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행복

2009. 9. 11. 22:18

사실 우리는, 교양을 갖춘 이성이 인생을 즐기고 행복을 누리겠다고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진정한 만족에서 더욱 멀리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더 정확히 말해 이성을 사용하는 데 가장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이성혐오증Misologie,  즉 이성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데, 그들이 솔직하다면 이를 고백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잘난 체하기 위해 발명해낸 기교들의 장점이 아니라, 학문에서(그들에게는 결국 마찬가지로 지성의 화려함으로 보이겠지만) 나온 모든 장점들을 저울질해보아도, 사실 행복을 얻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고통만 짊어졌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단순한 자연 본능에 더 잘 이끌리고, 모든 행동에서 이성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더 평범한 부류의 인간들을 경멸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_ 임마누엘 칸트 著, 이원봉 譯,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서울: 책세상, 2002), 30-31p.


學,思,多讀,多作,多商量

2009. 9. 10. 12:06

글 읽기와 글쓰기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이 사실 그렇게 외따로이 떨어진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령 읽기만을 생각할 경우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 글을 써보는 것이 글을 체계적으로 읽는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오래토록 남는다. 쓰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쉬이 쓰는 것이 아니라, 퇴고 작업이 수반되는 바, 그것은 자신의 글을 읽고 문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읽기(讀)를 학(學)에 대입하고 생각(商量) 을 사(思)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면, 공자가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고 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본디 학이라는 것은 사(思)라는 것과 따로 떨어질 수 없겠지만, 여기서 공자는 어떤 지양해야 할 학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사와 대립시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옳은 학(學) 개념 속에는 읽기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다작 다상량이 함께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아마 이 경우 외에 공자가 말하는 학(學)의 개념 속에는 다작 다상량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작(作)또한 상량(商量)과 결코 별개의 것이 될 수가 없는데, 작(作)이라는 것은 결국 상량(商量)한 것을 구체적 문자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물컹거리고 말이라는 것이 미끈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구체성이 떨어지는 바, 홀로 머릿속에서만 살 것이 아닌 바, 언제나 언어화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작(作)이라는 행위로 실천(習)해 보는 것이다. 결국 독(讀)은 작(作)과 병행되어야 하고, 작(作)하기 위해 상량(商量)하게 되고, 때론 상량(商量)하기 위해 독(讀)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읽기만 읽을 게 아니라, 그것에 관해서 써보기도 해야 할 것이며, 쓰기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하여 읽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박재범, 민족주의, 언론

2009. 9. 09. 20:29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떡밥 제공자? ㅡ;

오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연구주제에 관한 이야기. ‘민족주의와 언론’ 이야기 하다가 그 단어의 광범위함에 손발을 오글거리며─이건 흡사 ‘존재’를 사유하는 듯한─”박재범 쓰면 되겠네.”라고 말했다. 박재범 유승준 이현도 등등을 경우경우로 비교해서 그 담론이 확산되는 대에 언론이 어떤식으로 기여했는지를 살피면 뭔가 꺼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히 박재범의 경우 마이스페이스라는 SNS에 적은 기록이 문제되는 고로, SNS를 언론이 어떤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이런거 생각해보면, 기술의 발전─인터넷 환경─이 기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괜찮은 주제인듯.

유승준 이현도까지 갈 것도 없이 박재범만해도 다양한 층위에서 논할 수 있겠네.


2009. 9. 05. 22:15


경향닷컴 | “삼성 유럽서 물건 팔려면 노동조합 허용해야 할 것”

2009. 9. 05. 19:58

경향닷컴 | “삼성 유럽서 물건 팔려면 노동조합 허용해야 할 것”.

“삼성에 한마디 한다면 ISO의 사회책임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유럽의 소비자들은 삼성의 ‘무노조’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실태를 아는 순간 NGO 또는 언론이 유럽의 소매상들에게 삼성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소비자에겐 사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ISO26000 제정과 시행을 계기로 노동권 보호를 포함한 사회책임 전반에 대한 관심과 감시가 제고될 것이다. ‘무노조’는 문제가 될 것이다. 결국 삼성이 노동조합을 허용할 것으로 본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2009. 9. 04. 00:12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원래 꽤나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원곡 먼저 들어보시고

Sunny Side 인가 하는 그룹에서 리메이크를 했단다.

아무래도 숨을 뿜어내는 울림은 옛곡이 더….


philia

2009. 9. 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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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아니고 philia


존재의 불안을 바탕한 열렬한 사랑을…

2009. 9. 01. 23:22
존재의 불안을 바탕한 열렬한 사랑을 허무주의라 평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존재의 불안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회문제화 시키려는 시도가 있는것 같다. 당시 평론이 지금의 시대적 인식은 아닐까? 그렇다면, 허무에 대항해 사랑하지않음이 오히려 희망적 징후는 아닐까?

공부하다 보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2009. 9. 01. 19:16
공부하다 보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문제도 같이 다루게 되는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게 궁극적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책 읽고 생각하고 이 모든 행위가 자기충족적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공부가 기쁨이고 위안이구나. 아니 이게 차라리 일종의 종교구나. 아! 이게 내 종교구나.

경향닷컴 |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

2009. 8. 31. 15:18

경향닷컴 |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

-카이에 뒤 시네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해선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현실과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판타지 영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찬욱의 영화엔 내가 연관시킬 수 있는 현실이 없다. 아마 내가 체험할 수 있는 현실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홍상수의 영화를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에서 박찬욱의 영화는 홍상수보다 100배 많은 관객을 불러모은다.

“잘 알고 있다(웃음). 평론가와 대중의 괴리에 대해선 항상 고민한다. 하지만 평론가는 평균적인 영화 관객이 아니며, 광고인도 아니다. 평론가는 영화에서 느낀 감정을 지적인 사고로 바꾸고, 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혀냄으로써 관객의 한정된 시선을 넓힌다. 타인의 견해는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선거에 나설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