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다시 한번 읽었다. 소설이고, 읽었던 것을 다시 읽는 것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읽었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예전에 누군가가 "조세희는 비겁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처음 접했을때, 단지 '우파'인사의 선입견에 가득찬 투정같은 것이리라 감히 추측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내가 이러한 감상을 친구에게 말하며, 결국 소설의 마무리가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어진다고 말해 주었더니, 아Q의 '정신적 승리법'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아마 그것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과도 비슷한 것도 같다.
그런데, 내가 지금 적어두고 싶은 부분은 소설 내용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서울: 이성과 힘, 2006) 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한구절 인용한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천구백사십년을 전후해 태어난 우리 세대가 어느 사이에 서른을 넘어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평범한 직장인이 된 나의 눈에도 보였다. 물론 이것은 우리 세대가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선배 세대들의 경우를 보아도 젊은 시절에 인간의 진짜 척추라고 믿고 애써 간직하려고 했던 귀한 가치들, 그리고 개개인의 마음속 소유인 아름다운 정신을 부양 가족 거느린 가장이 되며 밖으로 던져버리는 일은 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무서운 군부 독재 치하라고 해도 그때 우리 모두가 정치적 압제에 시달렸던 것은 아니다. 독재 기관의 감시를 받고, 체포되어 고문받고, 억지 재판 과정을 거쳐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구성원 전체를 두고 볼 때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과거 어느 세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바로 우리 세대가 윗세대들과 '연대' 라도 한 것처럼 잘 단결해 무서워하고 있었다. 다수가 무서워한 것은 암흑 독재 체제가 냉혈 하수 부역자들을 시켜 올바름에 맹렬한 폭력으로 가한 체포-고문-재판-투옥만이 아니었다. 물론 잡혀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포였다. 그러나 강압 통치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가만히만 있으면 자신과 가족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순응과 무저항을 안전한 생활 방식으로 터득한 사람들에게 고문이나 투옥은 밤잠을 빼앗아갈 정도의 공포가 이미 아니었다. 육십년대에 새파랗게 젊었던 우리 세대는 서른 몇 살이 되어 바로 윗세대들과 똑같이 '실패자'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탄압은 정치와 경제 양면으로 가해졌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 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서울: 이성과 힘, 2006), 8-9.)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악은 국민 대다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제 한참 지나버린 상태에서 열심히 욕을 먹고 있는 매국노들이라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국가의 안녕'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무서워 했던 것도 어쩌면, 일본 경찰의 체포나 고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창 시끄러웠던 촛불집회에 있어서 전경들의 과잉진압도 국민 대다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물대포는 무섭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러하다, 모든 신념을 가진 투사들이 싸웠던 것들, 그것은 국민 대다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만약에 그러한 문제들이 우리들과 상관있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문제는 우리들과 상관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이 문제는 우리들과 상관없기 때문에 더이상 문제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저 순응하고 살아가면, 우리의 삶은 평온할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이 우리와 상관없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중요시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러한 사실 앞에서 절망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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