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toc이가 글 썼던데, 내가 인지하고 있는 사태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사실 뭐 서로 이야기를 워낙 많이 해서;;──다만, 신앙공동체마저 움찔움찔하게 한 동기가, 탈정치에의 욕망이라는 통찰이 새롭고(이번 사태에 한해서, 사실 탈정치 이야기야 예전부터 반복되던 레퍼토리이기도 하지만.) 또 설득력 있다. 어쩌면, 사태가 탄핵부결로 결국 이렇게 대충 종결되고도, 분열의 영이니 화합이니 하는 어쩔 수 없는 고 도돌이표 뮤직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결국 이 사태의 승리가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게 ‘탈정치에의 욕망’과 사회를 ‘분열’시킨 총학생회장의 의견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식의 너무나도 표피적이고 가벼운 정서를 바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수준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정서의 부분적 승리라면, 결코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않았다.
i3과 tictoc이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퍼온곳 주소: http://willdiary.textcube.com/171
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을까.
김미영교수도 사임하고, 총학은 사과문을 쓰고, 탄핵안은 결국 부결되었다. 문득 한번 지난 날을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수장께서 문제의 성명을 올린 그날부터 지금까지 횡수에는 매일같이 반박글이 올라왔고(간혹 찬성글도), 외부 포털에서는 이 성명서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짓밟혔다.(어떤곳에서는 극찬을 받고) 총학은 모두의 표적이 되었다.(옹호하는 사람도 다수였지) 졸업생들이 와서 ‘졸업생입니다.’라고 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새내기들도 ‘새내기입니다.’라고 각자 자기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려졌고, 평의회, 전학대회를 거쳐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급기야는 조사위원회까지 조직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화를 냈었던 것인가.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총학의 성명에 내가 화를 냈었던 타당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절차적 문제로 화를 냈던 것은 아니었다. 개인성명을 공식성명을 올릴때나 사용할 수 있는 루트로 올린 것이나, 집행부 회의를 거치지 않고 회장 단독으로 집행했던 것은 나중에 부차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이었을 뿐 그것은 핵심이 아니었다. 대의제를 채택한 학생회에서 여론에 맞지 않는 성명을 올린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 역시 화를 냈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지 찬반은 존재한다. 여수국장의 항변처럼. 여수국장이 그 ‘반대’를 보여주기 위해 그짓을 한 것 아니었는가. 단지 그 비율이 문제일뿐.
이게 어제 오늘 일이었나.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Jesus Army라는 단체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총학생회가 그쪽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수장님의 신앙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배후에 계신 김미영교수의 부적절한 발언이 그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들의 신앙이 문제였나? 아니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물론 그렇지 않은 수업도 많다. 하지만 그런 수업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신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했던 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말? 한번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2년전.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되었을때 총학(당시총학은 뉴발.)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공지를 올렸다. 그 공지의 마지막 문단이다.
총학생회가 동성애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로 명하신 동성애를 법적으로 사실상 허용함으로써 오게 될 파급효과에 대한 민감성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법안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동대학교는 개교 시 하나님의 대학임을 감히 선포하였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성경 속의 가치를 따를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안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오직 성령과 성경말씀(Holy Spirit and the truth)이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상정하고 차순위로서 각자의 이념과 가치를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사상적 신념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혹여나 그것이 성경과 상충되는 것이라면 버려야 할 것입니다.제 12대 총학생회는 세상의 눈으로는 가장 모호하고 어리석은,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가장 정확하고 참된 진리인 ‘성령과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끝까지 붙들고 갈 것입니다. 수많은 교내적, 사회적 현안에 있어 하나님의 진리에 반하는 일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맞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학교의 총학생회가 가져야 할 유일한 신념이어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차별금지 법안에 대한 반대는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그 자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할 것을 다짐하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2007-10-23 New Balance
그때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던 이유와 지금 이들이 추모소 설치를 반대했던 이유가 완벽하게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솔직히 N.B는 글이라도 잘 썼지 Y.F 이것들은 김미영한테 Writing 시간에 대체 뭘 들은거냐, 이자식들이야말로 학교수업을 빙다리 핫바지로 보는 족속들 아닌가?) 당시에도 총학생회는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하였으나 차별금지법안이 입법되는 것은 반대했다. 이번 총학도 추모인지 애도인지 슬퍼는 한다고 했지만 추모소 설치는 반대했다. 성령과 하나님 말씀을 기준이라고 내세운 것과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것은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식 그 이상.
그러던 중, 대파장의 원인을 찾는 실마리를 하나 발견했다. 뉴스엔조이에 정말 재미있는 기사가 떴다. 그 중 학생처 이경태 과장의 인터뷰를 보자.
한동대학교 학생처 이경태 과장은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학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내부 성명서가 외부로 유출되어 여러 단체에서 이용해 파장이 커졌다. 문제가 커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진상조사위가 조속히 해결하려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이 본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단지 이 일이 크게 된 이유는 외부로 유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김미영교수가 갑제닷컴에 기사송고만 안했어도 일이 이 정도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부에 이 공지가 대서특필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다시 그것이 이곳에서 구설수에 오르던 것이 아니었는가. 물론 나는 김미영교수가 성명을 외부로 송고한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다. 성명서에 "대외비"라는 딱지가 붙어있던 것도 아닐 뿐더러, 한동대학교 총학생회의 권한으로 공지할 수 있는 곳에 공개적으로 올려진 성명인데, 이것이 왜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되는가. 김미영교수가 자신의 서울대 학부시절 경험을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총학생회는 자신들이 발표한 성명을 ‘보도자료’로 여기저기 뿌리고 기자들이 그것을 기사화시켜주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동대 총학생회는 자신들의 소신있는 공식 입장을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갑제닷컴의 도움 없이는 어떤 기자도 보도자료 따위는 관심도 없는 일개 듣보잡 지방대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통탄해야 할 입장이 아닌가.
저 높이 나는 백조처럼 순수하게?
논란의 원인이 어찌 되었건 논란이 일어났을때 이를 수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소위 "우리 가운데 분열의 영을…"이라는 주문이었다. 무엇인가 들썩거리는 일만 생겼다 하면 끝판대장처럼 등장해서는 항상 "분열의~" 라는 주문을 외우고는 그 대결양상의 존립기반 자체를 무너뜨려 왔던 것이다. 이런 구도는 마치 북유럽 신화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그나로크과 비슷하다. 라그나로크는 그 자체로 선과 악은 아니다. 선과 악을 초월하는 신들이 기존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질서를 다시 세우는 지극히 아름다운(-_-;) 작업으로, 한동대에서는 "분열의~"라는 아름답고 듣기 좋은 주문으로 북유럽 신화에서만 존재하는 라그나로크가 현실이 된다. (WOW에서는 이런 존재를 티탄이라고 하더이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논의는 누가 옳고 그르다의 결론보다, 이런 식의 결론으로 모든 논의가 끝마쳐졌음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분란을 일으키는 자나 분란을 막으려난 자나 이 주문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어왔지 않던가.
그런데 "분열의~"라는 주문을 외우는 자들이, 그리고 이 종교의 추종자들이 지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몇년 전부터 고민했었는데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동대 다니는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있는 로고송에 그 답이 있다.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 모였"는데 "여기는 한동대학교"}를 지키는 것이 "분열의~"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하나님의 도가 대체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이곳에서 하나님의 도가 구현되기 위한 기본 원칙 하나는 알고 있다. 하나, 정치적인 문제로부터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아니나 다를까 한동대 어떤 곳에서도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되어 있다. 한술 더 떠서 신앙공동체가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것은 절대!금기다. 이 동네에서 하나님의 도는 가난한 자를 돕는 하나님일 뿐.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한동공동체를 지켜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지상의 정치적인 문제로 피터지게 싸우는 정글에서 사느니, 차라리 저 높이 사는 백조처럼 순수하게, 저 싸우는 자들을 보면서 비웃어주는 원칙 말이다.
공동체의 생존방식, 도마뱀 꼬리 떼어놓기.
내가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방식, 백조처럼 순수하게 높이 나는 것이 이곳의 최적 생존방식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종교성으로 자신들의 정치성을 포장하지 못한 자를 가차없이 처단하며, (물론 처단이라고 ‘처형’이런 식의 것만은 아니다. 일종의 철저한 외면, 무관심 등도 이런 처단에 해당한다.) 둥굴둥굴 착하게 튀지 않고 사는 것이 한동대 역사 15년에 걸쳐 얻어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학은 그걸 못해서 그들의 강력한 후원자인 김미영교수를 잃어버리고 탄핵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 아닌가.(그렇기 때문에 나는 김미영교수야말로 도마뱀 꼬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끝판대장은 무슨… 우린 끝판대장을 구경도 못했다.)
이런 최적 생존방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냐면, 비기독교인들 마저도 이러한 탈정치의 흐름 속에서 원치않는 CCM만 조금 들어주는 불편함을 감수하면, 다른 학교처럼 불편한 이야기 듣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이 가능하기에 이런 생존 방식은 고수될 수 있다. 또한, 적어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유토피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람들의 기대를 현실에서 구현함으로, 그 경이로움 때문에 엄청난 기부금이 가능하지 않았던가.(비록 그 유토피아가 위선이라도 말이다.) 이유야 만들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이것이 최적 생존 방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쯤되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하나님의 도"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여기는 한동대학교"를 지키기 위한 생존방식인가.
불행하게도 나는 더이상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이 생존방식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 답은 알아서 찾기 바란다. 힌트 하나를 주자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혹자는 이번 일로 무엇인가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나마 성과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