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습하고 어두…

2009. 8. 20. 14:08

산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습하고 어두운 구름. 자연히 산에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자욱이 끼거나 하여 우두컴컴한 나날들이 계속된다. 산 아래는 쾌청하고 맑은 날도 있었으나, 산에 걸린 구름은 바람에 날리지도 않고 산과 하나인듯 계속 그대로다. 그곳은 어쨌든 사람들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세수를 하지도 않고 논 밭 가축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도시의 손님이 들작시면 세수와 면도를 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고장이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삶은 고해요 고통이라는 말을 쉬임없이 내뱉는 사내들과 도시의 소음이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가 큰 여편네들이 산다. 사소한 것들을 사소하게 다투는 그 소리는 도시의 굉음만큼 신경질 적이다.


폰으로 인터넷을 바

2009. 8. 18. 20:21

폰으로 인터넷을 바로 접속하지 않는 한, 폰으로 웹에 입력하는 것은 sms나 mms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는듯. sms의 국내 한계성과 mms의 인코딩 문제나 기타등등의 이유들을 고려하면 결국 국내서비스를 한번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결론.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이글루스와 플톡. 지금 이 글은 먼저 mms를 통해 이글루로 전송되고 FeedWordpress라는 워드프레스 플러그인으로 이글루스의 rss가 수집 입력된다. 참 편리한 세상.


투쟁할 수 있는 자리

2009. 8. 18. 18:09

나는 내가 호남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 번도 나의 고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차별받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통을 나누는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일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의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_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투쟁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 어설픈 소비가 아닌 진정으로 투쟁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자초한다고 하여 쉬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러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 그 운명을 영광으로 인식하는 정신과 그것을 견뎌내고 저항하는 인간이 위대한 것.


6륜 크레이지

2009. 8. 17. 01:32

아놔 6륜도 엽기인데, 그걸로 크레이지라니 ㅡㅡ;;


다운힐

2009. 8. 15. 22:50

5륜이라 레이싱용인줄 알았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롤블 트위스터에 5륜달거나, 살로몬 FSK에 5륜 달거나 한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레이싱용으로 어떻게 패러렐 스탑을…. 속도와 스릴에 슬라이딩까지, 다운힐은 굉장히 매력 있는 분야. 아, 내 인라인 스트렙 터졌는데…. 달리고 싶다.


기억보다 지우기 쉬

2009. 8. 15. 11:53

기억보다 지우기 쉬운것이 기록이겠지만, 흐려지는 기억을 다시 다잡는 것도 기록이다. 집청소를 하다가 구석에 처박힌 먼지앉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처럼, 구석 어딘가에 처박힌 폴더의 사진을 발견한다. 몰래몰래 흐릿하게 촛점없이 날림으로 찍은 사진들. 잊은 기억인건지 잊어야할 기억인건지, 잠시잠깐 괴롭다. 기록은 어떻게든 기억에 촛점을 만든다. 기억과 이야기들 보다 기록과 문자가 승리했던 이유는 기록과 문자가 의식을 모아주기 때문이리라. 기록이 의식을 모으고 다시 일어난 기억은 그 안의 인간을 보게 한다. 인간을 바라본다는 것은 괴롭고 우울한 일이다. 타인의 삶을 그저 바라보는 그것 만으로도  버겁다. 하지만 그 버거움은 결국 내 의식의 내 이해인 한에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라기 보다, 나에게서 흘러 나오는 버거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생명인 한에야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버거울 것이다. 나는 차라리 사물이고 싶다. 솔직히 말해 나는 더이상 의식있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있는 의식마저 버리고 싶다. 나는 차라리 사물이고 싶다.


국내 웹서비스는 전

2009. 8. 13. 23:24

국내 웹서비스는 전체성을 갖고 그에 잇따른 폐쇄성. 외국 서비스는 개별성을 갖고 그에 잇따른 개방성 전문성. 미투하는 사람은 미투만 하고, 싸이하는 사람은 싸이만 하고…. 전체성은 편리하지만 개별 전문적 서비스를 선택할 기회를 박탈하고, 그 박탈이야 말로 서비스 제공자들의 고객 붙들어놓기 전략.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어떤 서비스를 선택하는지는 사람의 관점을 반영하는듯.


2009. 8. 12. 19:53

50대랑 20대는 같이 살고, 386은 10대랑 살지.


2009. 8. 11. 03:01

쓴물 올라온다. 조만간에 위장에 또 탈 한번 날듯. 생활이 바뀌어서 그런지 육체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오늘은 한겨레의 표지이야기를 읽었다. 88만원 세대의 사랑에 관해서 많이 다루는 듯.[1, 2, 3, 4]

뭐, 여러 생각이 많이 들긴 했는데, 88만원 세대라고 일컬어 지는 집체—아마도 대다수라고 여겨지고 대다수이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지는—의 다수성에서 오는 ‘평범’과 그들이 추구하는 ‘평범’의 간극은 무엇일까? 그들이 추구하는 그 ‘평범’의 상은 그들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IMF 당시의 줄도산 그리고 잇따른 이혼률 급증. 사랑은 경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삶으로 체감.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낭만성의 파괴. 그 이후, 결국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에게 철저하게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결단. 그 이기적 결단 때문에 자신의 스펙 쌓기, 경제적 소비가 두려워 사랑을 못해. 사랑을 위해 이기적 인간이 되었지만, 결국 이기적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는 모순. 그들이 추구하는 ‘평범’은 영원히 사랑하자며 알콩달콩 사는 구세대적 인간들의 상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러한 인간들이 되어먹질 못하잖아. 떡을 치면서도 모텔비가 걱정이 되고, 모텔비 많이 써서 돈 없으면 사랑이 떠나갈까 전전긍긍. 얽혀진 정신속의 딜레마.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경험이나 정신적 측면에서 더 많이 주목되어야 할 현상이라는 생각이….

뭐 쓸데 없는 이야기네. 분류는 확실하게 잡설.


2009. 8. 09.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