는 현실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홍상수의 영화를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에서 박찬욱의 영화는 홍상수보다 100배 많은 관객을 불러모은다.

“잘 알고 있다(웃음). 평론가와 대중의 괴리에 대해선 항상 고민한다. 하지만 평론가는 평균적인 영화 관객이 아니며, 광고인도 아니다. 평론가는 영화에서 느낀 감정을 지적인 사고로 바꾸고, 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혀냄으로써 관객의 한정된 시선을 넓힌다. 타인의 견해는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선거에 나설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마크 길더러스, <

2009. 8. 30. 21:42
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역사철학관련 서적이다. 주안점을 두고 읽은 부분은 역사학의 방법론에 관한 논쟁들. 저자는 역사 연구자들을 방법론적 차원에서 실증론자와 관념론자로 나누고 그 둘 간의 대립으로 방법론에 대한 서술을 끌어 나간다. 실증론자들은 자연과학과 비슷하게 객관을 강조하고 역사에 있어서 일반법칙을 정립하고자 한다. 관념론자들은 인간의 과거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간행위의 외부(객관적 사실) 뿐만 아니라 내부(어떤 행위가 어떤 의미로 행해졌는가)에 대해서도 탐구해야 하며, 때문에 당시의 심성, 정신세계 또한 탐구대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방법론만을 이용하는 것은 그릇되다 비판한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모토는 이점에서 실증론자들만의 모토가 아닌데, 실증론자들은 일반법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관념론자들은 오히려 인간의 내부까지를 포함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규명하며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외부를 사유함에 있어서는 실증론자들의 방법론이 과거를 규명하는 한 단면이며, 인간의 내면에 있어서는 관념론자들의 방법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관념론자들의 과거의 심성이나 문화탐구에 있어서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역사철학에 있어서 프로이트에 대한 서술도 다루어진다. 실증론자들과 관념론자들의 차이는 그 방법론 뿐 아니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지의 여부에서도 갈라지겠는데, 실증론자들은 자연과학처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았고, 관념론자들의 경우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 "점 칠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경우 미래는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와 비슷하게 정신분석학에 있어서의 주요 개념들 또한 증명 불가능 하기 때문에 실증론자들과 대립하게 되는데, 이들의 논쟁 또한 정신분석학의 지지자들과 비판자들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결과론적 측면을 강조하는 회의론자들의 입장이 저자가 보기에 설득력을 갖는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 이 둘(역사학과 정신분석학)은 실천적 진리관에 정합하는 것 같다.

경성과학(hard science)과…

2009. 8. 30. 19:40
경성과학(hard science)과 연성과학(soft science)의 구분지점과 연성과학의 방법론.

귀농

2009. 8. 23. 01:50

귀농이 희망이라거나

귀농이 새로운 삶의 모습이라거나

귀농이 우아하고 고상한 의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그대의 삶이 여전한 풍경 속의 한 켠이거나

지상의 어느 풍경의 가혹한 비정미를 즐겨 누리는 것일지도요.

_ 소야골숲속학교, 여름지기….

귀농을 미화하는 이야기들이야 많이 있겠지만, 귀농은 어떤 대단한 것도 아니고,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종류의 성질도 아니고, 그저 삶의 양식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 중에는 그 의의를 찾고 밀어 붙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그런 허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 것 같다.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에 학생들 강하게 ‘반발’ – 프레시안

2009. 8. 21. 15:42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에 학생들 강하게 ‘반발’ – 프레시안.

진중권 임용 거부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이다. 중앙대 학생들은 그들의 수업권을 내세워서 진씨를 옹호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진중권이 수업 안해준다고 해서 대학 수업권의 침해라면 다른대학은 모두 수업권 침해인가? 그리고, 학생이 무조건 몰린다고 해서 좋은 수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결국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사태이다. 한예종이건, 초중고교 학생이건.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들을 권력자들이 선별하여 권력자들의 가치관을 가진 학생들이 태어나도록 만들고자 한다. 한예종 사태때, 진중권이 블로그를 옮겨가면서 까지 정권의 탄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했던 말들을 상기시켜 보자. 이 사건은 따로이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사태인지도.


존 루카스의 역사연구입문을 읽었다….

2009. 8. 20. 19:50
존 루카스의 역사연구입문을 읽었다. 상당히 얇고 (20쪽 정도?)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말 그대로의 입문서이다. 책은 역사를 둘러싼 논쟁들을 툭툭 던지듯 말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입문서 니까. 툭툭 던져진 단어들을 캐물으면서 다른 책들을 참고하면 좋을듯. 이 20쪽에 달하는 얇은 책만 읽어도 역사 관련해서 삽소리 하는 일은 줄어들 듯. 무엇보다 아카데믹한 논문작성 방법 자체가 모두 역사학에서 연원한다는 사실. 그렇다면 모든 아카데믹한 글쓰기는 역사학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역사학 관련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서 랑케의 사관에 관해 항상 드는 생각은 랑케사관은 역사학이 과학에 대항하기 위해 했던 시도이고, 그래서 역사학 그 영역 자체의 그것이라기 보다 과학의 일부로 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보는 기준 자체가 과학의 그것이라는 생각도. "18세기에는 역사가 문학의 한 분야로, 19세기에는 역사가 과학의 한 분야로 보였지만, 20세기의 우리는 그러한 간명한 진술을 내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21세기에 19세기적 사고를 고집하는 인들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