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30. 21:42
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역사철학관련 서적이다. 주안점을 두고 읽은 부분은 역사학의 방법론에 관한 논쟁들. 저자는 역사 연구자들을 방법론적 차원에서 실증론자와 관념론자로 나누고 그 둘 간의 대립으로 방법론에 대한 서술을 끌어 나간다. 실증론자들은 자연과학과 비슷하게 객관을 강조하고 역사에 있어서 일반법칙을 정립하고자 한다. 관념론자들은 인간의 과거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간행위의 외부(객관적 사실) 뿐만 아니라 내부(어떤 행위가 어떤 의미로 행해졌는가)에 대해서도 탐구해야 하며, 때문에 당시의 심성, 정신세계 또한 탐구대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방법론만을 이용하는 것은 그릇되다 비판한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모토는 이점에서 실증론자들만의 모토가 아닌데, 실증론자들은 일반법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관념론자들은 오히려 인간의 내부까지를 포함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규명하며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외부를 사유함에 있어서는 실증론자들의 방법론이 과거를 규명하는 한 단면이며, 인간의 내면에 있어서는 관념론자들의 방법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관념론자들의 과거의 심성이나 문화탐구에 있어서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역사철학에 있어서 프로이트에 대한 서술도 다루어진다. 실증론자들과 관념론자들의 차이는 그 방법론 뿐 아니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지의 여부에서도 갈라지겠는데, 실증론자들은 자연과학처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았고, 관념론자들의 경우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 "점 칠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경우 미래는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와 비슷하게 정신분석학에 있어서의 주요 개념들 또한 증명 불가능 하기 때문에 실증론자들과 대립하게 되는데, 이들의 논쟁 또한 정신분석학의 지지자들과 비판자들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결과론적 측면을 강조하는 회의론자들의 입장이 저자가 보기에 설득력을 갖는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 이 둘(역사학과 정신분석학)은 실천적 진리관에 정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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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30. 19:40
경성과학(hard science)과 연성과학(soft science)의 구분지점과 연성과학의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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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3. 01:50
귀농이 희망이라거나
귀농이 새로운 삶의 모습이라거나
귀농이 우아하고 고상한 의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그대의 삶이 여전한 풍경 속의 한 켠이거나
지상의 어느 풍경의 가혹한 비정미를 즐겨 누리는 것일지도요.
_ 소야골숲속학교, 여름지기….
귀농을 미화하는 이야기들이야 많이 있겠지만, 귀농은 어떤 대단한 것도 아니고,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종류의 성질도 아니고, 그저 삶의 양식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 중에는 그 의의를 찾고 밀어 붙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그런 허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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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1. 15:42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에 학생들 강하게 ‘반발’ – 프레시안.
진중권 임용 거부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이다. 중앙대 학생들은 그들의 수업권을 내세워서 진씨를 옹호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진중권이 수업 안해준다고 해서 대학 수업권의 침해라면 다른대학은 모두 수업권 침해인가? 그리고, 학생이 무조건 몰린다고 해서 좋은 수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결국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사태이다. 한예종이건, 초중고교 학생이건.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들을 권력자들이 선별하여 권력자들의 가치관을 가진 학생들이 태어나도록 만들고자 한다. 한예종 사태때, 진중권이 블로그를 옮겨가면서 까지 정권의 탄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했던 말들을 상기시켜 보자. 이 사건은 따로이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사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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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0. 19:50
존 루카스의 역사연구입문을 읽었다. 상당히 얇고 (20쪽 정도?)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말 그대로의 입문서이다. 책은 역사를 둘러싼 논쟁들을 툭툭 던지듯 말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입문서 니까. 툭툭 던져진 단어들을 캐물으면서 다른 책들을 참고하면 좋을듯. 이 20쪽에 달하는 얇은 책만 읽어도 역사 관련해서 삽소리 하는 일은 줄어들 듯. 무엇보다 아카데믹한 논문작성 방법 자체가 모두 역사학에서 연원한다는 사실. 그렇다면 모든 아카데믹한 글쓰기는 역사학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역사학 관련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서 랑케의 사관에 관해 항상 드는 생각은 랑케사관은 역사학이 과학에 대항하기 위해 했던 시도이고, 그래서 역사학 그 영역 자체의 그것이라기 보다 과학의 일부로 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보는 기준 자체가 과학의 그것이라는 생각도. "18세기에는 역사가 문학의 한 분야로, 19세기에는 역사가 과학의 한 분야로 보였지만, 20세기의 우리는 그러한 간명한 진술을 내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21세기에 19세기적 사고를 고집하는 인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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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0. 14:08
산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습하고 어두운 구름. 자연히 산에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자욱이 끼거나 하여 우두컴컴한 나날들이 계속된다. 산 아래는 쾌청하고 맑은 날도 있었으나, 산에 걸린 구름은 바람에 날리지도 않고 산과 하나인듯 계속 그대로다. 그곳은 어쨌든 사람들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세수를 하지도 않고 논 밭 가축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도시의 손님이 들작시면 세수와 면도를 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고장이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삶은 고해요 고통이라는 말을 쉬임없이 내뱉는 사내들과 도시의 소음이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가 큰 여편네들이 산다. 사소한 것들을 사소하게 다투는 그 소리는 도시의 굉음만큼 신경질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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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18. 20:21
폰으로 인터넷을 바로 접속하지 않는 한, 폰으로 웹에 입력하는 것은 sms나 mms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는듯. sms의 국내 한계성과 mms의 인코딩 문제나 기타등등의 이유들을 고려하면 결국 국내서비스를 한번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결론.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이글루스와 플톡. 지금 이 글은 먼저 mms를 통해 이글루로 전송되고 FeedWordpress라는 워드프레스 플러그인으로 이글루스의 rss가 수집 입력된다. 참 편리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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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18. 18:09
나는 내가 호남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 번도 나의 고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차별받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통을 나누는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일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의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_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투쟁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 어설픈 소비가 아닌 진정으로 투쟁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자초한다고 하여 쉬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러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 그 운명을 영광으로 인식하는 정신과 그것을 견뎌내고 저항하는 인간이 위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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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17.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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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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