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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고언에 관해

수요일, 6월 17th, 2009

http://i3.handong.edu/board2/craboard.asp?id=anybbs&no=33192

jollyman님이 마무리 글을 올려주셨다. 거의 모든 논점을 정리해 놓았다. 아무래도, 밤새 쓰시고 새벽에 올리신 듯한데 ㅡ;; 이 정도 까지 해주시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구체적 결론에 있어서는 특별히 태클 걸 것도 없다. 다만, 이것이 이전의 글과 연속성이 있는지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낮아지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분열의 영’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부터 피상적 단어인 ‘분열의 영’을 가지고 이야기 했으면서, 그것의 피상성, 관념성, 자의성을 비판한 이들에게 피상적 인식 혹은 저열한 인식이라는 공격을 하시는 것은 약간 억울하다. 그래도 어떤가. 이정도 정리해 주시면 정말 대단한 노고지.

tictoc의 글이나 내가 지향했던 결론지점들도 사실은 이 내용들과 만나는 지점이 많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 했던 것들도 많고, 사실 내가 보기에 새로운 내용은 없다. 내가 해당 교수만 퇴임시키거나 총학생회장단만을 탄핵했을 때,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책임만 일부 사람들에게 돌리고 표면적으로만 해결되는 것을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 도마뱀 꼬리 자르기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잔여하는 지지세력으로 지칭되어 비판되어 지고 있는데, 이 같은 부분은 그저 그들을 리더쉽의 자리에서 책임지우고 해임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부분은 아니다. 물론 그것 또한 병행되어야 하겠지만, 그들은 학생리더쉽에서 내려온다고 해도, 신앙활동을 빙자하여 해당 교수를 다시 초빙할 수도 있고,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실례가 최모 선교사이자 교수이자 총장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지. 나는 그보다 근본적인 부분이 교육문제라고 본다. 지지세력이 하늘에서 새로이 툭 하고 떨어지지 않은 이상, 특정 교수의 가르침이 이처럼 지지를 받게 된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건 이미 조성되어 있는 이상한 신앙교육 때문인 것이고 사실 기존의 신앙교육이 특정 교수의 그것과 달랐는지에 대해 물으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jollyman의 글을 보면, 학교 초창기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지난 몇 년간의 특별한 세력의 유입으로 인해 이같은 사건들이 발발하게 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 같은 인식은 의아한 점이 많다. ‘내 사랑 한동’이나, ‘한동의 정체성에 대하여’같은 글들을 통해서 지적되는 신앙관의 문제는 지금의 그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한동의 과거에 대한 미화는 학교 지배층이 주로 사용하는 허구적 내러티브의 방법이다. 이번 신입생들을 느헤미아 세대라 칭하고 무너진 곳을 보수하라고 그러는데, 성경의 부분에 자신을 대치시켜 그 이전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시켜버린다. 이건 일종의 역사관에 대한 선점이자 세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허구적 내러티브의 일종이 ‘분열의 영’이기도 했다. 이건 한국 기독교가 자주 사용하는 내러티브가 차용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은데, ‘분열의 영’이라는 단어만 던지면, 그 언어가 의미하는 프레임 속에 인간들은 지배된다. 그 집단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하나 되어야 한다는 당위 아래에서, 상대방에게 ‘분열의 영’에 대한 낙인과 ‘낮아지는 진리’, ‘섬김의 자세’를 요구했던 것은 별반 그리 다르지 않다. 그 말의 내용이 ‘낮아지는 진리’라고 해서 다른 점이 뭐가 있나? ‘낮아지는 진리’라는 말은 말해지는 진리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발화되고 상대방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순이다.

jollyman이 말한 포섭적 배재와 배재적 포섭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내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가고, 다만 내재적 관점에서의 비판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재적 관점에서의 비판방법은 대상이 되는 그 관점의 자의성과 허구성을 폭로하고 논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그 관점을 취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jollyman은 토론의 평행선을 이야기 하며 내재적 관점에 있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대강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대방과 똑같은 프레임으로 사고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미 사회에 그런 프레임이 조성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같은 언어를 이용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기존의 언어는 껍데기일 뿐이고 정말로 실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것에 딱 맞는 실체적 언어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분열의 영’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반발하는 이유 중에 또 한가지는, 그것이 바뀌어야 할 대상을 축소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분열의 영’이라는 표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아니하는 학교 리더쉽이나, 교목실의 신앙교육은 비교적 그 초점에서 벗어난다. 지금 조사위가 학생징계를 운운하는 그것도 조사위가 사실은 그 ‘세력’이라고 불리는 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분열의 영’은 없다. 아니, 지금 현 사태에 대해서는 학교 전체가 ‘분열의 영’이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적 결론에 있어서는 모두 동의한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실천적 결론들이 가능하겠지만 사실 이정도 수준도 학우들은 못해내니까. 뭐, 주저리 주저리가 많네. 이런저런 사태인식들을 단박에 정리해 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과잉된 문제인식으로 쪽글로나 싸우고 있다. 이제 정말로 더 이상 이런 문제로 싸울 일 없을 것이다. 학기가 끝난다.


[펌]대체 뭐 때문에….

일요일, 6월 14th, 2009

tictoc이가 글 썼던데, 내가 인지하고 있는 사태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사실 뭐 서로 이야기를 워낙 많이 해서;;──다만, 신앙공동체마저 움찔움찔하게 한 동기가, 탈정치에의 욕망이라는 통찰이 새롭고(이번 사태에 한해서, 사실 탈정치 이야기야 예전부터 반복되던 레퍼토리이기도 하지만.) 또 설득력 있다. 어쩌면, 사태가 탄핵부결로 결국 이렇게 대충 종결되고도, 분열의 영이니 화합이니 하는 어쩔 수 없는 고 도돌이표 뮤직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결국 이 사태의 승리가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게 ‘탈정치에의 욕망’과 사회를 ‘분열’시킨 총학생회장의 의견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식의 너무나도 표피적이고 가벼운 정서를 바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수준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정서의 부분적 승리라면, 결코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않았다.

i3과 tictoc이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퍼온곳 주소: http://willdiary.textcube.com/171


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을까.

  김미영교수도 사임하고, 총학은 사과문을 쓰고, 탄핵안은 결국 부결되었다. 문득 한번 지난 날을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수장께서 문제의 성명을 올린 그날부터 지금까지 횡수에는 매일같이 반박글이 올라왔고(간혹 찬성글도), 외부 포털에서는 이 성명서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짓밟혔다.(어떤곳에서는 극찬을 받고) 총학은 모두의 표적이 되었다.(옹호하는 사람도 다수였지) 졸업생들이 와서 ‘졸업생입니다.’라고 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새내기들도 ‘새내기입니다.’라고 각자 자기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려졌고, 평의회, 전학대회를 거쳐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급기야는 조사위원회까지 조직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화를 냈었던 것인가.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총학의 성명에 내가 화를 냈었던 타당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절차적 문제로 화를 냈던 것은 아니었다. 개인성명을 공식성명을 올릴때나 사용할 수 있는 루트로 올린 것이나, 집행부 회의를 거치지 않고 회장 단독으로 집행했던 것은 나중에 부차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이었을 뿐 그것은 핵심이 아니었다. 대의제를 채택한 학생회에서 여론에 맞지 않는 성명을 올린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 역시 화를 냈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지 찬반은 존재한다. 여수국장의 항변처럼. 여수국장이 그 ‘반대’를 보여주기 위해 그짓을 한 것 아니었는가. 단지 그 비율이 문제일뿐.

이게 어제 오늘 일이었나.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Jesus Army라는 단체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총학생회가 그쪽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수장님의 신앙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배후에 계신 김미영교수의 부적절한 발언이 그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들의 신앙이 문제였나? 아니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물론 그렇지 않은 수업도 많다. 하지만 그런 수업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신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했던 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말? 한번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2년전.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되었을때 총학(당시총학은 뉴발.)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공지를 올렸다. 그 공지의 마지막 문단이다.

  총학생회가 동성애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로 명하신 동성애를 법적으로 사실상 허용함으로써 오게 될 파급효과에 대한 민감성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법안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동대학교는 개교 시 하나님의 대학임을 감히 선포하였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성경 속의 가치를 따를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안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오직 성령과 성경말씀(Holy Spirit and the truth)이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상정하고 차순위로서 각자의 이념과 가치를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사상적 신념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혹여나 그것이 성경과 상충되는 것이라면 버려야 할 것입니다.제 12대 총학생회는 세상의 눈으로는 가장 모호하고 어리석은,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가장 정확하고 참된 진리인 ‘성령과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끝까지 붙들고 갈 것입니다. 수많은 교내적, 사회적 현안에 있어 하나님의 진리에 반하는 일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맞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학교의 총학생회가 가져야 할 유일한 신념이어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차별금지 법안에 대한 반대는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그 자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할 것을 다짐하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2007-10-23 New Balance

  그때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던 이유와 지금 이들이 추모소 설치를 반대했던 이유가 완벽하게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솔직히 N.B는 글이라도 잘 썼지 Y.F 이것들은 김미영한테 Writing 시간에 대체 뭘 들은거냐, 이자식들이야말로 학교수업을 빙다리 핫바지로 보는 족속들 아닌가?) 당시에도 총학생회는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하였으나 차별금지법안이 입법되는 것은 반대했다. 이번 총학도 추모인지 애도인지 슬퍼는 한다고 했지만 추모소 설치는 반대했다. 성령과 하나님 말씀을 기준이라고 내세운 것과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것은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식 그 이상.

  그러던 중, 대파장의 원인을 찾는 실마리를 하나 발견했다. 뉴스엔조이에 정말 재미있는 기사가 떴다. 그 중 학생처 이경태 과장의 인터뷰를 보자.

  한동대학교 학생처 이경태 과장은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학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내부 성명서가 외부로 유출되어 여러 단체에서 이용해 파장이 커졌다. 문제가 커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진상조사위가 조속히 해결하려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이 본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단지 이 일이 크게 된 이유는 외부로 유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김미영교수가 갑제닷컴에 기사송고만 안했어도 일이 이 정도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부에 이 공지가 대서특필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다시 그것이 이곳에서 구설수에 오르던 것이 아니었는가. 물론 나는 김미영교수가 성명을 외부로 송고한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다. 성명서에 "대외비"라는 딱지가 붙어있던 것도 아닐 뿐더러, 한동대학교 총학생회의 권한으로 공지할 수 있는 곳에 공개적으로 올려진 성명인데, 이것이 왜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되는가. 김미영교수가 자신의 서울대 학부시절 경험을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총학생회는 자신들이 발표한 성명을 ‘보도자료’로 여기저기 뿌리고 기자들이 그것을 기사화시켜주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동대 총학생회는 자신들의 소신있는 공식 입장을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갑제닷컴의 도움 없이는 어떤 기자도 보도자료 따위는 관심도 없는 일개 듣보잡 지방대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통탄해야 할 입장이 아닌가.

저 높이 나는 백조처럼 순수하게?

  논란의 원인이 어찌 되었건 논란이 일어났을때 이를 수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소위 "우리 가운데 분열의 영을…"이라는 주문이었다. 무엇인가 들썩거리는 일만 생겼다 하면 끝판대장처럼 등장해서는 항상 "분열의~" 라는 주문을 외우고는 그 대결양상의 존립기반 자체를 무너뜨려 왔던 것이다. 이런 구도는 마치 북유럽 신화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그나로크과 비슷하다. 라그나로크는 그 자체로 선과 악은 아니다. 선과 악을 초월하는 신들이 기존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질서를 다시 세우는 지극히 아름다운(-_-;) 작업으로, 한동대에서는 "분열의~"라는 아름답고 듣기 좋은 주문으로 북유럽 신화에서만 존재하는 라그나로크가 현실이 된다. (WOW에서는 이런 존재를 티탄이라고 하더이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논의는 누가 옳고 그르다의 결론보다, 이런 식의 결론으로 모든 논의가 끝마쳐졌음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분란을 일으키는 자나 분란을 막으려난 자나 이 주문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어왔지 않던가.

그런데 "분열의~"라는 주문을 외우는 자들이, 그리고 이 종교의 추종자들이 지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몇년 전부터 고민했었는데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동대 다니는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있는 로고송에 그 답이 있다.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 모였"는데 "여기는 한동대학교"}를 지키는 것이 "분열의~"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하나님의 도가 대체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이곳에서 하나님의 도가 구현되기 위한 기본 원칙 하나는 알고 있다. 하나, 정치적인 문제로부터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아니나 다를까 한동대 어떤 곳에서도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되어 있다. 한술 더 떠서 신앙공동체가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것은 절대!금기다. 이 동네에서 하나님의 도는 가난한 자를 돕는 하나님일 뿐.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한동공동체를 지켜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지상의 정치적인 문제로 피터지게 싸우는 정글에서 사느니, 차라리 저 높이 사는 백조처럼 순수하게, 저 싸우는 자들을 보면서 비웃어주는 원칙 말이다.

공동체의 생존방식, 도마뱀 꼬리 떼어놓기.

  내가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방식, 백조처럼 순수하게 높이 나는 것이 이곳의 최적 생존방식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종교성으로 자신들의 정치성을 포장하지 못한 자를 가차없이 처단하며, (물론 처단이라고 ‘처형’이런 식의 것만은 아니다. 일종의 철저한 외면, 무관심 등도 이런 처단에 해당한다.) 둥굴둥굴 착하게 튀지 않고 사는 것이 한동대 역사 15년에 걸쳐 얻어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학은 그걸 못해서 그들의 강력한 후원자인 김미영교수를 잃어버리고 탄핵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 아닌가.(그렇기 때문에 나는 김미영교수야말로 도마뱀 꼬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끝판대장은 무슨… 우린 끝판대장을 구경도 못했다.)

  이런 최적 생존방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냐면, 비기독교인들 마저도 이러한 탈정치의 흐름 속에서 원치않는 CCM만 조금 들어주는 불편함을 감수하면, 다른 학교처럼 불편한 이야기 듣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이 가능하기에 이런 생존 방식은 고수될 수 있다. 또한, 적어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유토피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람들의 기대를 현실에서 구현함으로, 그 경이로움 때문에 엄청난 기부금이 가능하지 않았던가.(비록 그 유토피아가 위선이라도 말이다.) 이유야 만들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이것이 최적 생존 방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쯤되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하나님의 도"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여기는 한동대학교"를 지키기 위한 생존방식인가.

  불행하게도 나는 더이상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이 생존방식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 답은 알아서 찾기 바란다. 힌트 하나를 주자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혹자는 이번 일로 무엇인가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나마 성과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이다.


저는 ‘외식’이라고 봅니다.

토요일, 6월 6th, 2009

방금 뉴스엔조이 기사를 보았습니다.1) 다른 것들 보다, 교무처 과장의 말이 눈에 들어오네요. 이 사태에 대해서 덤덤하고 솔직하게 우리의 시각(뭐 학교 직원들의 시각이라고 해도 괜찮고 학교 당국의 시각이라고 해도 괜찮고)을 반영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한동대학교 교무처 권상석 과장은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학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내부 성명서가 외부로 유출되어 여러 단체에서 이용해 파장이 커졌다. 문제가 커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진상조사위가 조속히 해결하려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_ 뉴스엔조이

이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학우들이 궁금해 했던 것은 누가 외부로 퍼다 날랐는지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물론, 성명서 내용 그 자체에 대한 비판들도 있었지만, 누가 외부로 이 같은 성명서를 옮겼는지에 대한 의문은 학우들의 정서를 삽시간에 지배했으며, 전학대회와 공청회에까지 이어졌죠. 아직까지도 그 외부유출자에 분노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로 인해 이 같은 분노의 초점은 김미영 교수 일인에게로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성명서가 아주 특수한 경우였던 것일까?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바는 우리 한동대학교의 문화적 특성상 박총명 총학생회장의 성명서는 그리 특별한 성질의 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들은 은퇴함의 글2), leekaps의 글3), 어떤이의꿈의 글4) 그리고 저도 이미 두 개의 글을 쓴 바 있는데, 그러고 보니 저도 참 집요하네요. 생각해보니 계속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한번 질문을 던져 봅시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학내에서 이렇게 크게 논의가 되었을까요? 권상석 과장이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 하는 것이, 저는 너무나도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보입니다. 만약에 자살에 대한 언급 없이,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언급 없이, 외부에 이용될 여지가 없이 그저 하나님의 대학이니 ‘기도회’라는 형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면, 학우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학우들의 비정상적인 외부시각에의 의식은 우리가 얼마나 ‘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몇 졸업생 분들도 활동하고 계시는데, 그 행동의 동기가 되는 정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한동인’이라는 정서에 대한 공유이고 그것이 그저 외부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것에 대한 반동 아닌가요? 혹자는 이걸 은어에 비유하던데, 솔직히 제가 볼 때 졸업생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을 지배하는 정서가 이거 하나밖에 없거든요. 박총명씨의 순수한 열정과 그 성질이 정말로 그렇게 다를까요? 그래서 저는 졸업생들의 개입을 해롭게 보고 있습니다.

학우 여러분들도 어떻게 외부에 빠져나갔는지, 김미영 교수에게 어떻게 조종당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그를 타깃으로 할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비판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을 때, 한 사람에 의해 얼마나 농락당할 수 있는지 스스로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조정자와 피조종자는 그 어느 한쪽만 탓할 수 없는 겁니다. 교수님 말씀이라면, 그리고 그저 신앙적 이야기라면 껌뻑 죽는 학우들의 무비판적 시각에 대해서 반성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 같은 문화는 그저 편향된 신앙교육 뿐만이 아니라, 겉보기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태도가 심화시켰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겉보기에 집착하는 우리의 태도는 지금까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보였던 태도이기도 하지요.

김미영 교수의 발언에 집중하는 것은 ‘낚이는’ 짓인 것 같습니다. 저는 김미영 교수의 횡수질이 마치 황우석의 언론플레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황우석 사태 기억하십니까? 황우석은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과학적으로 자신의 실험을 증명하려하지 아니하고, 기자회견을 열고 병원에 들어가는 등의 언론플레이를 감행했죠. 지금 김미영 교수가 횡수 유저분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은 일종의 언론플레이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젠 어이없게도 대변인까지 등장했네요. 지금 김미영 교수가 싹싹 빌고 사태를 해명해야 할 대상은 교원징계위원회 일 것입니다. 학우들에게 자신이 징계먹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이지요. 교수인 자기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항을 왜 학우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말을 붙이는 걸까요? 김미영 교수는 학우들이 자신에 대한 구명운동이라도 벌여주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제가 봤을 때 김미영 교수는 대화의 상대는 못됩니다. 학우 여러분들은 말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내부 성찰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글이 조금 산만하긴 한데요. 학우 여러분들은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져서 문제다.”가 아니라, “정말 우리의 문제다.”라고 인식하실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시선은 잠시 신경을 끊으신 체, 정말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혁을 위해 노력해야겠죠. 그건 우선적으로 학생정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어지럽혀져 있는 학생정치상황의 재정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교수사회에 어떤 개선을 요구하고 우리의 문화적 자정작용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1) 뉴스엔조이, 「한동대 총학 성명서, 조선일보 출신 교수 ‘개입’」, 2009년 06월 05일 (금) 23:41:16,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63>

2) 은퇴함, 한동대학교 i3, 횡설수설, 학교관련, 32059, 「솔직히 억울하지는 않다..」, 2009-06-01, <http://i3.handong.edu/board2/craboard.asp?id=anybbs&no=32059>

3) leekaps, 한동대학교 i3, 횡설수설, 학교관련, 32136, 「박총명 하나 어떻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09-06-02, <http://i3.handong.edu/board2/craboard.asp?id=anybbs&no=32136>

4) 어떤이의꿈, 한동대학교 i3, 횡설수설, 학교관련, 31693, 「이번 문제에 대해」, 2009-05-30, <http://i3.handong.edu/board2/craboard.asp?id=anybbs&no=31693>


대의와 여론

월요일, 6월 1st, 2009

또다시 방향조절용 뻘글


□ 아 정말, 글을 안 쓰고 싶은데 쓰게 만드네요. 짧게 요약하자면, 실질적 대의형성과 무관한 공청회에 힘을 쏟으시기 보다는 대의 형성에 실질적인 전학대회나 탄핵안 발의에 에너지를 쏟으시라는 부탁 같은 겁니다.

대의와 여론의 개념

대의와 여론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의라는 것은 그냥 간단히 말해서 대신하는 의견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 대의라는 것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 실질적 효력을 가지고 있고 대표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여론이라는 것은 공중에 의해 지지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긴 하지만, 실질적 효력이나 대표성이 없습니다. 대의와 여론이 일치하는 것이 물론 이상적인 정치상태 입니다만, 결국 힘을 가지는 것은 대의라는 것을 무시하기 힘들지요. 이명박이 싫다고 국민 100%가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법에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는 한, 이명박이 그대로 대통령인 것처럼, 대의제는 결국에는 대의가 가지는 힘이 더 큽니다.

물론 총학생회장의 성명서 발표가 ‘여론’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봤을 때, 총학생회장은 그저 대의를 행사한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 내용적 측면에서 총학생회장 ‘개인’의 의견을 ‘총학생회장’이라는 이름 타이틀을 걸어 표방한 것이 그 권한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그건 한 발짝 더 나아간 이야기이지요. 그저 형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총학생회장이 성명서를 발표하는 그것 자체는 인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 성명서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조금 더 세심한 논의이지요.

진짜 여론이긴 하냐?

그런데 저는 사실 한동의 ‘여론’과 ‘대의’가 불일치하는 상황인지도 좀 의아하네요. 물론 지금 횡수가 발칵 뒤집혀져 있기는 합니다만, 그게 정말 ‘여론’인지는 실증하기 어려운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제가 학교 다니면서 봐왔던 한동은 박총명 총학생회장의 성명서와 다를 바가 없었거든요. 05년도 채플 선지자 발언, 06년도 잔치회장 사태, 07년도에 있었던 차별법안 관련 성명서들, 작년에 있었던 도서관 열람실 말씀선포 사건 등등을 되새겨 보자면, 사실 박총명 학우의 성명서와 비슷한 수위의 일들은 학내에서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충성스러운 댓글들을 보자면 학우들이 박총명씨의 의견에 융화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죠. (앞서 말한 사례들은 개개의 케이스가 다른 이야기들이라고요? 에이~ 글쎄요…)

정말로 여론이 그러하다면, 대의를 형성함으로써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좀 비관적인 이야기입니다만, 횡수에서 이야기하고, 대자보를 쓰고 비판 글을 열나게 날려보셔도, 대의에 실질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졸업생들이 아무리 성명을 날려도, 교수님들은 교수님들 대로 어떤 행동을 취하셔도, 님하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총장님이 오셔도, 한동대학교 총학생회라는 대의는 “분향소 설치에 반대하는” 고것 그대로 남아 있을 거란 말이죠.(한마디로, 똥딱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씀.)

평의회의 결정에 붙여

그런 측면에서 평의회의 공청회 개최는 실질적 대의 형성에 무관할뿐더러 오히려 해로운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공청회라는 것이 그 성질상 알권리 보장을 위한 행위지요. 그런데 지금 문제되는 사안이 학우들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아서 문제인게 아닙니다. 지금 사태는 ‘대의’와 ‘여론’의 불일치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학우 여러분들은 고조된 관심으로 공청회에 참석하시겠지만, 총학생회의 의견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칠 뿐입니다. 이건 낭비에요. 평의회는 대의 형성에 보다 집중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결국 전학대회를 가야 합니다. 평의회에서 대의 형성과 관련된 권한이 ‘정책제안권’입니다. 이미 발동한 바가 있지요. 그런데, 이를 총학생회장에 거절할 경우 전학대회로 안건상정을 할 수 있습니다.

공청회와 같은 공개된 형식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대의와 무관한 형태로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낭비입니다. 평의회 의장님께서는 ‘정책제안’을 총학생회측에 빨리 하시고, 총학생회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제가 봤을 때 이 ‘정책제안’은 이미 거부된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다음에 빨리 전학대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 같군요.

그 이후에 전학대회를 공청회처럼 대대적으로 학우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장소나 장치를 배려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조금 더 실질적이고 정치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박총명씨의 성명에 대한 어떤 의견을 붙이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만,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처럼 정치적인 판단과 절차는 박총명 개인에 대한 신앙적 판단이 되지 않아야 겠고, 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벌써부터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사실 박총명씨의 이번 행위에 대해서 제가 ‘용서’할지 여부를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것도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애초부터 저는 그의 신앙적 측면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저 ‘대의’와 ‘여론’이 일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학우 여러분들은 무엇에 분노하십니까?

금요일, 5월 29th, 2009

조갑제닷컴이나 보수 언론사에 우리학교 언론 타버렸다. 꼴통 총학생회장 덕분에, 민망스러워 링크는 따로 걸지 않겠다. 이 글을 읽어보시면 키워드는 쉽게 추려내실 수 있을 터이니. 학우들이 분노하길래 약간 방향조절용 찌질글. 인트라넷에 올린 글을 이곳에 옮겨둔다.


오늘도 분노할 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 분노가 일시적인 감정분출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총학생회의 성명 발표와 일련의 사태들이 별로 새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도 “우리학교는 기독교학교니까 당연한거다. 싫으면 니가 떠나라.”는 댓글도 보이고, “우리학교는 기독교 학교니까 분향소 설치에 반대하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댓글도 보입니다. 사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횡행하던 이야기들이 아니었나요. 저는 너무 많이 들어 그저 덤덤합니다.

대자보나 추모소 설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디서 튀어나온 ‘대자보를 붙이지 않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 이야기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지배층의 이념에만 걸맞은 전통인지 자각하지 못한채,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미화되어 가르쳐 지겠죠. 그렇게 미화된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총학생회 집행부가 일반 학우의 대자보를 무단 철거하는 것은──지난번에 도서관 사석화 방지를 위한 운동을 했던 학우가 적은 i3 글에서 봤습니다. 찾아보셔요──어찌 보면, 배우고 때로 실천하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죠.

사실 박총명 학우의 성명서나 그에 동조하는 학우들이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는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목사들이나 특정 정치집단을 쉽게 욕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우리 학교는 어디 그들과 달랐습니까? 한기총 성명서에서는 쉽게 우리 총장님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었고, 우리학교 교수님들의 신앙관이 그런 분들과 어디 많이 달랐습니까? 아니, 오히려 이승만과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교수님이 계시고 또 그 교수 밑에서 감명 받으며 자라난 후배들이 실제로 있지 않습니까. 박총명 학우의 성명서에 함께 이름을 올린 학우들 중 GEA나 GLS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단지 영어로 적혀있기 때문인 걸까요.

학우 여러분들이 박총명이라는 개인 하나에만 관심을 쏟고, 그에게만 비난하는 것에 열을 올릴 때,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박총명은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잠잠합니다만, 어딘가에서 기회를 노리며 박총명 학우와 같은 생각을 하는 학우들이 아마도 많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세뇌, 교육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세뇌. 저는 그 힘이 너무나도 무섭고 절망스럽습니다.

학우 여러분들은 이번 사건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감히 당부드립니다만, 이곳에서 감정분출만 하실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구체적인 방향으로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깝게는 학우여러분들의 대의를 행사할 수 있는 학부대표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멀게는 한동대학교 신앙교육에 대한 고민, 그리고 과연 저런 교수들이 학우들을 가르치는 것은 한동대학교에 이로운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등 등.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으며 해내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노무현의 장례식이 그저 푸닥거리로 끝나기를 바라는 그 누군가들 처럼, 우리의 이 같은 원성도 그저 감정분출로 끝나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요.


학교단상

일요일, 3월 29th, 2009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i3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예전보다 줄긴 했지만, 아직도 불필요한 접속이 많다. 학교는 여전하고, 또 새로운 논자들은 등장한다.

 

“대자보라도 붙여보고 그러던가.”

예전에 기독교대학 발전위원회에서 주최하여 학교 교수들이 순서대로 주제별 강연을 연 적이 있었다. 나는 그날 강연이 있는 줄도 몰랐고, 지나가다가 보니 우리 학부 교수가 마침 강연을 하고 있어 시간도 조금 여유롭고 하여 들어가게 되었다. 막바지에 들어가, 내용을 전부 듣지는 못했지만, 학우들의 질의응답 시간에 인상 깊은 대화가 있었다.

한 학우는 자신이 느끼는 학교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교수에게 깊은 좌절감을 토로했다. 당시에도 아마 학교의 비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논의되었었던 듯싶은데, 교수의 대꾸는 이것이었다. “대자보라도 붙여보고 그러던가.”

 

한 논자의 주장

최근에 새로이 보이는 한 논자는 [지금 한동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학교를 지극히 사랑하는 졸업생이 다시 우리학교에 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입니다.” 라는 대안제시를 했다.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문제인식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제시한 대안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논자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닌다 하더라도, 그것은 학생 차원에서의 대안이 되지 못하거나, 구체적으로 학우들이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말 밖에 안 된다. 이것은 희생을 요구하는 논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또,

그런데, 앞서 말한 이 논자는 또 다시 글을 쓴다. 제목은 [푸념]. 그 글을 보면서, 왜, 나는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는 것 없이 좌절하는 모습이, 학생들의 힘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에 의존하는 모습이. 마치 자구책을 세우기보다는 기부에만 의존하는 학교당국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 이른 좌절

물론 학생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안 제시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학교 대신에 학생이 자구책을 세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명 부당하다. 하지만, 정말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은 이것뿐인가?

좌절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해보았는지 물음을 던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와 학생들은 너무 닮아있다. 그들에게는 그들 대신 싸워주는 로봇이 필요하다. 그들의 좌절은 너무 이르다.


근현대사 수업 논란. 학우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 프레이리, [[페다고지]]

월요일, 12월 8th, 2008

* 이 리뷰는 한동대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와 한동대학교에 개설된 근현대사 강의를 맥락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강에 대한 평가

총학생회에서 주최한 한홍구 교수님의 열린강의실 강의를 마지막으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논란에 관련한 특강도 모두 마쳐 졌군요. 국제정치학회에서 초빙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님께서 하셨던 특강은, 철저하게 사료에 기반을 둔 실증적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의 강의는 ‘뉴라이트라는 세력등장의 정치적 맥락’과 ‘뉴라이트가 주로 주장하는 국가 정체성 규정에 대한 비판논리’에 대한 강의가 주요 주제였습니다. 한쪽에서 실증주의의 입장에서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를 비판했다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보다 정치적 해석으로 이를 비판해 내었습니다. 두 강의 내용이 서로를 보완하여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라는 주제에 대한 ‘완결성’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대안교과서 논쟁의 교육학적 측면

프레이리

▲ 교육학자 프레이리 ⓒyahak.or.kr

저는 역사라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성격 중에서 강조되는 ‘현재성’과 ‘주관성’ 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역사의 성격 중에서 또한 빠질 수 없는 ‘사실성’과 ‘객관성’ 만큼이나, 역사를 바라보는 현재의 인간들이 내리는 평가 또한 주요한 요소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평가’를 위한 ‘사실’을 정치권력이 은폐하려 하는가 하면, 또 교과서로 다양하게 표현될 다른 ‘평가’들을 정치권력이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현재 역사학계는 정치권을 향해 역사학의 편향성 문제는 학계가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있다지요?

저는 이번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논쟁이, 비단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도 보여주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교육을 국민세뇌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한국교육의 고질적 문제로 손꼽히고 있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의 역사의 문제와 교육의 문제

저는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와 비슷한 문제들이 한국의 교육기관인 한동대학교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대외적 선전에 대표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몇몇 역사적 사실들도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소수목소리를 우리는 더 이상 들어 볼 수가 없을 만큼 먼 이야기가 되었지요.

얼마 전에 이번에 당선된 총학생회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전교생 한스트가 잠깐 비판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전교생 한스트에 대한 비판 지점도 이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공동체성을 강화시킬 ‘전교생 한스트’라는 제도 자체는 어쩌면 좋은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의 간증이라고요? 누가 간증하는 어디의 역사?

페다고지

▲ 페다고지

하지만, 결국 이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 지점은 어느 ‘평가’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평가’들이 공존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교수님의 견해에 대한 질문자체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옹졸한 태도들? 질문을 이단시하는 태도들? 세속의 학문으로 치부해 버리는 폐쇄적 태도들? 자유롭게 생각해볼 여지조차 없는 그 무언가?

다양한 입장들의 공존을 위하여…

결국 이러한 다양한 공존을 위한 시작지점은 각자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여러 사건들을 판단하는 주체성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러한 주체성을 위한 시작지점이 자신의 사고를 조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책 한권을 추천해 보고자 합니다. 바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입니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문맹퇴치운동을 하면서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한 교육사상가입니다. ‘은행 주입식 교육’을 반대하고, ‘문제 제기식 교육’을 통해 교육자-피교육자 모두 인간화 되자고 주장합니다. 대화와 토론을 통한 교육을 주장하는데, 언뜻 보기에 건전해 보이는 주장을 담은 이 책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프레이리는 체제 전복 혐의로 국가에서 추방당하기 까지 했다네요.

저는 그만큼 프레이리의 교육론이 가지는 현실비판력이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또한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교육현실에 던지는 비판력 또한 강하다고 봅니다. 학우 여러분들도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으면서,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우리도 피교육자인 학생이니까 말입니다.


저는 투표 안 할건데요…

수요일, 11월 26th, 2008

이번 선거 볼 거 없었잖아요. 중선관위도, 후보도 단독후보라서 그냥 저냥 선거 대충 하겠다는 느낌만 들었던 건 저뿐인가요?

저는 투표할 때 공약 안 봐요. 다만 공약 속에서 드러나는 후보를 볼 뿐이죠. 정책선거를 지향한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에서의 가치이지, 가장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앞으로 닥쳐올 변화무쌍한 이벤트들에 후보가 어떻게 대처할지는, 그 후보가 어떤 가치관을 바탕하고 있는지가 영향을 끼친다고 봐요. 결국 중요한건 그 후보의 가치관과 관심사겠죠. 그 후보의 가치관과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공약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총학생회장 후보는 후보로써 사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 표명이 ‘유쾌한 동행’에 대한 결례라고 말하네요. 그럼 모든 ‘구체적 공약’은 이전 정권에 대한 ‘결례’ 인가요? 자치회 후보는 ‘야식금지’가 공약이라네요. 학우들을 야식을 조절조차 못하는 주체적 인간으로 보지 않는데, 어떤 운영을 하실지 눈에 뻔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투표 안할래요. 투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투표 하는 분들은 그래도 총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냥 경험적으루요.) 그래서 차라리 투표율 50% 안 넘어서, 다음에 다시 투표 하는 게 저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회칙 안에서의 방법이겠네요.

투표 안하는 사람들이 모두 무관심하다고만 생각하지는 마세요. 결국 정치라는 건 주어진 조건들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 아니겠어요? 저는 관심도 많지만 지극히 정치적으로 투표를 안하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제 투표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려해 볼 만하지 않겠어요?

이 글은 혹여나 투표율이 낮다고 하여, 한동학생들 정말 관심이 없네 어쩌네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한동에 희망이 없니 있니 하며 오바하시는 분들 계실까봐 쓰는거에요.


요즘 드는 생각들 1

금요일, 11월 21st, 2008

그들의 수사란… 완전 쓰레기글 배설… 자꾸 이런 글을 쓰니까 ‘비분강개형’문체가 손에 익으려고 그런다. 버려야할 못된 습관이다.


요즘 드는 생각들 1 (총학의 제언 관련해서)

총학의 제언 관련해서

나는 솔직히 얼마 전에 있었던 現총학의 제언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새로이 드러난 버스, 공간, 규정의 문제는 그 정보공개의 측면에서 학우들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작 총학이 학기 내도록 역량을 집중했으며 학우들 사이에서도 주요 사안이었던 식당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인식이 진전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총학생회의 제언 내용 속에는 그들의 짧은 임기를 핑계하며, 온갖 역겨운 수사로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정책을 내어놓고 있는데, 그것이 One Stop Service 제도이다. 특히나 One Stop Service 제도에 관한 설명에서, 총학생회는 이상한 말을 한다.

학우 여러분의 불편 및 불만 사항은 대부분이 ‘셔틀 버스’, ‘식당’, ‘부분적 학점 철회제’ 등으로 총학생회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이 그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략)… 과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처리절차는 길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학교 측에 민원을 전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까놓고 말해, 이번 학기에 있었던 식당 문제에 대한 학우들의 민원이 총학이 그 민원을 학교측에 전달하고 다시 전달받는 과정상의 지체 문제였던가?? 총학생회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셔틀 버스’, ‘식당’, ‘부분적 학점 철회제’가 일개 학우들이 학교당국을 방문하면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사안인걸까? 정말로 만약 그러하다면, 총학생회의 존립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총학생회는 두는 것은 아닌가? 만약에 ‘셔틀 버스’, ‘식당’, ‘부분적 학점 철회제’ 같은 거대 사안이, 일개 학우가 행정당국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라면, 일개 학우가 못 해결할 사안이 어디 있겠으며, 총학생회는 도대체 왜 있는 것일까?

학교측이 정보를 선점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총학생회가 운운한대로 정보비대칭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학우들이 이런 저러한 상황을 모르고 건의하여 학교측에 방문한다면, 학교측은 그것을 시행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가르쳐’ 줄 것이다.

학우들이 식당에 관한 불평불만 글을 올리면 학생과로 호출 받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현 상황은 총학생회가 One Stop Service 운운하며, 엄청난 공과를 올린마냥 설레발치지 않아도, 학생처장님의 None Stop Calling 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말 One Stop Service 가 정말 필요한 제도인가? 차라리 공개 설명회 몇 회를 더 하는 게 유익하고 건강하지 않을까?

총학생회는 학우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학교당국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학생 대표로써 접근하고, 그 정보를 분석해서 학우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단체이다. 그런데, 학우들의 욕구가 있으면 행정당국에 직접 연결시켜주겠단다. 그럼 뭐할래? 대부분 외주로 주는 축제? 버스회사에 전화해서 버스 대절? 에라이…그냥 니들 해산하던가.

문득, 식당사안을 문의하러 총학생회 사무실을 방문하니, 식당매니저나 학생처장님을 만나게 해드릴깝쇼~하고 묻던 총학생회 측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ps. 久ECMD 아니고, 舊ECMD.


우리를 옥죄는 금제적 감정에 대하여

금요일, 10월 24th, 2008

자료 보고 싶어요

학기초에 식비 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총학생회 사무실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제가 열람할 수 있었던 자료는 지난 학기 평의회에서 다뤄진 수준의 PPT 몇 장 밖에 제시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학기 평의회 의논중에도 자료의 불충분함이 지적되었었는데, 그 수준의 자료를 가지고 몇달을 끌어 방학중에 식비인상이 되었다는 것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같이 총학생회에 방문했던 학우와, 저는 당연히 불만을 표하였고, 회계자료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총학생회의 하소연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측에서 자료를 주지 않습니다."

총학생회 학생복지부국장의 하소연에 따르면, 총학생회에서는 식비인상에 관한 협의에 굉장한 노력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총학생회측에서는 최대한 자료에 근거한 협의를 진행하려고 노력하였고, 학교측이 알게 모르게 입수한 자료를 기반으로 인상 요인들을 조목조목 따지니, 학교 당국은 놀라는 눈치였고, 그 이후에는 자료 공개를 꺼리더라는 것입니다. 식당운영위원회에서 회계자료를 놓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었으나, 회계자료에 수정할 것이 있다는 이유로 가져가 버렸고, 총학생회는 더는 회계자료를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총학생회는 지속적으로 학교당국에 공문만 계속 보내고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초에 식당운영위원회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회계를 요구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저희는 그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약속했던 회계공개는 없는데…

이제 10월 말입니다. 총학생회에서 약속했던, 회계공개는 없고, "[총학생회]학생식당 공개질의"라는 글만 게시판에 뎅그라니 올라와 있네요. 뭐, 언제나 처럼, 학생대표로써 학생의 입장을 이야기 하는 부분은 없고, 학교당국의 입장만을 내보이는 기회가 되었네요. 그 부분에 대한 조목조목 비판은 여러분들께서도 많이 하고 계시니 중언부언 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학생들의 대변자인 총학생회가 결국 학우들의 입장에 대해서 대변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고, 학교 당국의 변명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학우들의 권익 침해 – 아무것도 안하는 총학생회

총학생회가 학교당국에 언제나 타협적 입장을 취해왔던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지금 행정당국의 처사는 도를 지나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비단 식당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학우들의 기본적 의사표현을 제재하는 인권적 문제로 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학생처장은 현재 학생식당에 대해서 인트라넷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학생처장실로 학우 하나하나를 호출해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각개격파를 하고 계시네요. 이같은 일이 횡설수설에서도 계속적으로 보고되고 있고, 이러한 이야기가 소문으로 나돈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대표라는 총학생회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처를 하고 있지 않네요.

건의는 총학생회로 교육은 개개인에게로…

학교당국이 개개인의 학생들의 의사를 모두 듣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학우들이 공개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명을 할 때, 학교 당국은 절차를 이야기하고 학생대표들을 거치라는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데, 왜 이번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개개인을 호출해서 "각개격파" 하는 걸까요?? 불만있는 몇몇 학생만 조지면, 학교가 평온하리라는 착각을 하고 계신 건가요??

학생들이 학생식당 관련한 건의를 총학생회에 절차를 지켜 공개적으로 해야만 한다면, ‘교육’ 도 절차를 지켜 공개적으로 해주세요.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 조용히 이야기 하는거, 옛날에 많이 보던 방법 아닌가요?? 뭐가 그렇게 구려서 하나하나 부르고 계시는지 참…

우리는 이쯔음 되면 눈치를 까야 되요. 학교측에서 귀찮은건 총학생회쪽으로 건의하라고 담당을 넘겨 버리고, 학우들은 만만한 총학생회 조낸 두들겨 팰 거고, 학교 당국은 총학생회 말 안들어 주면 끝난다는 것을요. 그리고 몇몇 불순분자들만 조용히 불러서 해결보는… 이건 굉장히 오랜시간 관찰되어 온 ‘현상’ 아닌가요??

고객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세요

맘은, 여학우들이 밥을 많이 퍼면 이런 말을 하고 있답니다. "얘, 너 그렇게 많이 먹어서야 살은 빼겠니?" 우리 팀의 한 여학우는 밥이 나오기 전에 반찬을 펐다는 이유로 "교양 없게…"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밥 먹으면서 그런 취급 받아본 곳, 학교밖에 없어요. 부페식은 당연히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만큼 자유롭게 먹기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 가는 곳 아닌가요?? 명색이 부페식인데 "양심" 운운하며 교육적 의미 부여하시니, 고매한 "양심"이라는 단어가, 정당한 소비자 권리를 억압하기 위한 헤게모니따위로 추락하는 모습이 참 보기 고까워요. 제가 좀 민감한건지 모르겠는데, 트웰브 바스켓 아주머니들도 밥 많이 퍼가는 학우보고 그러세요. "밥이 산이네~." 그런 말이 왜 필요한건가요??

제가 생각할때, 학생식당 직원분들 친절교육이 절실히 필요한거 같아요. 특히 맘이요. 오죽하면 계모라는 별명이 붙겠어요. 솔직히, 밥값 비싸고 질 더러운건 돈드는 문제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눈치 안보고 밥좀 편하게 먹게 해주세요. 그건 돈드는거 아니잖아요.

총학생회가 유용하긴 한가요??

총학생회를 열렬하게 비판하려면, 총학생회가 할 수 있는데 못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죠. 그런데, 저는 그런 전제가 굉장히 회의적으로 다가옵니다. 총학생회가 공문을 보내고 협의체 위에서 이야기를 해도 학교당국은 들어주질 않거든요. 총학생회가 학생처장님보고 "님하 자제효~." 한다고 해서 학생처장님이 그걸 들으실 것 같지도 않고 말이에요.

이즈음 되면, 총학생회라는 단체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사실 총학생회 단순노동 부분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생 쓰고, 축제 같은 것도 외주 주고 하는데, 그런건 그냥 경제논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학우들 복지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리의 문제에 있어서도 침묵하고 있는 총학생회가 어디 믿을만한 학생대표가 될수나 있나요??

아… 그냥 총학생회 없애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도 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학우분들, 저는 요즘 생각하는건데요. 펜은 칼보다 강하지 않아요. 그 펜이 칼을 소환해 낼 수 있을때에만,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어퍼컷 날리는데 주둥이로 막을 수는 없는거 아니겠어요? (이빨 다 날라가요.) 공문 보내고 말로 하고, 아삼에서 키보드 두들겨도 변하는거 하나도 없거든요. 총학생회도 우리 모두도 빨리 자각하시어 공문보내는거 즉각 중단하시고, 좀 다른 방안으로 모색해 보심이 어떠하실런지??


혹시 학생처장님이 이글을 보신다면…

  • ps. 학생처장님은 맘스키친만 모니터링 하지 마시고, 건강하고 규칙적인 식사생활을 위해 75식 의무식 카드를 구매하신 후, 학우들과 함께 한달에 75식의 학생식당을 함께 드셨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집밥’ (맘의 표현을 빌리자면…)’1인 정량’ 이상으로 과다하게 드시면서, 학생식당이 그렇게 먹기 싫냐고 학우들에게 말씀하시면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마음이 상해요.
  • ps 2. 학생처장님, 저는 부르면 안갈꺼니까 부르지 마세요. 저 학기 마무리 잘 해야죠.
  • ps 3. 프린트 하셔서 두고두고 읽으시면, 마음만 상하실테니… 처장님의 건강을 생각하셔서라도… 그러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마지막 짤방

어제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 , 1982)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배우가 대사를 치는 영화는 아니고, 계속 영상물과 핑크플로이드의 노래만 나오는 영화인데요. 개인적으로 82년작이라고는 해도, 에니메이션 처리 등등 보기 깔끔하고 좋은것 같아요. 요즈음 학교당국이 학생들한테 하는 행동이랑 부합하는것 같아서 그 영화에 나오는 부분을 붙여봅니다.

We don’t need no education 처장님 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